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에서는 미투 사태 여파로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여성 후보가 유리하다는 판단이 주를 이룬다. 유력 후보로 떠오르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사진=최준필 기자
#서울에서 지면 대권도 없다
야권은 고 박원순 시장이 불미스러운 일로 자리를 비운 만큼 민주당이 후보를 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를 민주당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홍익표 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은 9월 22일 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새로운 시장들에 대한 여러 가지 요구를 여론조사 등을 통해 점검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후보를 낼지에 대해 당이 결론 낸 것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후보를 내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야권에 비해 인지도가 높은 후보를 보유하고 있는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모습이다. 일단 현재 시점에서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성비위로 극단적 선택까지 한 만큼 여성 후보가 유리하다는 판단이 주를 이룬다.
‘여성 후보 공천론’이 대세로 간다면 가장 유력하게 떠오르는 후보는 문재인 정부 현직 장관 2명이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우선 서울과 관련이 있어야 하는데 두 장관 모두 현역 의원 시절 서울에 지역구를 뒀었다. 모르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중적 인지도 역시 높다.
민주당 내부 분석으로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가장 앞서나가고 있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추 장관은 최근 많은 상처를 입어 장관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해도 십자포화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박 장관의 경우 재직 시절 부처 장악력을 과시한 것은 물론, 언론에 나올 만한 흠집도 거의 생기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의원 시절과는 달리 전형적 공직자 모드를 보이면서 몸을 낮춘 셈이다.
‘유력’이라는 말이 따라다니고 있다는 것을 의식한 듯 박 장관은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그는 9월 2일 CBS 라디오에서 “제가 관심을 가질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또 “제가 제 직분에 충실하고 이 일에 매진하는 것이 지금 현재로서는 중요한 일이라서 오늘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드릴 수가 없다”라고도 했다.
여성 후보로 못 박을 것이 아니라 치열한 당내 경선을 통해 컨벤션 효과를 내면서 후보를 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렇게 되면 당 대표 선거에 도전해 유의미한 성적표를 받아든 박주민 의원이 나설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중진인 우상호 우원식 의원도 이름이 거론된다.
그러나 이들 역시 아직은 수면 밑에서 상황을 보는 단계다. 당 대표 선거에서 세 과시를 한번 해봐 현역 의원 중에서 가장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 박주민 의원조차 아직 망설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박 의원은 “봄에 총선을 치르고 국회에 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서울시장으로 간다는 것이 지역구민들에 대한 예의로 과연 맞는가”라는 말도 주변에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제1야당 국민의힘은 글자 그대로 불면의 밤을 보내는 중이다. 당 지도부도 “아직은 후보가 없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자천타천으로 이름이 거론되는 사람들은 많다. 나경원 전 의원을 비롯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용태 이혜훈 홍정욱 전 의원에다 지상욱 여의도연구원장 등도 오르내린다. 현역 의원으로도 권영세 박진 의원에 초선 윤희숙 의원이 나올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 이름을 내놓는 사람도 있다.
여론조사 지지율을 볼 때 모두가 도토리 키재기라는 혹독한 비판도 당 내부에서는 나온다. 때문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야권 통합 후보로 세워야 한다는 국민의힘 내부 주장도 있다. 안 대표 본인은 서울시장보다는 대권 직행을 바란다는 관측이 더 많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안 대표가 서울시장을 한 뒤 대권으로 갈 것이란 우회전략 선택론도 나온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통합 후보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안철수(오른쪽) 국민의당 대표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9월 23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대한민국의 미래와 야권의 혁신과제’를 주제로 열린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공천 칼자루를 쥔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여전히 ‘자강론’을 주장하고 있다. 당 내부에서 결국 나온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젊은 후보론’도 얘기하는 중이다.
후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민의힘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대의 힘으로 반듯한 후보를 만들어보겠다는 전략도 준비하고 있다. 공개 경합 방식으로 후보자를 결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으로 올 한 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미스·미스터 트롯 방식을 본보기로 참고한다는 방침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미스·미스터 트롯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성원 속에 수많은 국민 스타를 배출했는데 국민의힘이 어떻게 이 선례를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라고 최근 밝혔다. 당원 외에 보다 많은 사람이 당의 공직후보 결정에 참여하고, 국민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재미있는 방식을 통해 순차적으로 최종 후보를 압축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당의 공직후보자 결정을 위한 게임의 법칙을 바꾸는 문제는 현재 도전의사가 있는 희망자들에게 유불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적지 않은 내홍이 불가피해 보인다. 김종인 위원장이 실질적인 공천권을 내려놓는 용단이 필요하다는 점도 넘어야 할 산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미스·미스터 트롯 방식에 대해 “가수는 노래만 잘하면 무대에서 인정받지만 정치인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능력을 보여야 하는데 그런 방식(미스·미스터 트롯)이 정치 후보자 선출에서도 통하겠느냐”며 회의적 언급을 한 바도 있다.
