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에서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이 의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FNN 뉴스
지난 9월 7일, 일본 오사카부 경찰은 23세 여성 A 씨를 상해 혐의로 체포했다. A 씨는 생후 2개월 된 아들에게 누구 것인지 모를 피를 지속적으로 먹여 구토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 씨의 아들은 발열 증상이 나타나 오사카의 한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아이는 입원 중에 무려 20번 이상 피를 토했고, 이러한 증상은 모두 친모 A 씨가 병원을 방문했을 때만 일어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특정 질환은 발견되지 않은 채 아이는 계속 피를 토했다. 이유를 찾지 못하던 중 의료진은 우연히 A 씨가 아들에게 피를 먹이는 장면을 목격했다. 정황상 학대가 의심돼 이후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A 씨가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일 수 있다”며 “자세한 사고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참고로 “A 씨는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이란 무엇인가. 이름의 유래는 독일 동화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에서 비롯됐다. 동화 속 주인공인 뮌하우젠 남작은 자신이 모험하지 않은 일들을 사실인 양 꾸며 사람들의 관심을 얻는다.
이렇듯 타인의 관심을 유발하기 위해 자신의 상황을 과장하고 부풀려서 이야기하는 정신질환을 ‘뮌하우젠 증후군’이라 부른다. 심한 경우 자신을 학대하거나 자해하는 등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1951년 미국 정신과의사 리처드 애셔가 의학저널을 통해 처음 명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의 주인공 뮌하우젠 남작.
일본에서 관련 증후군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교토 세 자녀 사망사건’이다. 2008년 12월, 자신의 딸에게 링거로 수돗물과 썩은 스포츠음료 등을 주입한 친모 B 씨(35)가 체포됐다. 고작 생후 8개월이었던, 어린 딸은 비정한 엄마의 그릇된 선택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친모는 경찰 조사에서 “병든 아이를 간호하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걱정해주는 것이 좋았다”고 말해 모두를 경악케 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딸을 간병하는 모습을 일기로 기록하는 ‘육아 블로그’를 운영했다.
아울러 경찰조사 결과 B 씨의 2번째, 3번째 딸도 각각 4세 이전에 사망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아이들을 살해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병리해부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재판 심리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당시 재판부는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을 참작해 검찰 측의 15년 구형보다 낮은 징역 10년을 선고한 바 있다.
소아신경과 전문의 도모다 아케미 교수는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은 깜박 속을 정도로 거짓말에 능숙한 사람이 많아 아이의 모습을 잘 관찰하지 않으면 발각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이 증후군을 앓는 가해자는 ‘열성적이고 헌신적인’ 엄마라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의사로서도 ‘설마 그 어머니가 학대할 리가 없다’는 편견에 사로잡히기 쉽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은 왜 발생하는 걸까. 도모다 교수는 “자기현시욕, 승인욕구, 소유욕, 상상력의 결여 등 4가지 심리적 요인이 밀접하게 얽혀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언급한 ‘교토 세 자녀 사망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증후군의 환자 대부분은 주변 사람의 관심과 동정을 받으려는 자기현시욕이 강하다.
또 남들이 자신을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승인욕구도 깔려 있다. 아이를 정성껏, 극진하게 돌보아 ‘좋은 엄마’로서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예컨대 ‘비극의 여주인공’이라도 상관없다. 그래서 아이가 퇴원할 것 같으면 링거에 이물질을 혼합하는 등 증상을 악화시킨다.
게다가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인식도 강하다. 이는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성향”이라고 한다. ‘아이가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다뤄도 되는 존재로 여긴다. 도모다 교수는 “여기에 한 가지 더,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의 환자는 상상력이 결여된 사람이 많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이기심으로 아이의 병세가 악화되고, 최악의 경우 사망할 수도 있는데 그런 심각한 사태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뮌하우젠 증후군 실화를 다룬 미국 드라마 ‘디 액트’. 블랜차드 모녀는 가짜 희귀병 환자를 연기해 전국적인 관심과 성원을 받지만 상황은 결국 비극으로 치닫는다.
이 증후군만의 특이점도 있다. 대부분의 아동학대가 가정이라는 ‘밀실’에서 이뤄지는 데 비해, 이 증후군은 병원이라는 ‘무대’에서 펼쳐진다. 그만큼 “가해자의 자기현시욕과 승인욕구가 강해 의사와 간호사 등 ‘관객’을 필요로 한다”는 얘기도 된다.
임상심리사 가쿠타 하루타카 씨는 이 증후군에 대해 “어린 시절의 애정결핍이 원인일 수 있다”는 소견을 밝혔다. “충족되지 않았던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타인의 관심과 동정으로 채우려는 행동”으로 본 것이다. 또한 “이 증후군을 앓은 이들은 거의 남편이 일만 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유달리 고독감과 고립감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관심을 받는 데 집착하게 된다.
멀쩡한 아이를 병들게 하는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은 아주 끔찍한 학대라 할 수 있다. 가쿠타 임상심리사는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잠재적 위험이 상당히 퍼져 있을지 모른다”며 우려했다. 강조했다시피, 이 증후군의 문제는 발견이 어렵다는 것. 그래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는 “의심되는 사례가 있다면 최악의 사태를 빚기 전에 반드시 전문가를 찾아 정신적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