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일각에서는 “미 대선을 전후로 김여정이 미국을 방문해 ‘대타협’을 타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왼쪽부터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연합뉴스
국가정보원 등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사유로 ‘위임통치’ 방식으로 통치 체제를 개편한 것으로 알려졌다. 6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북한은 정중동 행보를 이어갔다. 김정은은 코로나19 방역과 홍수 피해 복구 필요성을 강조하며 내치를 중시했다. 북한의 대외적인 행보는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9월 들어 북한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이터통신이 소개한 ‘북한-이란 핵개발 협력설’과 더불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싣는 신형 이동식발사차량(TEL)이 미국 위성에 포착됐다. 9월 23일 미국 매체 ‘38노스’는 평양 미림비행장에서 ICBM을 실은 TEL로 추정되는 물체가 찍힌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미국 복수 매체는 위성에 포착된 TEL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식 열병에서 선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위성에 포착된 신형 TEL이 자체 발사 기능을 갖췄다면 ICBM의 기습적인 발사가 가능하다는 것이 복수 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북한 소식통은 “열병식에서 신형 TEL이 공개될 경우, 이는 다시 한번 미국의 관심을 북한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소식통은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은 미국과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미국을 위협할 만한 카드 하나씩을 슬쩍 보여주는 방식을 취해왔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북한의 핵발사 시스템 개발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드는 것과는 별개로 북한의 전통적 우방인 중국에서도 북한 행보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북한의 ‘동맹 이탈’ 가능성 때문이다. 한 중국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정치권을 비롯한 중국 사회 일각에서 “미 대선을 전후로 김여정이 미국을 방문해 ‘대타협’을 타진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대두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혹시라도 북한이 ‘디커플링 차이나’ 카드를 받아들일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는 얘기다.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앞서의 북한 소식통은 “북한과 미국이 치열한 눈치 게임을 바탕으로 추후 외교 전략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북한에 제시할 수 있는 카드는 두 개가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 번째 카드는 모두가 알고 있듯 ‘전면 비핵화’다. 하지만 북한은 그간 ‘전면 비핵화’ 반대급부로 미국이 내민 협상 카드에 대한 불만을 공공연히 토로해 왔다. 여기서 미국이 제시할 수 있는 또 다른 카드가 있다. 바로 ‘디커플링 차이나’를 전제로 핵개발 제재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핵 개발을 암묵적으로 허락해주는 대신 ‘중국과 거리두기’를 약속받는 형식이다. 그 가운데 단계적으로 북한의 제재를 완화해준다면, 북한이 대타협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 부분을 중국 당국자들이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워낙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보를 지속해왔기 때문이다.”
이 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는 비핵화보다 ‘디커플링 차이나’를 훨씬 선호할 수 있다”면서 “북한이 보유한 핵을 오히려 중국을 견제하는 용도로 사용한다는 구상 아래 북한과 친밀함을 계속해서 과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떼어 내려는 미국의 액션은 더욱 빨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거주 북한 소식통은 “북한이 지금까지 미국과 접촉한 결과를 토대로 추후 대타협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소식통은 “미국은 대북 제재에 있어 말보다 행동 기조로 나서고 있다”면서 “북한 입장에선 미국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목을 조르는 것으로 보일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북한이 과거처럼 립서비스로 시간을 끄는 건 무의미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재 북한 내부 상황도 코로나19 방역, 태풍·홍수 피해 등으로 상당히 어렵다. 빠른 시간 내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과거처럼 시간을 최대한 끄는 외교적 접근 방식에서 탈피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 가운데 중국 내부에서 김여정의 방미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만약 북한이 미국과 대타협에 나선다면 그 선봉장으로 김여정이 낙점될 것이란 전망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사진=공동사진취재단
그는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비핵화’와 ‘중국과 거리두기’ 두 가지 선택지를 받을 경우엔 정황상 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더 크다”면서 “중국의 대북 지원이 오락가락 행태를 띠는 것에 대해 북한이 중국을 더 이상 예전처럼 신뢰하지 않는다. 장성택 숙청 이후 북한의 대중외교 라인이 빈약해진 상황도 북한이 추후 행보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은 정기적으로 북한과 친선 관계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9월 9일 북한 정권수립 72주년을 기념해 김정은에 친서를 보냈다. 친서를 통해 시진핑은 “중·조(북) 관계발전을 고도로 중시하고 있다”면서 “전통적인 중·조 친선은 두 나라의 귀중한 재산”이란 메시지를 전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시진핑 주석이 오랜 양국 우호 관계를 강조하며 북한의 ‘일탈’을 예방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 입장에서도 대북 협상 변수는 있다. 이스라엘의 존재다. 미국의 혈맹 중 하나인 이스라엘은 그간 미 행정부에 공공연히 북한 핵개발을 더 강력히 제지하라는 뜻을 전해왔다. 이스라엘 내부에선 ‘미국이 북한을 더 확실히 제지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북한을 타격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대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신문 취재에 응한 또 다른 북한 소식통은 “김여정 방미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미국이 비핵화 대신 ‘중국과 거리두기’를 조건으로 북한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 시나리오가 실행되려면 미국이 이스라엘의 심기를 먼저 달래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소식통은 “북한이 비핵화를 선언하지 않는다면, 북한이 만든 핵무기가 이란 등 국가를 통해 이스라엘을 겨냥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복잡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면서 “복잡한 외교 관계와 맞물려 대북 외교 정세가 미국 대선 이후 시시각각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