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P/연합뉴스 |
아마도 많은 축구팬들은 지난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잠깐 뛰었던 아르헨티나의 한 ‘키 작은 선수’를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당시 조별 예선이었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전에서 후반 30분에 교체 투입됐던 이 선수는 기다렸다는 듯 여유롭게 후반 43분 골을 터뜨렸다. 관중들은 이 ‘키 작은 선수’를 향해 기립박수를 보내면서 환호했고, 결국 아르헨티나는 6 대 0으로 승리했다. 비록 15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날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이 어린 선수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리고 4년 후 월드컵에서는 세계적 스타로 성장해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이런 예상은 적중했다. 이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는 바로 아르헨티나 최고의 축구 선수이자 ‘마라도나의 후예’라고 불리는 축구 신동 리오넬 메시(23)다.
“나는 양발로 나를 말한다.”
평소 말수가 적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내성적인 성격인 메시가 스스로 말한 것처럼 그는 자신의 양발로 일찌감치 세계를 놀라게 했다.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긴다’고 말하는 그는 17세 때 2004-05 시즌 프리메라리가 최연소 선수로 데뷔함과 동시에 데뷔골까지 터뜨렸다. 그리고 그해 소속팀인 FC 바르셀로나는 리그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이듬해인 2006년에는 프리메라리가와 UEFA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섭렵하면서 팀의 승리에 공헌했다.
2006-07 시즌부터는주전 멤버로 뛰기 시작했고, 26경기에 출전해 14득점을 하는 등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그리고 2008년에는 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국 아르헨티나를 위해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그의 눈부신 활약은 최근 몇 년 동안 더욱 빛을 발했다. 2008-09 시즌에서는 51경기에 출전해 총 38골을, 그리고 2009-10 시즌에는 53경기에서 총 47골을 기록했다. 이번 시즌에는 무려 세 번의 해트트릭을 성공하기도 했다.
결국 지난해 22세의 어린 나이에 발롱도르(올해의 유럽 축구 선수상)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을 모두 수상하면서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메시는 현재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그의 성공은 타고난 재능 하나만으로 일궈진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그의 가장 큰 핸디캡은 169㎝의 작은 키였다.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가난한 철강공장 노동자 아버지와 청소부 어머니 밑에서 자랐던 메시는 어릴 때부터 축구에 남다른 재능을 나타냈다. 5세 때부터 아버지가 코치를 맡고 있던 지역 클럽인 ‘그란돌리’에서 처음 축구공을 차기 시작했고, 8세 때부터는 지역 명문인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 입단해서 본격적으로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문제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현저히 작은 키였다. 메시의 키는 12세가 넘도록 140㎝에 머물러 있었고, 13세 때부터는 아예 더 자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키가 자라지 않는 원인은 바로 ‘성장호르몬 결핍’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후 치료 방법을 모색했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부모는 한 달에 900달러(약 110만 원)하는 호르몬 주사 비용을 댈 수 없었다. 아르헨티나의 명문클럽인 ‘리베르 플라테’가 메시의 재능에 관심을 보였지만 역시 비싼 치료비를 감당할 능력은 없었다.
행운은 바다 건너 다른 곳에서 찾아왔다. 메시에 대한 소문을 들은 스페인 FC 바르셀로나 측이 신인을 발굴하는 ‘영스타 트라이얼’에 메시를 초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메시는 축구 인생의 은인이자 스승이기도 한 카를레스 렉사흐 전 감독을 만나게 된다. 당시 스포츠 디렉터였던 렉사흐는 한눈에 메시의 천재성을 알아봤다. 다른 청소년팀 코치들이 ‘천재다’ 혹은 ‘너무 허약하다’며 의견이 분분했을 때 그는 메시의 뛰는 모습을 보고 단 10분 만에 스카우트 결정을 내렸다.
바르셀로나 입단과 관련해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당시 비록 렉사흐의 입에서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긴 했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구단과의 정식 계약은 진행되지 않았다. 이에 마음이 불안해진 메시의 아버지는 렉사흐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카페에서 만날 것을 제의했다.
아버지가 자신의 불안한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자 렉사흐는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작성했다. 당시를 회상하면서 렉사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시 탁자 위에는 종이냅킨이 든 작은 상자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냅킨 두 장을 꺼내서 바로 계약서를 썼다.”
