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이재용 부회장은 자녀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적어도 경영승계 문제를 둘러싼 검찰과 삼성의 ‘질긴 인연’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요신문이 이번 삼성 경영승계 재판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봤다.
수사기록 437권 21만 4000쪽, 소환 대상 약 300명, 면담 횟수 860여 회, 공소장 133쪽. 삼성 불법 승계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이 1년 9개월 간 남긴 기록들이다. 검찰은 이 기록들을 근거로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전·현직 삼성 임원 등 총 11명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행위, 업무상 배임, 외부감사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10월 22일 첫 공판준비기일을 시작으로 재판이 본격화 된다.
이재용 부회장의 불법 경영승계 의혹 재판이 오는 10월 22일 시작된다. 사진=임준선 기자
#불안한 지배구조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삼성 지배의 핵심은 계열사 전체 시가총액의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삼성전자의 지배력 확보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삼성 총수 일가가 직접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은 모두 더해도 6%가 채 되지 않았다. 삼성 총수 일가는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삼성전자 최대주주에 오르는 대신, 삼성전자 지분을 많이 가진 계열사를 지배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이 회장으로부터 총 4차례 증여받은 61억 4000만 원을 기반으로 ‘이재용→에버랜드(이후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기본 축을 마련했다. 다만 삼성 총수 일가는 삼성전자의 2대 주주, 즉 또 다른 지배구조의 핵심 축인 삼성물산 지분은 이건희 회장 1.37%, 이재용 부회장 0%였다. 총수 일가는 이를 ‘삼성물산→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여러 개의 순환출자 방식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2011~2012년 대선을 앞두고 심각한 ‘지배구조 리스크’가 불거졌다.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여야가 경쟁적으로 금산분리, 순환출자 해소와 금지 입법 등을 공약하기 시작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기존 지배력이 통째로 흔들리는 법안들이었다. 지배력을 유지하려면 전과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2015년 제일모직으로 이름을 바꾼 에버랜드가 삼성물산과 합병했다. 이를 통해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지분 16.4%를 확보하면서 최대주주가 됐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06%도 갖게 되면서, 금산결합과 순환출자 없이도 삼성그룹 핵심 회사에 대한 지배력이 공고해졌다. 삼성 총수 일가가 불안했던 지배구조를 일부 해소하고 세대교체를 이뤄내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검찰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일어난 행위들이 ‘불법’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합병 전 일련의 과정들은 ‘범행 동기’이자 ‘배경’이고, 합병은 ‘이재용 부회장이 최소비용을 들여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삼성이 합병 전후로 했던 행위들이 ‘자본시장법의 입법 취지를 몰각한 조직적인 자본시장 질서 교란 행위로서 중대 범죄’라는 것이 검찰 입장이다.
서울 서초구 삼성 사옥 전경. 사진=일요신문DB
#시세조종, 인위적 주가관리 ‘자본시장법 위반’
법조계에선 검찰과 삼성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화력을 집중할 것으로 전망한다. 검찰이 이 혐의에 대해 적용한 공소사실만 15가지가 넘는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삼성은 합병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이 가장 많은 제일모직 주가를 인위적으로 부양(시세조종)했고, 허위 정보 등을 유포해 투자자의 의사결정을 왜곡, 삼성물산 주주와 회사에 피해(부정거래)를 줬다.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와 관련, 검찰이 이번 수사를 통해 새롭게 확인한 삼성의 ‘범죄 행위’가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헤지펀드 엘리엇 등 삼성물산 주주들의 반발로 합병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당시 2대 주주이자 우호세력으로 통했던 KCC를 동원했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삼성이 KCC에 경제적 이익을 약속하고 삼성물산이 가진 자사주 전량(5.67%)을 팔아 합병 찬성표를 던지게 했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여기에 일성신약이 합병 반대 가능성을 언급하자 역시 대규모 이익을 제안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거래 경위를 가장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밝혔다.
‘시세조종’ 작업도 드러났다. 이사회의 합병 결의 전에는 악재를 선반영하고, 결의 뒤에는 각종 호재를 풀어 주가를 부양하는 방식이라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특히 삼성은 이사회 합병 결의 뒤 합병안 투표를 위한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까지 약 한 달 보름 동안 삼성바이오에피스 나스닥 상장 계획과 용인 에버랜드 개발 계획 등을 발표했는데, 검찰은 이 계획들이 모두 이재용 부회장이 대주주인 제일모직의 주가를 띄우기 위한 허위 호재인 것으로 판단했다. 이 계획들은 합병 성사 뒤 모두 없던 일이 됐다.
