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추석, 3년 연속 20승에 도전했던 최동원은 OB와 대결에서 기록 달성에 실패했다. 사진=연합뉴스
그래도 야구팬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와 명장면은 탄생하기 마련이다. 그동안 한가위 보름달이 비추는 야구장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1986년 OB의 PS 티켓과 최동원의 20승 실패
그동안 추석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았던 팀은 두산 베어스다. 전신 OB 시절부터 그랬다. 1986년 추석 하루 전인 9월 17일, OB의 포스트시즌 티켓과 롯데 자이언츠 최동원(작고)의 사상 첫 3년 연속 20승이라는 대기록이 정면 충돌했다. 그해 OB는 서울 라이벌 MBC 청룡과 치열하게 후기 우승을 다투고 있던 상황. 이날 패하면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될 위기였다. 게다가 롯데 선발은 하필이면 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20승에 도전하는 전국구 에이스 최동원이었다. 여러 모로 OB에 상황이 좋지 않았다.
최동원은 이날도 8회까지 단 1점만 내주며 괴물 같은 투구를 했다. 롯데가 3-1로 앞선 상태라 대기록 문턱까지 다가섰다. 그러나 9회말 무사 1루에서 OB 김형석이 극적인 3-3 동점 홈런을 때려내면서 승리가 눈앞에서 날아갔다. 다음 타자 신경식은 넋이 나간 최동원을 두들겨 3루타를 날렸고, 수비 실책까지 이어지면서 결국 OB가 4-3으로 역전승했다. OB는 그렇게 후기 1위로 가을잔치에 나섰고, 최동원은 3년 만에 20승 고지를 밟지 못한 채 시즌을 마무리했다.
#1990년 한대화-이강돈-노찬엽의 타격왕 3파전
1990년 추석(10월 3일) 연휴는 무려 6일. 9월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황금연휴’가 이어졌다. 하지만 야구장에서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개인 타이틀 전쟁이 펼쳐졌다. LG 트윈스 노찬엽-빙그레 이글스 이강돈-해태 타이거즈 한대화가 1리(0.001) 차로 타격왕 싸움에 한창이었다.
노찬엽은 연휴 첫날이던 9월 28일까지 타율 0.334로 1위를 달렸지만, 29일 OB와 시즌 최종전에서 고개를 숙였다. 정규시즌 최하위였던 잠실 라이벌 OB가 “LG 선수에게 타격왕을 줄 수는 없다”는 의지로 두 번이나 고의4구를 지시하는 방해공작을 펼쳤다. 결국 1타수 무안타에 그치면서 최종 타율은 0.333. LG는 이날 타격왕을 놓치는 대신 9회말 김동수의 극적인 끝내기홈런으로 1-0 승리를 챙기면서 첫 페넌트레이스 1위를 차지하는 기쁨을 누렸다.
이어진 30일은 이강돈의 날이었다. 4타수 2안타로 타율 0.33486을 마크했고, 결국 노찬엽의 타율을 넘어서 시즌을 끝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타격왕은 거의 이강돈으로 확정된 듯했다. 그러나 추석연휴 전까지 타격 3위였던 한대화가 급부상했다. 10월 1일과 2일 이틀간 4안타를 몰아치면서 타율 0.33493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할푼리까지 똑같고, ‘모’까지 반올림을 해도 0.3349로 두 타자의 타율이 일치하는 사상 초유의 결과였다. 결국 소수점 아래 다섯 번째 자리인 ‘사’에서 희비가 갈려 한대화가 타격왕을 거머쥐었다. 지금까지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다시 나오기 힘들 것 같은 전쟁. 미국 메이저리그(MLB)와 일본 프로야구(NPB)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격렬했던 한가위의 타격왕 싸움이었다.
#1995·1998년 OB-해태의 악연과 희비
1995년 OB와 해태는 추석연휴였던 9월 8~10일 광주구장에서 더블헤더를 포함한 4연전을 치렀다. OB에는 정규시즌 1위, 해태에는 포스트시즌 티켓이 걸린 최고의 빅 매치였다.
결과는 싱거웠다. 얄궂게도 OB는 이 4경기를 모두 이겼고, 여세를 몰아 선두에 올라 있던 잠실 라이벌 LG까지 추격했다. 결국 0.5경기 차로 극적인 페넌트레이스 역전 1위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내친 김에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해낸 것은 물론이다. 반면 해태는 추석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온 홈팬들 앞에서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충격적인 4연패를 당했다. 안방에서 가을잔치 티켓을 사실상 빼앗겨 아픔이 더 컸다.
