우선 미술교과서 등을 통해 눈에 익은 ‘생각하는 사람’의 원본 앞에 서 있다는 감동도 감동이지만 친구이자 작가인 발자크의 몸짓이나 표정까지 익살스럽게 표현한 수많은 소품 등 로댕의 작품 하나하나가 100년 세월을 뛰어넘어 마치 살아 움직이듯 다가왔기 때문이다. 더욱 감동적인 작품은 박물관 마당에 우뚝 서 있던 걸작 ‘지옥의 문’과 ‘칼레의 시민’이었다. 나를 안내한 친구는 ‘칼레의 시민’ 앞에서 오랫동안 열변을 토했다.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 때 도버해협에 가까운 칼레의 시민들이 영국의 포위망 속에서 저항했던 역사를 들려주었다. 영국군의 포위 속에서 저항하던 칼레 시민들은 11개월 만에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시가지를 불 지르고 시민을 학살하는 대신 칼레의 지도층 인사의 목숨을 요구했다. 목에 밧줄을 걸고 자루 옷만 입은 여섯 명이 맨발로 성문 밖으로 걸어 나와 무릎을 꿇고 교수형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시민들이 과연 누구를 보낼 것인가를 놓고 고민할 때 맨 먼저 지원한 사람이 칼레 제일의 재산가 생 피에르였다. 그가 지원하자 시장과 법률가 등 칼레의 이른바 지도층들이 속속 나서 ‘정원’을 초과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1347년의 일이었다. 에드워드 3세는 왕비의 간청으로 여섯 명의 목숨은 살려 주었지만 프랑스 작가 앙드레 모로아가 <영국사>에서 쓴 것처럼 영국은 칼레를 점령한 후 거의 모든 원주민을 추방하고 대신 영국인을 정착시켜 200년 동안 이 도시를 점령했다. 칼레는 비록 전투에 패배했지만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여섯 명으로 해서 사회 지도층이 그 신분에 걸맞은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는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처럼 되었다.
옛날 대법원으로 사용하던 건물에 들어선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신의 손, 로댕’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칼레의 시민’이 서울 나들이를 하고 있는 시점에 공교롭게도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OECD 30개 회원국 중 꼴찌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회 지도층 중에 유난히 ‘합법적 병역미필자’도 많고 시장이니 군수니 하는 고관 중에 뇌물 먹고 쇠고랑 차는 이도 많다보니 그러려니 했지만 꼴찌까지 갈건 뭐람. 6월 2일 우리는 또 한 번 광역단체장을 비롯한 시장·군수, 시·도의원, 교육감 등 이른바 선량(選良)을 뽑는다. 후보의 됨됨이를 놓고 될 만한 떡잎을 가리는 것은 당연히 유권자의 몫이다.
하지만 “내가 뛰어난 인물이요”하며 나서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안목으로는 옥석(玉石)을 가리기조차 힘들다. 로또선거니 뭐니 하는 얘기도 그래서 나오나 보다. 선량으로서의 도덕적 의무를 솔선수범하는 ‘칼레의 시민’까지는 못 되어도 독직(瀆職)사건으로 임기도중에 하차하는 그런 후보만 안 뽑았으면 좋겠다.
이광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