합병안 통과 뒤엔 주식매수청구 억제를 위해 제일모직이 자사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이는 인위적 주가 관리를 했다고 검찰은 봤다. 당시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가격 밑으로 떨어질 경우 주주 이탈로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지자 제일모직은 4200억 원 규모의 단기대출 등을 통해 자사주를 일주일 동안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검찰은 이 기간 제일모직이 고가매수와 물량소진 주문이 수만 건에 이르는 등 시세조종성 주문을 냈다고 밝혔다. 실제 제일모직의 주가는 청구가격 위로 유지되다, 청구기간이 끝나자 곧바로 떨어졌다.
검찰은 이재용 부회장과 전·현직 임원 11명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 업무상 배임,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사진=임준선 기자
#“삼성물산 경영진, 미전실 지시 따르기만 했다”
업무상 배임 혐의는 검찰이 이재용 부회장과 전·현직 임원들을 기소하면서 가장 주목 받았다. 앞서 이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 때는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초 검찰 수사팀은 배임죄 적용에 장고를 거듭하다가, 기소 전 30여 명의 법률·회계 전문가로부터 의견을 듣는 과정에서 배임 혐의 추가 의지를 굳힌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이 판단한 업무상 배임의 피해 주체는 삼성물산과 이 회사 주주들이다. 공소장을 보면, 제일모직은 2014년 12월 상장 이후 주가가 고평가된 반면, 삼성물산은 2014년 하반기 이후부터 주가가 저평가돼 있었다. 경영적 판단에 의한 합병이라면 삼성물산 경영진은 면밀한 검토를 통해 제일모직과의 합병 시기와 조건을 조절했어야 한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검찰 공소장에는 한 글자도 바뀌지 않고 두 번 반복되는 문단이 있다. “합병하는 회사의 경영진과 이사회는 회사 및 그 주주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이사의 선관의무 및 충실의무에 따라 정확하고 충분한 자료와 정보를 수집, 분석하여 합병이 필요한지, 합병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합병 외 다른 대안은 없는지, 시너지 등 합병 효과가 있는지, 있다면 그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합병 시점과 합병 비율은 적정한지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합병 여부 및 조건 등을 결정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검찰에 따르면, 합병을 앞둔 2015년 4월 하순경까지도 삼성물산은 내부적으로 아무런 준비나 검토가 없었다. 검찰은 “삼성물산 및 물산 주주의 이익 보호를 위해 합병의 사업적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해야 하는 의무를 위배했다“며 ”삼성물산 및 물산 주주들에게 적정한 합병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기업가치 증대 기회 상실의 재산상 손해를 가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런 형태의 합병이 진행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삼성의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을 지목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과 미전실이 제일모직의 주가가 높고 물산의 주가가 낮은 시기에 합병을 추진하는 등의 계획을 정해 하달했고, 삼성물산 경영진은 이를 아무런 검토나 판단 없이 그대로 따랐다는 것이다.
검찰이 이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내세운 주요 근거는 2012년 12월 삼성 내부에서 작성된 ‘프로젝트 G(거버넌스의 준말)’ 문건이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이 문건에는 △2013~2014년 에버랜드의 옛 제일모직 패션사업 흡수, 레이크사이드 인수 등을 실행한 사업조정 △2014년 제일모직 상장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바이오젠과의 콜옵션 허위공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1 대 0.35 비율의 흡수합병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오는 10월 22일부터 삼성 경영승계 의혹 재판이 열린다. 사진=일요신문DB
특히 문건에는 합병과 관련해 ‘지배력 확대’ ‘물산의 취약한 지배력을 제고’ 등의 표현이 나온다. 단순히 당시 여야의 공통 공약이었던 일감 몰아주기 과세와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에 대한 현안 대응만이 아니라, 삼성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포함한 그룹 재편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이 문건을 작성한 주체는 미래전략실이다. 공소장 초반부에 미전실의 정의와 역할 등을 상세히 적시한 검찰은 이 조직이 주주나 회사의 이익은 배제하고 오직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만을 위해 2012년 구체적인 ‘설계도’를 그린 뒤 2015년 전후로 삼성물산에 계획을 하달, 지시하는 방식으로 문건 내용 대부분을 그대로 이행했다고 보고 있다.
