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동 혐의로 징역 3년 5개월을 받고 나온 첸 허샹(Chen Hexiang)과 조슈아 웡. 사진=조슈아 웡 제공
―요즘 어찌 지내나.
“홍콩보안법이 시행되고 나서 권력의 압박 아래 살다보니 내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매우 어려워졌다. 주중이든 주말이든 아침 8시 30분쯤 일어나서 홍콩과 국제사회를 향한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최근 집중하고 있는 건 뭔가.
“요즘은 대륙으로 잡혀가 구금된 홍콩인 12명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압박이 많이 오긴 하지만 계속 싸워 나가는 게 내가 해야 할 일 아니겠나.”
구금된 12인 관련 행사를 하고 있는 조슈아 웡. 사진=조슈아 웡 제공
8월 23일 남성 11명과 여성 1명 등 홍콩 활동가 12명은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려 고속정을 타고 대만으로 향하다가 중국 광둥성 인근 해상에서 중국 해안경비대에 체포됐다. 이들 가운데 1명은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가 풀려난 상태지만, 나머지 11명은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와 관련해 기소된 상태로 알려졌다. 중국 공안은 20일이 지난 9월 13일이 돼서야 “이들이 불법 월경 혐의로 형사 구금된 상태”라고 밝혔다. 면회를 하고 싶다는 가족의 의사는 무시됐다.
―주요 인사가 잡혀가는 등의 일이 벌어지자 홍콩 민주화의 동력이 힘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민자도 증가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홍콩에서든 어디에서든 동지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민주화를 향한 동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몇몇 단체 운영을 중단하긴 했는데 아직 동력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홍콩 사람들이 함께 싸워주고 있다. 지지세력이 사라졌다는 세간의 말엔 동의하지 않는다. 최근에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민주화 세력이 우세하다. 어디서 설문조사를 했든 결과는 같았다. ‘조용한 다수’가 우리를 지지하고 있다. 최후의 순간까지 싸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은 과거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면 시위대를 다 잡아들였다. 미행도 하고 사찰도 했다. 거긴 어떤가.
“모르는 승용차나 승합차가 계속 따라오는 등 미행당한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중국 쪽 요원인 것 같은데 그건 그렇게 중요치 않다. 민주화 동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두렵지 않나.
“새벽에 갑자기 경찰이 집으로 들어와 날 잡아간 적이 있었다. 언제든 중국 대륙으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끔 힘들 때도 있다. 내 신상에 문제가 생길까 염려도 된다. 하지만 그런 압박 때문에 무너질 순 없지 않은가. 오히려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경찰 조사를 자주 받는다고 알고 있다. 경찰 조사 때 분위기는 어떤가.
“매주 경찰서에 가서 보고를 한다. 홍콩 경찰은 중국 쪽에 줄을 잡고 있다. 8번 체포되고 3번 옥살이를 한 경험을 떠올려 보면 시위에 참여한 이름 모를 사람들이 어떤 취급을 받고 있을지 대략 알 수 있다. 홍콩의 아픔을 세계가 알아줬으면 한다.”
―국가 통제는 언론을 통제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거기 상황은 어떤가.
“지미 라이(Jimmy Lai)가 잡혀간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200명 넘는 경찰이 빈과일보로 쳐들어갔다. 언론의 자유가 침식되고 있다. 자유로운 정보의 유통이 많은 압박을 받고 있다. 홍콩에겐 악몽 같은 일이다.”
지오다노 회장이자 대표적인 반중 언론인 빈과일보(Apple Daily) 사주 지미 라이도 체포된 바 있다. 두 아들도 잡혀갔다. 빈과일보의 모기업 ‘넥스트 디지털’ 임원 4명도 마찬가지였다.
―언론 다음은 출판업자 순서인데.
“출판업자도 요원들이나 중국 쪽에게 많은 압박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다. 태국이든 대만이든 전세계 어디로든 우리의 목소리가 퍼져나가고 중국의 독재가 무너져 가는 걸 모두가 경험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연대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돈줄을 끊는 데서부터 압박은 시작되기 마련 아닌가. 활동비는 어찌 마련하나.