3년 뒤인 1998년에도 역사는 되풀이됐다. 두 팀이 추석연휴 2연전에서 다시 만났다. 해태는 OB와 1무 1패만 하면 4강이 확정되는 상황. 반면 OB는 2경기를 다 잡아야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했다. 당연히 큰 부담이 없는 해태가 절대적으로 유리해 보였다. 그러나 하늘은 OB의 편이었다. 첫 날은 리그를 호령하던 해태 마무리 임창용이 블론세이브를 했고, 다음 날에는 해태 에이스 이대진이 시즌 최악의 피칭으로 무너졌다. 가장 믿었던 투수 두 명이 차례로 부진한 해태는 경기를 제대로 풀어가지 못했다. OB는 이때 거둔 2승 덕에 5할이 안 되는 승률(0.496)로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해태는 이 2패 탓에 5위로 밀려나 가을잔치와 멀어졌다.
1999년 추석연휴 기간을 포함해 10연승 행진을 달린 한화는 마침내 팀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했다. 사진=연합뉴스
#1999년 한화가 만들어낸 10연승 기적
추석연휴에 역대 가장 큰 기적을 완성한 팀은 한화 이글스였다. 창단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이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양대리그 체제였던 1999년 매직리그 2위 한화는 추석연휴를 앞두고 드림리그 3위 현대 유니콘스에 4.5경기 차로 뒤진 상태였다. 당시 규정에는 ‘한쪽 리그 3위의 승률이 다른 리그 2위의 승률과 같거나 더 높을 경우, 3전 2선승제 준플레이오프를 열어 플레이오프 진출팀을 가린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야구계에는 “3경기 차를 따라 잡으려면 한 달이 필요하다”는 속설이 있다. 경기가 12게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화가 현대보다 더 높은 승률로 시즌을 마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한화는 추석연휴가 시작되자마자 놀라운 기세를 뽐냈다. 맞수였던 현대와 3연전을 싹쓸이하면서 한꺼번에 3게임차를 줄였다. 특히 추석 당일인 9월 24일 맞대결은 상징적이었다. 현대는 19승 에이스 정민태, 한화는 15승 투수 정민철을 각각 선발 투수로 내세웠다. 5회까지 0-0으로 팽팽히 맞섰지만, 6회 이영우-7회 백재호-8회 최익성이 차례로 홈런을 터트리면서 한화가 승기를 잡았다. 정민철은 완봉승을 거뒀고, 한화는 4-0으로 이겼다.
그 상승세는 연휴가 끝난 뒤까지 이어졌다. 파죽의 10연승을 내달렸다. 더 이상 준플레이오프는 치를 필요가 없어졌다. 한화는 결국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드림리그 1위 두산을 4전 전승으로 꺾었고, 한국시리즈에서 롯데를 4승 1패로 물리치면서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달성했다.
#2008년 두산의 극적인 2위 탈환
그해 추석연휴에는 두산과 롯데가 2위 자리를 놓고 불꽃 튀는 경쟁을 펼쳤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까지 2위 롯데와 3위 두산의 게임차는 단 1경기. 시즌 내내 두산이 여유 있는 2위를 달렸지만, 롯데가 연휴 직전 18경기에서 11연승을 포함해 17승 1패라는 기적적인 성적을 올리면서 순식간에 추월한 직후였다. 추석연휴 기간인 9월 12~14일 롯데는 삼성 라이온즈와 대구 3연전, 두산은 KIA 타이거즈와 잠실 3연전이 각각 예정된 상황. 두 팀의 경기 결과에 야구계의 시선이 쏠렸다.
롯데는 삼성을 맞아 2승 1패로 선방했다. 하지만 두산이 더 강했다. 4강권에서 멀어진 KIA를 3일 내내 두들겨 스윕을 달성했다. KIA가 서재응와 윤석민을 선발로 내세웠지만, 2위를 탈환하기 위한 두산의 맹공격을 버텨내지 못했다. 추석연휴가 끝난 뒤 두산은 다시 게임차 없이 승률에서 앞선 2위로 올라섰고, 여세를 몰아 19~21일 롯데와 사직 3연전 맞대결을 싹쓸이했다.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은 그렇게 두산의 손에 들어갔다.
롯데 역시 팀 순위가 ‘8-8-8-8-5-7-7’로 이어지던 암흑기에서 빠져 나와 8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하는 기쁨을 누렸다.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던 롯데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계약서에 포함됐던 ‘4강 진출’ 옵션을 달성해 연봉에 맞먹는 추석 선물을 받았다. 두 팀 모두에게 풍성한 한가위였다.