#부산은 문재인 대통령 고향이다
부산은 대구와 함께 전통적으로 보수 정당의 아성이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점에서 내년 4월 보궐선거는 여야 모두 놓칠 수 없는 정치적 승부처가 되고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문 대통령 고향을 야당에 내줄 수는 없는 처지고, 국민의힘으로서는 텃밭 부산을 수복하는 상징성은 물론 문 대통령에게 정치적 타격을 입혀 차기 대선에서 유리한 길목을 점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국민의힘은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내세울 쟁쟁한 후보가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가 지난 4월 총선 때 지원 유세를 하는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부산은 서울과는 정반대 상황이 펼쳐지는 중이다. 부산에서는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비해 훨씬 여유로운 모습이다. 불명예 퇴진한 오거돈 시장 탓에 민주당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이 따가운 것도 있고, 쟁쟁한 후보가 많다는 점에서 국민의힘은 선택의 폭이 넓다. 때문에 객관적으로 우위에 서 있다는 자체 판세 분석을 내놓고 있다. 때문에 후보들이 넘쳐나고 있다.
전직 의원들 중에는 이진복 유재중 전 의원이 적극적이다. 이언주 전 의원도 사실상 출마의사를 내놨고 박민식 전 의원도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세연 전 의원 이름도 나오지만 최근 그의 동선을 볼 때 불출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부산 정가의 관측이다.
지난 총선 때 중앙당 선대위원장을 지낸 박형준 동아대 교수와 부산시당 선대위원장을 지낸 박한일 전 해양대 총장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사정을 잘 안다는 김영기 전 부산시 건설본부장 이름도 나온다.
박형준 교수의 경우 TV 출연은 물론이고 신문 기고 등 언론 노출 빈도가 많아 인지도에서 장점이 있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일보에 따르면 박 교수는 부산시장 출마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라고 최근 밝혔다. 박 교수는 “선거 준비 용도가 아니다”라며 부인하고 나섰지만 최근 부산에 사무실도 마련했다.
서병수 조경태 장제원 등 현역 의원들도 뛰어들 생각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국회의원 임기 1년도 안 돼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부담이다.
부산 보궐선거가 국민의힘 내부 옛 양대 계보 간 대결이 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박형준 교수는 대표적인 친이(친이명박)계 인사다.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홍보기획관, 정무수석, 사회특별보좌관 등을 거쳤다. 이진복 유재중 전 의원은 친박(친박근혜)계 핵심이었다.
민주당에서는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과 김해영 전 최고위원 이름이 이른바 ‘설왕설래 후보군’의 가장 위에 올라와있다. 최종 후보군이 좁혀진다면 두 사람 중 한 명이 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두 사람은 말을 아끼고 있다. 민주당의 당헌당규상 ‘보궐선거 귀책사유가 있을 경우 무공천한다’는 규정이 아직 살아 있어 민주당 내 대표적 원칙주의자인 김 총장과 김 전 최고위원으로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절대 안 나간다”는 말도 내놓지 않는다. 관망을 하면서 치고 나갈 때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들이 결국 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박재호 최인호 전재수 의원 등 민주당 부산 현역 3인방은 안 나가는 것으로 정리가 이미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당 낙하산이 내려올 가능성도 사실상 없다. 김영춘 김해영, 두 사람 중 한 명이 후보를 차지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큰 셈이다.
부산시당 근무경력이 있는 민주당 고위 당직자는 “정치적 무게감으로는 김영춘 총장이 앞서고, 신선미는 김해영 전 최고위원 점수가 높다. 당원들의 의견, 시민 정서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본다면 김영춘 총장이 유력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이들 외에도 홍순헌 해운대구청장, 당 국제대변인을 맡고 있는 최지은 북강서을 위원장,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에다 박성훈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이름도 나온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