“최근 ‘언프리 스피치(Unfree Speech: The Threat to Global Democracy and Why We Must Act, Now)’란 책을 냈다. 8개국 언어로 판매되는 수입으로 지낸다.”
―한국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지금 홍콩은 1980년대 광주랑 똑같다고 보면 된다. 홍콩 사람들도 영화 ‘1987’처럼 언젠간 그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홍콩과 중국의 충돌, 왜 일어났나…직선제→송환법→보안법 격렬 저항 홍콩은 1841년 아편전쟁 뒤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97년 중국으로 반환돼 중국 소속 특별행정구가 됐다. 당시 중국 정부는 홍콩에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가 적용하지 않고 자유경제 체제와 정치 체제를 최소한 50년간 유지하는 일국양제를 약속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하루 속히 홍콩을 중앙통치를 받는 국가의 일부로 만들고 싶어 했다. 7월 1일 중국 정부는 홍콩 국가보안법을 시행했다. 홍콩 내 중국 공산당 통제를 강화하는 법이다. 홍콩 반환 당시의 일국양제 약속이 근본적으로 무력화되는 법이기도 하다. 이 법으로 홍콩은 특별행정구로서의 정치적 자유도가 상실돼 사실상 중국의 일반 도시화로 전락하고 있다. 외국에서 벌어진 외국인의 중국 국가안보 위반 행위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된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어 전 세계적인 조롱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중국 국가안보를 위반하면 중국 정부가 잡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2014년 우산혁명과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이 이 법률 제정의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 2014년 9월 28일부터 시작된 우산혁명은 직선제를 향한 홍콩 주민의 민주화 운동이었다. 일국의 대통령급인 홍콩의 행정장관은 중국의 ‘홍콩 기본법 제45조’에 따라 간선제로 선출돼 친중파가 당선되기 쉬운 구조였다. 홍콩의 민주파는 직선제를 꾸준히 요구해왔고 결국 중국 정부는 2017년부터 직접선거로 행정장관을 선출토록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허울뿐인 약속이었다. 중국 의회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과반수 지지를 얻은 후보자 2~3인만 홍콩 행정장관 후보가 될 수 있었다. 직접선거를 하더라도 전국인민대표대회의 허가를 받은 친중파 후보만 행정수반 후보가 될 수 있는 셈이었다. 홍콩인들은 입후보 자유를 보장하라며 시위에 나섰다. 처음에는 대학생과 지식인 중심의 시위였으나 이후 중고교 학생과 일반인의 광범위한 지지로 이어져 전 홍콩적인 시위가 됐다. 시위 과정에서 홍콩 경찰이 쏜 최루탄과 최루액을 막으려 사람들이 우산을 쓰기 시작해 우산혁명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1996년생인 조슈아 웡은 열여덟의 나이로 우산혁명의 중심에 섰다. 2019년에는 홍콩 내 범죄자를 중국 본토로 보낼 수 있는 송환법 때문에 홍콩은 또 다시 들고 일어났다. 홍콩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홍콩인들은 범죄자라 하더라도 홍콩에서 민주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중국으로 송환되면 반인권적인 처우가 예상되는 까닭이었다. 조슈아 웡은 이때도 시위의 중심이었다. 시위 규모가 커지자 중국 정부는 홍콩 보안법을 시행하기에 이른다. 홍콩 보안법 초안에는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리즘 조직 결성 및 활동 행위 등을 예방, 저지, 처벌해 중국 헌법과 홍콩 헌정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법에 따라 홍콩 행정, 입법, 사법기관은 이를 이행해야 하며 홍콩 행정장관은 관련 상황을 정기적으로 중앙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국가 보호를 이유로 제정된 법이지만 실제 이 법이 시행된 이면에는 홍콩의 자유를 향한 활동을 전면적으로 금지시키려는 목적이 숨어있었다. 이 법이 시행돼 대규모 시위를 일으킨 활동가가 하나씩 잡혀 들어가고 있다. 시행 첫날 370여 명이 체포됐다. |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