#2009년 한복 입은 외국인 감독
이듬해 추석연휴에는 사직구장에서 준플레이오프가 열렸다. 매치업은 얄궂게도 다시 3위 두산과 4위 롯데. 오래 묵은 4강의 한을 풀고 2년 연속 가을 잔치에 나선 롯데는 서서히 더 높은 자리를 원하기 시작했다. 잠실에서 열린 원정 1차전을 먼저 잡으면서 기세도 올렸다. 하지만 이후 조짐은 좋지 않았다. 2차전을 두산에 내줬고, 사직구장으로 자리를 옮겨 치러진 3차전도 다시 패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1승 2패로 몰린 4차전을 앞두고 갑자기 한 가지 공약을 했다. 한국의 명절 추석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이틀 전 구단 사장에게 선물받은 한복을 경기 후 입겠다는 얘기였다. 롯데가 패하면 그대로 시즌이 끝날 수도 있었지만, 로이스터 감독은 “결과와 관계없이 한복을 입고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다.
슬픈 가정은 현실이 됐다. 롯데는 3회 대거 7점을 내주면서 5-9로 역전패했다. 2년 연속 다음 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고 가을 야구를 마감했다. 하지만 로이스터 감독은 약속대로 한복을 입고 나와 롯데 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두산 선수들에게는 축하 박수도 보냈다. 누군가에게는 외국인 감독만이 선물할 수 있는 추억,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패장의 지나친 퍼포먼스로 각각 다르게 기억된 장면이다.
#2019년 배영수의 끝내기 보크로 웃은 SK, 그러나…
SK 와이번스는 지난해 정규시즌 막바지까지 1위를 독주했다. 한때 2위권과 9.5경기까지 격차가 벌어졌을 정도다. 그러나 추석연휴를 앞두고 두산에 4.5경기 차까지 쫓기는 신세가 됐다.
추석연휴 사흘째인 9월 14일 두산과 인천 맞대결을 앞두고는 격차가 3.5경기까지 줄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경기 초반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1회부터 외야 수비에서 연거푸 실수가 나왔다. 경기 중반까지 엎치락뒤치락 시소게임이 이어졌는데, SK는 홈런으로 득점을 올리고도 외야 수비 실수를 빌미로 두산에 역전 점수를 내주곤 했다.
설상가상으로 8회말 2사 만루 기회에서 대타 박정권이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고, 9회초 마무리 투수 하재훈이 2사 만루에서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해 추가 실점을 했다. SK는 4-6으로 뒤진 채 9회말을 시작했다. 패색이 짙었다.
이때 반전이 일어났다. 선두타자 제이미 로맥과 이재원이 두산 소방수 이형범을 상대로 연속 안타를 쳐 무사 2·3루 기회를 만들었다. 김강민이 우익수 오른쪽에 떨어지는 2타점 동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나주환의 희생 번트와 정현의 좌전 안타로 1사 1·3루가 이어지자 두산은 결국 투수를 베테랑 배영수로 교체했다.
그 순간 믿기 힘든 장면이 나왔다. 첫 공을 던지기 위해 막 준비 동작을 시작하던 배영수가 갑자기 몸을 돌려 1루로 견제구를 던지려다 멈췄다. 중심축인 오른발을 투수판에 둔 채였다. 심판진 전원과 SK 3루주자 김강민이 동시에 배영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보크!”를 외쳤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의 황당한 실수. KBO리그 통산 6번째 끝내기 보크가 나왔다. ‘무투구 끝내기 보크’는 사상 최초였다.
배영수는 심판진을 향해 “보크가 아니다”라고 강하게 어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두산 내야수들 역시 별다른 항의를 하지 않고 조용히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반면 SK 더그아웃은 환호의 도가니였다. SK 3루주자 김강민이 만세를 부르며 자동으로 홈을 밟았다. 끝내기 득점. 동시에 두 팀의 격차는 다시 4.5경기로 벌어졌다. SK는 시즌 84승째를 올려 구단 한 시즌 최다승 기록에 타이를 이뤘다.
야구계는 “이 보크로 인해 사실상 1위 싸움은 끝났다”고 판단했다. 팀당 10경기 안팎을 남겨둔 시점이라 4.5경기 차는 뒤집기 불가능한 거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내기 보크보다 더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러클 두산’의 기운이 배영수의 불운을 이겼다.
이후 두산의 연승, SK의 연패가 계속되면서 두 팀의 격차는 빠르게 좁혀졌다. 9월 19일 두 팀의 더블헤더에서 두산이 2승을 모두 따낸 게 결정적이었다. 두산은 결국 시즌 최종전 승리로 SK와 동률을 이뤘고, 상대 전적에서 앞선 팀이 승자라는 규정에 따라 정규시즌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그해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한 마지막 투수 역시 배영수였다. 배영수는 드라마 같은 스토리를 남기고 은퇴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