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0일 손흥민(토트넘 핫스퍼)이 한 경기에서 4골을 넣고 손가락 4개를 펼쳐들자 현지 해설자가 외친 말이다. 손흥민은 이날 세인트 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2021 프리미어리그 사우스햄튼과 원정경기에서 4골을 쓸어 담았다. 손흥민은 자신의 커리어에 또 다른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손흥민은 커리어 최초로 1경기에서 4골을 넣으며 각종 기록을 새롭게 써내려갔다. 사진=토트넘 핫스퍼 페이스북
#커리어 최초 4골 기록
2010-2011시즌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손흥민의 유럽 축구 커리어에서 1경기 4득점은 최초 기록이었다. 이전까지 해트트릭으로 특유의 함박웃음과 함께 손가락 3개를 펼쳐 보인 적은 있지만 4골은 처음이다. 2019년 12월 번리를 상대로 기록한 80m 단독 드리블 골에 이어 다시 한 번 리그 전체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비록 시즌 초반이지만 리그 득점 공동 1위에 등극한 것은 덤이다.
손흥민은 이날 네 번의 득점 장면에서 자신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첫 번째 득점 장면에서는 공격 파트너 해리 케인(잉글랜드)의 패스가 다소 깊게 들어간 듯했지만 탁월한 주력으로 공을 낚아채며 골을 만들었다.
손흥민은 유럽에서도 정상급 ‘양발잡이’로 통한다. 왼발과 오른발 가릴 것 없이 강력한 슈팅을 뿜어내는 탓에 상대 수비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오른발잡이로 태어났지만 무수한 훈련 덕에 지금의 왼발 킥능력이 완성됐다. 일부 전문가들은 손흥민의 왼발 슈팅이 더 날카롭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손흥민은 이를 자랑이라도 하듯 양발을 번갈아가며 4득점을 기록했다. 오른발로 포문을 열었고 왼발로 네 번째 골을 마무리지었다. 이날 4골을 기록하는데 필요한 슈팅은 단 4개였기에 보는 이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손흥민은 양발을 모두 써가며 4골을 뽑아냈다. 사진=토트넘 핫스퍼 페이스북
#굳건한 팀 내 입지
이번 경기는 손흥민의 팀 내 영향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였다. 앞서 열린 에버튼과의 개막전에서 토트넘은 지난 시즌 리그 순위 6계단 아래에 있던 에버튼을 상대로 0-1로 패했다. 단순히 불운한 패배가 아닌 답답한 경기력을 보였기에 팬들의 불안감은 더했다. 손흥민은 슈팅 기회를 잡기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토트넘은 1경기 만에 5-2 대승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켰고 그 중심에는 손흥민이 있었다. 전반 추가시간 첫 골을 기록해 후반 네 번째 골을 기록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28분 남짓이었다.
그간 대한민국 축구팬들은 한국인 유럽 리거들의 출전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중계권을 가졌던 국내 방송사 또한 선수의 ‘선발 출전’ 또는 ‘명단 포함’이라는 문구를 전면에 내세워 중계방송을 홍보했다. 같은 포지션에 새 선수가 영입되면 한국인 선수의 입지가 흔들릴까 팬들은 노심초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손흥민은 더 이상 토트넘에서 출전 여부를 걱정하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9월 25일 열린 유로파리그 예선 경기를 포함해 이번 시즌 토트넘이 치른 4경기 전부 90분 풀타임으로 소화했다.
이는 지난 시즌부터 이어져 온 기조다. 손흥민은 지난 시즌 징계, 부상 등을 제외하고 자신이 나설 수 있는 30경기 중 29경기에 선발로 나섰다. 그중 90분 풀타임 경기가 18경기였다. 7경기에서 후반 교체 투입됐고 2경기에선 벤치 대기만 했던 직전 2018-2019시즌과 다른 양상을 띠었다.
#향후 전망도 ‘그린라이트’
이상윤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손흥민의 최근 활약과 팀 내 입지에 대해 “손흥민은 선발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수준을 넘어 섰다”면서 “전성기 기량을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당분간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공격진의 부상 등 변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조세 무리뉴 감독은 전임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에 비해 손흥민을 더욱 중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혹사 논란이 일 수 있지만 많은 경기에 나서며 경기력을 유지하는 손흥민의 특성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상황이다.
다소 변화가 생긴 토트넘의 전술도 손흥민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무리뉴 감독은 부임 초기, 손흥민에게 많은 수비 가담을 지시했다. 또 이번 시즌 개막전, 수비에서 공격으로 공이 연결되지 못하며 답답한 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손흥민이 4골을 기록한 사우스햄튼전에서 토트넘은 이번 시즌을 풀어갈 힌트를 얻은 듯하다. 최전방 골게터인 케인의 위치를 다소 후방으로 조정해 ‘연결고리’ 역할을 부여했다. 스피드와 골결정력을 겸비한 손흥민에게는 골을 노리는 역할에 더 집중케 했다. 그 결과 이전까지 골욕심을 부리는 경향이 있었던 케인은 손흥민의 4골에 홀로 4도움을 기록했다.
토트넘의 선수단 변화도 손흥민에겐 힘이 될 전망이다. 리그 개막전 패배로 분위기가 처진 토트넘은 지난 9월 19일 측면 공격수 가레스 베일(웨일스)과 측면 수비수 세르히오 레길론(스페인)을 각각 임대와 완전 영입으로 데려왔다.
이들의 포지션은 토트넘의 약점으로 꼽히는 곳이다. 특히 레길론의 영입이 반갑다. 기존 왼쪽 수비수 벤 데이비스(웨일스)는 무난한 수비력에 비해 공격력이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 축구에서 측면 수비수의 공격력은 앞선 공격수의 공격력까지 배가시킨다. 레길론은 이번 이적 시장에서 유럽을 통틀어서도 가장 뜨거운 매물 중 하나였다. 베일은 손흥민과 반대쪽 측면에서 공격을 이끌 수 있는 자원이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손흥민의 ‘관리 능력’을 언급하며 향후 전망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20대 후반에 접어들었지만 몸상태는 여전하다. 사생활 등 축구 외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선수라는 점에서도 전성기를 오래 끌고 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손흥민은 과거 이동국, 제 호베르투(브라질) 등 몸 관리가 철저하기로 유명한 선수들을 언급하며 이들을 닮고 싶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축구 외 활동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점도 오랜 기간 기량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본인 스스로 결혼마저 “선수생활 이후에 할 계획”이라고 밝힐 정도다.
감각도 최고조다. ‘4골 쇼’ 5일 만인 25일(한국시각) 북마케도니아에서 열린 2020-2021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3차예선 KF스켄디야와의 원정 경기에서 손흥민은 1골, 2도움으로 3-1 팀의 승리를 이끌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 경기는 10월 2일 토트넘 홈구장에서 이스라엘의 마카비 하이파와 맞붙는다.
대한민국 축구는 지금 손흥민의 시대에 살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