오랫동안 삼성 경영승계 과정에 문제제기를 해왔던 전문가들은 이 부분에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제민주주의21의 김경율 회계사는 “경영상 이유로 계열사 합병을 검토한다면 해당 회사의 이사회가 검토하는 게 맞다”며 “특수한 조직(미전실)이 총수 일가의 지분율까지 계산해가며 합병을 검토하고 지시하는 건 일반적인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순탁 참여연대 회계사(내가만드는복지국가 조세재정팀장)도 “삼성물산은 경영진은 기본적인 의무를 방기하고 주주와 회사의 이익은 배제한 채 오직 총수 일가 이익만을 위해 달려 나간 것”이라며 “이는 국내 주식회사 제도, 상법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는 두 차례
검찰은 이번 수사의 단초가 된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에 대해서도 새로운 논리를 제시했다. 그동안 분식회계 의혹은 2015년 회계기준 변경을 둘러싸고 불거졌다.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 뒤 콜옵션 부채가 드러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본잠식에 빠져 합병 정당성이 흔들릴 위기에 처하게 되자 삼성바이오가 종속회사로 두고 있었던 삼성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변경하면서 자산가치를 크게 부풀렸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검찰은 분식회계가 이보다 앞선 2014년 한 번 더 있었다고 판단했다. 2014년 삼성바이오 재무제표 주석에 붙은 ‘콜옵션’ 공시부터가 ‘허위공시’라는 것이 검찰 설명이다. 당시 삼성바이오는 합작사인 미국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 종속기업 에피스 지분 49.9%를 사들일 수 있는 콜옵션을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삼성이 바이오젠이 준 ‘권리’는 콜옵션뿐만이 아니었다.
52% 동의가 있어야 주주총회 의결이 되는 조항(통상 50% 이상이면 주총 결의를 통과), 주요 의사결정을 할 땐 바이오젠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조항 등이 더 있었다. 삼성바이오의 공시만 보면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더라도 삼성바이오는 지분 50.1%를 보유해 지배권을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조항들을 종합해 보면 처음부터 삼성바이오가 에피스의 지배권을 갖지 못했던 셈이다. 삼성이 이를 시장에 알리지 않고 숨겼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2015년도 회계기준 변경이 분식회계가 되는 것도 2014년도 ‘허위공시’와 연결된다고 검찰은 주장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2공장. 사진=삼성바이오로직스
#검찰 ”충분히 혐의 입증 가능“, 삼성 ”수사팀 일방적 주장“
검찰은 이번 ‘삼성 범죄 혐의’를 ‘물증으로 입증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진술 외에도 삼성이 조직적으로 앞서의 행위들을 했던 물적 증거를 수사과정에서 확보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의 관여 여부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직접 세계적인 부호 워런 버핏과 만나 이면약정을 제안하거나,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게 합병 찬성을 청탁했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다른 합병과 관련한 내용에 대해서도 검찰은 지배력 강화 작업이 이 부회장 본인의 승계 목적으로 진행된 만큼 보고가 안 됐을 리 없고, 관련자들도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증언을 내놨다고 밝혔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검찰이 이 부회장 등을 기소한 지난 9월 1일 입장문을 내고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변호인단은 “자본시장법 위반, 회계분식, 업무상 배임죄는 증거와 법리에 기반하지 않은 수사팀의 일방적 주장일 뿐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며 “검찰이 설명한 증거들은 모두 구속 전 피의자심문이나 수사심의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제시돼 철저히 검토됐고, 다시 반박할 가치가 있는 새로운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다.
합병이 이재용 부회장 승계만을 위해 이뤄졌다는 내용에 대해선 “삼성물산 합병은 경영상 필요에 의해 이뤄진 합법적 경영 활동이고, 모든 절차는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해선 ‘이사의 주주에 대한 업무상 배임죄를 인정하지 않는 일관된 대법원 판례에 반한다’는 법리적 이유와 합병으로 인해 구 삼성물산이 오히려 시가 총액 53조 원에 이르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을 소유하게 되는 이익을 봤다는 점 등을 강조했다.
검찰과 삼성은 10월 22일 1차 공판준비기일부터 창과 방패를 바꿔들며 치열한 법리다툼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2017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재판을 받을 때, 삼성은 ‘공소장 일본주의’를 두고 검찰과 날선 공방을 벌였다. 이후에는 검찰이 제시하는 증거의 증거능력을 두고 다툼을 벌일 것으로 관측된다. 수사 기간이 길었고, 검찰이 확보한 증거가 다수인 만큼 삼성 변호인이 이를 검토하고 협의를 하는 등의 과정을 거치는 기간만 해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