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해리 트루먼은 공화당의 로버트 듀이에게 사전 여론조사에서 심각한 차이로 뒤처져 있었다. 이에 대다수 부동층 지지자들이 약세에 있던 트루먼에게 동정과 응원의 표를 던져 마침내 대선에서 트루먼이 당선된 것을 일컫는 말이 언더독 효과였다. 그러면서 언더독이란 말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됐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주인공 한나는 가창력은 정말 뛰어나지만 뚱뚱하고 못생겨서 절대로 무대에 설 수 없는 캐릭터였다. 비록 전신성형을 하고 자신을 모두 지우려했지만 그래도 순수함만은 지워지지 않은 주인공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희망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내 인생 최초로 1000만 관객을 기록한 영광(?)의 영화 ‘광해: 왕이된 남자’에서는 저잣거리에서 양반을 희롱하고 왕실을 풍자하는 광대 하선을 주인공으로 해서, 진정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리더의 덕목은 애민사상임을 말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 단순하고도 쉬운 일을 왜 교육도 잘 받고, 권력도, 돈도 있는 엘리트가 아닌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권력은커녕 하루하루 연명하기도 어려운 길거리의 광대가 실현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리더의 덕목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영화 ‘전지적 독자시점’의 주인공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지방대학 출신으로 서울 게임회사의 비정규직 직원인 김독자가 주인공이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히어로물인 ‘배트맨’은 고담시의 가장 큰 부자가 주인공이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주인공을 맡아 엄청난 흥행을 기록한 ‘아이언맨’ 역시 세계 최고 IT 회사의 대표이자 상상도 할 수 없는 돈을 가진 재벌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보잘것없고 인정도 못 받고 스스로도 자신에 대해서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무지렁이 비정규직 회사원 김독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히어로물을 만들겠다는 발칙한 상상을 하게 됐다.
‘신과 함께’ 시리즈를 만들고 해외프로모션에서 만난 해외 영화관계자들이 내 다음 프로젝트에 대해 물어왔다. 그래서 난 지금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지구가 멸망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인 지구를 지켜내는 주인공은 정말 보잘것없는 비정규직 소시민”이라고 하자 해외 영화 관계자들이 정말 환호를 했다.
“야 그거 재미있는 기획이다. 지금 우리나라도 자신을 언더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90%는 될 거다. 지금 전 세계에서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고 기득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 것이며 그런 사람들은 급속히 확산될 것이기에 언더독이 주인공인 기획은 매우 시의적절한 기획”이라고 응원해주었다.
그러나 내가 하는 건 그저 기획이다. 그저 영화, 드라마일 뿐이다. 나는 다음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도 “과연 이게 현실을 사는 언더독에게 도움이 될까. 그저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도피, 막연한 희망, 값싼 위로가 되면 어떡하나”를 고민한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한 언더독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하고 사회에 던질 예정이다.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위정자들이, 기득권자들이 언더독 문제를 고민해주기 바란다.
‘록스타 효과’라는 것이 있다. 그만그만한 사람 100명보다 한 사람의 뛰어난 재능가가 조직이나 회사, 국가에 더 도움이 되기에 재능 있는 사람에게 많은 돈을 몰아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이론이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을 바라보는 99명의 사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서울의 많은 아파트들이 평당 1억 원을 돌파했으며 유명 스포츠 선수가 1년에 200억 원의 연봉을 벌고 스타트업을 하는 청년이 1조 원이 넘는 유니콘기업을 만들었다는 뉴스를 지금도 고시원에서, 반지하 월세방에서 컵밥을 먹으며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이 9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이제 많은 수의 사람들이 한계상황에 맞고 있다. 어쩌면 우리 국민의 60~70%가 언더독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그보다도 더 많은 국민들이 언더독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이에 정부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 구성원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 2020년 대한민국이 언더독 현상을 그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해버려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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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