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식품 물류센터(신선센터) 직원들이 보건증 없이 일하고 있어 식품위생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건증은 식품을 취급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건강진단결과서다. 그런데 신선식품 물류센터 사업자가 식품위생법상 사업자로 등록하지 않고 있어 단속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A 업체, B 업체, C 업체 등이 뛰어들면서 신선식품 새벽배송 시장이 커지는 가운데 신선식품을 취급하는 물류센터와 관련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E 씨는 계약직으로 A 업체의 한 신선센터에서 일하다가 A 업체의 다른 지역 신선센터로 최근 옮겨왔다. 일하기 위해선 보건증이 필수라던 기존 신선센터와 달리 새로 옮겨 간 신선센터는 보건증을 요구하지 않았다. E 씨는 “과일이나 채소 같은 경우엔 벌크로 들어와 직원들이 직접 재포장한다. 품질검사팀은 냉동 같은 완제품이나 고기 같은 포장 제품을 뜯어보기도 한다”며 “일용직이 많아 보건증을 요구하면 인력 수급에 힘들기 때문에 보건증을 요구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실제 A 업체 신선센터 관계자는 일하려면 보건증이 필요하냐고 묻는 말에 “일용직은 필요 없다”고 설명했다. 복수의 A 업체 직원들에 따르면 일용직뿐 아니라 계약직 또한 보건증 없이 일하고 있다.
B 업체도 마찬가지다. B 업체의 한 신선센터 관계자는 “일하는 데에 보건증은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채용공고에도 보건증이 필요하다는 내용은 없었다.
식품위생법 40조(건강진단)에 따라 식품 또는 식품첨가물을 취급(채취·제조·가공·조리·저장·운반 또는 판매)하는 종사자는 특정 건강진단을 받아야 한다. 건강진단에 포함되는 항목은 장티푸스, 폐결핵, 전염성 피부질환(한센병 등 세균성 피부질환) 등이 있다. 위 건강진단을 받은 사람에게 발급되는 것이 보건증이다. 보건증은 매년 갱신해야 하는데, 식품으로 전염성 강한 병균이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식약처 관계자는 “수박이나 바나나, 고구마, 감자 등은 농축산물이면서도 식품에 해당한다. 물류센터라고 하더라도 직접 이를 만지는 일 등을 한다면 보건증이 필요하다. 보건증 없이 일하다가 적발되면 사용자뿐 아니라 고용자도 과태료를 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물류센터가 식품위생법상 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았다면 이를 단속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식품위생법 25조에 따라 식품운반업이나 식품보존업, 식품소분·판매 등을 하는 사업자는 식품위생법상 사업자로 관할 지자체에 신고해야 한다. 유산균음료나 어류, 조개류, 가공품 등 부패나 변질하기 쉬운 식품을 운반하거나 식품을 스스로 제조·가공하지 않고 식품제조·가공업자에게 의뢰해 제조·가공한 식품을 자신의 상표로 유통·판매하는 영업 등이 이에 해당한다.
대부분 신선식품 물류센터에선 식품위생법 25조에서 규정한 식품위생법상 사업자로 신고해야 하는 영업 행위가 이뤄지지만, 신선식품 물류센터 사업자는 식품위생법상 사업자로 신고하지 않고 축산물보관업이나 유통전문판매업 등으로만 신고하는 실정이다. 이 경우 식품위생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관할 지자체는 신선식품 물류센터가 식품위생법상 사업자로 신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생 점검조차 하지 않고 있다. A 업체의 한 지역 신선센터를 관할하는 지자체 관계자는 “A 업체 물류센터는 농축산유통업으로 등록돼 있기 때문에 소비자 위생 감시를 나가지 않는다”며 “물류센터에선 식품을 자르거나 조리해 소분하는 게 아니고, 농축산물은 식품위생법상 식품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물류센터는 식품위생법상 사업자가 아닌 걸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식품위생법에서 ‘식품’의 정의는 ‘의약으로 섭취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음식물’이다.
지자체가 지역 일자리를 제공하는 물류센터의 편의를 봐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이어진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교 물류유통학과 교수는 “이 문제는 현재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보면 된다. 해석하기에 따라 신선식품 물류센터는 식품위생법상 사업자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지자체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익성 한국유통학회장(동덕여대 교수)은 “과거 주로 택배의 물류 창고로 운영되던 물류센터의 사업자는 식품위생법상 사업자로 등록하지 않고도 일부 식품(택배)을 처리하던 관행이 있다. 아마 이것이 지금도 용인되는 것 같다”면서도 “신선식품 물류센터는 새로 등장한 사업의 형태다. 그 안에서 이뤄지는 영업 행위는 식품위생법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관련 부처가 새로운 사업 형태에 발맞춰 규제를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관련 내용에 관한 입장을 묻는 말에 A 업체는 답하지 않았다. B 업체 관계자는 “식품위생법상 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건 맞다. 하지만 식품이 1차 포장이 돼 들어오기 때문에 입고와 출고 전 과정에서 식품에 직원의 손이 직접 닿는 일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아보카도 한 제품은 손이 닿는데 이 부분이 식품위생법상 문제가 되는지 식약처에 문의한 상태”라며 “나머지 부분은 내부적으로 검토를 마쳤고, 문제가 없는 걸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9월 21일부터 수십 차례 입장을 묻는 말에 답하지 않던 A 업체는 기사가 나가고 6일이 지난 뒤인 9월 30일 오후 3시 36분 입장을 전해왔다.
A 업체 관계자는 “당사의 모든 신선물류센터는 보건증 발급과 보유 등에 대해 유관기관에 문의하고 확인할 결과에 따라 적법하게 운영하고 있으며, 관련 법령의 해석상 식품위생법 사업자에 해당하지 않음이 명백하다”며 “관계법령에 따르면 완전 포장된 식품, 축산물을 운반∙판매하는 경우는 건강진단 대상자에서 제외하고 있다.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은 완전 포장된 식품을 운반∙판매하는 경우 건강진단 대상자에서 제외하고 있고(식품위생법 시행규칙 제49조 제1항), 축산물위생관리법도 완전 포장된 축산물을 보관∙운반 또는 판매하는 사람은 건강진단을 받아야 하는 사람에서 제외하고 있다(축산물위생관리법 시행규칙 제44조 제1항). 따라서 완제품을 다루는 당사 직원들에게는 보건증 소유가 요구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A 업체 관계자는 “당사 신선물류센터에서는 기본적으로 완제품(완전 포장된 농산물 및 축산물)만을 취급하고 있다. 벌크로 들어온 상품을 재포장하는 과정이 있다는 주장은 농산물 박스나 축산 원물로 입고된 상품을 판매를 위하여 소분 또는 재포장 작업을 한다는 의미로 보이나, 당사는 이와 같은 소분이나 재포장 등의 업무는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당사는 기본적으로 완제품만을 취급하고 식품위생법상의 사업자에 해당하지 않으며, 보건증이 필요한 업무 종사자에게는 보건증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다만 과일과 같이 껍질로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되어 비가식 부위를 제거하고 먹는 상품에서 보관 과정에서 짓무름 등이 발생할 경우, 해당 상품을 제거하고 표시된 중량으로 담는 과정이 필요하다. 당사는 이 과정에 대해 관련 부처에 보건증 필요 여부를 문의했고, 이러한 경우에는 보건증이 필요 없다는 유권해석에 따라 신선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며 “당사가 지자체에 식품위생법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영업신고를 하지 않고 축산물 보관업이나 유통전문판매업만으로 신고했다는 의혹 제기는 관련 법령의 문언에 근거하지 않은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