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선수 마빈 박이 레알 마드리드 1군 무대에 데뷔하며 관심을 받았다. 사진=연합뉴스
#꿈같은 레알 1군 데뷔
유스팀 등 레알 마드리드 하부팀을 거쳐 1군에 데뷔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로 불린다. 수백억 원의 몸값을 호가하는 슈퍼스타들이 1년에도 여러 명 입단하는 팀, 세계 최고 선수들이 모인 팀에서 어린 시절부터 단계를 밟아 1군 무대에 합류하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레알 유스팀 등에서 촉망받던 유망주들이 둥지를 옮기기도 일쑤다. 라리가 내 상당수 팀이 레알 출신 선수들을 주축으로 기용하고 있을 정도다.
마빈 박은 후반 24분 측면 공격수 로드리고와 교체되며 운동장을 밟았다. 약 21분간 운동장을 누볐지만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다. 1군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무명 어린 선수의 출전에 국내 축구팬들이 관심을 가진 이유는 그에게 한국인의 피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스페인 마요르카로, 스페인과 나이지리아 이중국적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향 마요르카의 작은 팀에서 축구를 시작한 그는 이내 두각을 드러내며 2016년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었다. U-17팀에서 차근차근 성장한 마빈 박은 2019-2020시즌부터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B팀)에 소속돼 성인 무대에서 경기를 소화했다. 2000년생 만 19세로 유소년팀에서 뛸 수 있었지만 일찌감치 ‘월반’을 한 것이다.
많은 유망주들이 그렇듯 B팀에서 활약하는 동시에 유소년팀 신분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유스리그 소화를 병행했다. UEFA 유스리그는 ‘유스 챔피언스리그’로 불리는 전 유럽 구단의 어린 선수들이 나서는 대회다. 발렌시아의 이강인도 성인팀에서 뛰며 UEFA 유스리그에 동시에 나선 바 있다. 마빈 박은 지난 시즌 레알 유스팀이 이 대회에서 우승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단판으로 차례로 치러진 8강, 4강, 결승에서 모두 공격 포인트(1골 3도움)를 올렸다. 이때 활약에 힘입어 1군에 합류했다.
레알 1군의 어지러운 상황이 마빈 박에게는 행운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지난 시즌 3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음에도 레알의 분위기는 어둡다. 코로나19 여파로 새로운 선수 영입에 소극적이었고 현재 자원들은 다수가 부상으로 쓰러졌다. 특히 측면 자원 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르코 아센시오(스페인), 에덴 아자르(벨기에), 루카스 바스케스(스페인)가 경기에 나설 수 없고 측면에 활용 가능한 이스코(스페인), 마리아노 디아즈(스페인)도 부상 중이다.
이에 교체 자원에 여유가 없는 지네딘 지단 감독은 B팀 소속 마빈 박을 1군으로 불러들였다. 프리메라리가는 21세 이하 어린 선수는 하부팀에서 자유롭게 1군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지단 감독은 개막전에서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브라질), 로드리고(브라질) 등 2000년생과 2001년생 어린 선수들에게 양 측면을 맡겼다. 경기가 0-0으로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자 마빈 박에게 기회를 줬다.
그의 전체 이름은 ‘마빈 올라왈 아킨라비 박’이다. 모계 성을 포함하는 스페인 문화권에 따라 이름에 ‘박’이 포함됐고 등록명에도 올라왈과 아킨라비를 제외한 박을 포함했다. 대한민국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본인 의지가 있다면 가능하다. 앞서 마빈 박은 스페인 U-19 대표팀에 소집돼 1경기를 교체로 소화한 바 있다. “스페인을 대표할 수 있어 행복하고 흥분된다”는 소감도 남긴 바 있다. 지속적인 발탁 등 여건이 허락된다면 스페인 대표팀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황이 바뀔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대한축구협회에서도 마빈 박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최민수는 대한민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어 화제를 모았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대한민국 대표팀 합류한 혼혈 선수
해외에서 활약 중인 혼혈선수의 축구 국가대표팀 합류가 없었던 일은 아니다. 정정용 감독이 이끌고 월드컵 준우승 성과를 냈던 U-20 대표팀에는 독일 출신 케빈 하르(최민수)가 있었다. 슈투트가르트, 함부르크 등의 유소년팀에서 활약하던 최민수는 2017년 처음으로 대한민국 U-20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신태용 감독이 이끌고 이승우, 백승호 등이 나섰던 2017 U-20 월드컵(대한민국 개최)에는 나서지 못했지만 2019년 대회에 참가하며 준우승의 일원이 됐다.
