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의 모습은 늘 내 가슴에서 짙은 그리움을 불러낸다. 1960년대 후반 군대에서 복무할 때 나는 자주 비무장지대를 드나들었고 경계초소(GP)에서 포병 관측장교로 근무하기도 했다. 젊은 날에 대한 그리움과 겹쳐서 비무장지대에서의 힘들고 위험했던 나날들은 이제 환상적 분위기를 지닌 기억들로 남았다.
휴전으로 비무장지대가 설치된 지 열네댓 해인 그때에도, 벌써 비무장지대의 생태계는 빠르게 자연 상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의 자국들이 빠르게 푸른빛에 묻히는 모습은 자연의 복원력을 보여주었다.
그때부터 마흔 해가 넘는 세월이 흘렀으니, 비무장지대의 생태계는 훨씬 풍요롭고 다양해졌을 터이다. 희귀종들이 많이 살아서 이제 비무장지대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한다. 당연히 우리는 비무장지대가 사람 손을 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지켜야 한다.
아울러 그렇게 훌륭한 자원을 묵히지 않고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먼저 떠오르는 방안은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땅이 비좁고 사람들은 많은 터라 우리 사회에선 좋은 관광지들이 상대적으로 드물다. 실제로 휴전선과 비무장지대를 관광지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우리 근로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한다. 이번 경기 침체 뒤로는 일을 더욱 많이 한다. 구조조정을 한 기업들에선 남은 근로자들의 일이 많아졌다. 이런 상황엔 당연히 부작용들이 따르므로 휴식이 긴요하다. 휴식엔 좋은 관광지들이 필요하다. 따라서 비무장지대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일은 큰 뜻을 지닌다.
이 일엔 역사 교육이라는 측면도 있다. 천안함의 비극은 6·25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임을 아프게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비무장지대는, 아무리 평화스럽게 보여도 그 전쟁의 최전선이다.
우리는 휴전선 700리가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싸움터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1951년에 휴전 회담이 시작되었을 때 아군과 적군은 군사력에서 균형을 이루었고 양측은 지금의 휴전선에서 땅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싸웠다. 전쟁의 사상자들은 절반 넘게 휴전 협상이 시작된 뒤 나왔다. 그래서 양측 사상자들이 많이 나온 격전지들은 대부분 휴전선 지역에 있다.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그리고 저격 능선과 같은 애잔한 이름들이 당시의 처절했던 상황을 알려준다.
이처럼 비무장지대는 공산군의 침략에서 나라를 지킨 분들의 피가 물든 땅이다. 우리가 그 비극적이고 영웅적인 역사를 기리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이름난 격전지들을 기리는 시설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시설들은 아직 산발적으로 만들어지고 여러모로 부족하다. 보다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비무장지대를 관광 자원과 교육 현장으로 활용하는 것은 그래서 크게 바람직하다. 비무장지대의 소중한 생태계에 상처를 내지 않으면서 우리 시민들이 자연을 감상하고 6·25전쟁에 대해 배우고 기억하는 자리로 만들도록 지혜를 모을 때다.
소설가 복거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