독일인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자라났지만 어머니의 영향에 한국 문화가 낯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창하지는 않지만 대표팀에서는 일부 한국어로 소통했다. “독일 A대표팀에서 제의가 와도 한국 대표팀에서 활약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번 2020-2021시즌에 앞서 정든 함부르크를 떠나 분데스리가2 소속 에르츠게비르게 아우에에 입단, 1군 무대 진입에 도전한다.
연령별 대표팀 물망에 올랐던 유럽 혼혈 선수도 있다. 네덜란드에서 활약 중인 ‘야스퍼 킴’으로 불렸던 야스퍼 테르 헤이더다. 한국 출신 네덜란드 입양아 아버지와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혼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2017년 국내에서 열린 U-20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에서 활용할 만한 자원으로 평가받았다. 네덜란드에서도 명문으로 손꼽히는 아약스 소속 유망주였기에 기대가 컸다. 네덜란드 연령별 대표팀 활약 경력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귀화와 대표팀 발탁으로 이어지진 않았고 현재 SC 캄뷔르로 이적해 네덜란드 2부리그에서 뛰고 있다.
네덜란드 1부리그 VVV 펜로 소속 측면 수비수 트리스탄 데케르도 국내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한국 태생 어머니와 네덜란드인 아버지를 뒀다. 그는 2017년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네덜란드 A대표팀 합류가 꿈’이라고 밝힌 바 있다. U-16 대표, U-19 대표 등을 거쳤지만 2021년 현재까지 A대표 발탁 경험은 없다.
카일리 머리는 프리시즌 경기에 앞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나타나 관심을 받았다. 사진=카일리 머리 인스타그램 캡처
미국 프로스포츠 무대에서도 ‘하프 코리안’들의 활약이 있었다. 미국 최고 인기 스포츠 미국프로풋볼(NFL)에서는 2000년대 중반 열풍을 일으켰던 하인즈 워드의 뒤를 이어 한국인 피가 흐르는 선수가 맹활약 중이다. 애리조나 카디널스의 카일러 머리가 그 주인공이다.
머리는 프로 입단 이전부터 주목받는 선수였다. 야구와 미식축구 동시에 재능을 보였고 미국메이저리그(MLB) 신인 드래프트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지명을 받기도 했다. 1라운드 9번 픽으로 구단의 기대감이 큰 지명 순위였다.
하지만 대학 생활을 이어간 그는 1년 뒤 NFL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애리조나 카디널스의 지명을 받았다. 사상 최초 MLB와 NFL, 양쪽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 지명을 받은 선수로 등극했다. 과거 하인즈 워드도 MLB 지명을 받은 경험이 있지만 최하위에 가까운 지명이었다.
외할머니가 한국인인 그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정체성을 곧잘 드러내며 국내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의 인스타그램 소개글에는 ‘Green Light’라는 문구와 함께 한국어로 직접 ‘초록불’이라고 적어 넣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공식 석상에 등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축구협회가 그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선물하기도 했다.
데뷔 시즌인 2019 시즌 신인 공격수상을 거머쥔 그는 2020시즌 전력 보강을 한 팀과 함께 성장하며 리그 정상급 선수로 올라섰다. 미국 현지에선 향후 MVP 수상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 상황이다.
미국프로농구(NBA)에도 혼혈선수가 활약해 관심을 끌었다. 뉴욕 닉스에서 2018년부터 2시즌간 활약한 알론조 트리어는 외할머니가 한국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교와 대학시절 뛰어난 유망주로 평가받았지만 NBA 드래프트에서 선택을 받지 못한 그는 하부리그 소화를 병행하는 ‘투 웨이 계약’으로 뉴욕 닉스에 입단했다. 출전할 때마다 효율적인 활약을 보인 그는 2018년 12월 뉴욕과 정식 NBA 계약을 맺고 최고의 무대에서 꾸준히 뛸 수 있는 신분이 됐다.
하지만 NBA 리거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2년차인 2019-2020시즌 같은 슈팅가드 포지션에 ‘특급 신인’ R. J. 배럿이 입단했고 경쟁에서 밀린 알론조는 시즌 말미 방출 통보를 받았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