렉사흐는 냅킨 위에 ‘바르셀로나, 2000년 12월 14일’이라는 날짜와 함께 ‘구단 내 일부 다른 의견에도 불구하고 메시를 데려오는 것에 대해 본인이 전부 책임을 지겠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며칠 후 이 내용은 깨끗한 종이 위에 정식으로 작성됐고, 매 시즌 5만 7697유로(약 8500만 원)의 연봉을 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여기에는 성장호르몬 주사 비용을 무상으로 지원해주는 등 성장 장애를 치료해 준다는 조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13세의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유럽에서 생활해야 했던 메시는 이때부터 오로지 축구 하나만을 보면서 달렸다. 자신의 작은 키를 극복하기 위해서 다른 선수들보다 더 많은 연습을 했고, 주기적으로 자신보다 훨씬 키가 큰 어른들과 경기를 하기도 했다.
꾸준히 치료를 받은 결과 키도 정상적으로 자랐다. 처음 스페인에 도착했을 때에는 140㎝에 불과했던 키는 매달 1㎝씩 자라기 시작했고, 3년 후에는 168㎝까지 자랐다.
▲ 메시와 연인 안토넬라. |
하지만 몸은 스페인에 있어도 그의 마음은 늘 조국인 아르헨티나에 있었다. 애국심이 투철하기로 유명한 메시는 16세 때 스페인의 귀화 권유를 받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절대로 조국을 배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극구 우겨서 출전했던 것도 이런 까닭에서였다.
메시는 2005년 8월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헝가리와의 친선경기에서 꿈에 그리던 아르헨티나 국기를 가슴에 달고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지만 이날 경기에서 뼈아픈 경험을 했다. 후반 18분 교체 투입됐지만 불과 45초 만에 퇴장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상대 선수를 팔꿈치로 가격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날 메시는 울면서 그라운드를 떠났고, 그리고 몇 시간 동안 라커룸에 앉아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그 다음달 파라과이와의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다시 모습을 나타낸 메시는 “나의 진정한 국가대표 데뷔전은 오늘이다. 헝가리전은 내 기억 속에서 지웠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런 경험 덕분에 메시는 그라운드에서도 겸손하고 정직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로 유명하다. 화려한 기교를 부리거나 트릭을 쓰는 일도 드물다. 팀 동료였던 호나우지뉴가 골 넣는 기술이나 트릭을 연구할 때 메시는 묵묵히 체력을 단련하는 훈련에만 집중했다. 왜 기교 연습을 하지 않냐는 질문에 메시는 “나는 그저 내 앞에 놓인 경기를 할 뿐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런 플레이를 하는 이면에는 메시의 내성적이고 부끄럼을 많이 타는 성격도 있다. 그라운드에서는 어느 선수들보다도 활기가 넘치면서 주목을 받는 그는 경기가 끝나는 호각이 울리는 동시에 ‘주연’에서 ‘조연’이 되곤 한다. 다른 선수들이 승리의 기쁨을 느끼면서 춤을 추거나 환호성을 지를 때에도 그는 구석에 가만히 앉아 웃으면서 선수들을 지켜보기만 한다. 이런 태도에 대해 메시는 “나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바르셀로나에서 함께 뛰었던 브라질 선수들인 호나우지뉴, 실빙요, 데쿠 등은 이런 소극적인 메시를 위해 많은 신경을 써줬다. 낙천적이고 활발한 브라질 선수들은 식사 때마다 자신들과 함께 먹자며 일부러 메시를 테이블로 데리고 왔고, 당시 최고 선수였던 호나우지뉴는 “너는 여기 앉아도 되는 유일한 아르헨티나 선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밤에는 술집이나 클럽에 메시를 데리고 다니는 등 브라질 동료들은 메시의 얌전한 성격을 바꿔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메시는 사실 성격상 이런 데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그는 술집보다는 오히려 극장에 앉아 조용히 영화를 보는 것을 더 좋아했다.
이런 샌님 같은 성격은 여자친구를 사귀는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 현재 그가 사귀고 있는 여친은 고향의 소꿉친구인 안토넬라다. 고향 친구의 사촌 여동생인 안토넬라와 5세 때부터 알고 지낸 메시는 현재 바르셀로나에서 안토넬라와 함께 살고 있다. 메시는 “우리 부모님들은 서로 잘 아는 사이다. 아마도 우리가 이런 사이가 될 것이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지난해 영국의 데이비드 베컴을 제치고 수입 랭킹 넘버원이 된 메시는 현재 8000만 유로(약 1180억 원)의 몸값을 자랑하는 억만장자다. 하지만 그의 생활은 예나 지금이나 검소하다. 돈 쓰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다른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 유독 휴대폰에는 욕심이 생긴다”고 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현재 불치병과 싸우는 어린이들을 돕는 자선단체를 후원하고 있으며, “죽기 전에 메시 아저씨를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아이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 있다.
또한 은퇴해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이라는 소박한 바람을 나타내기도 했다.
‘축구 잘하는’ 메시도 좋지만 그보다는 ‘착한 축구를 하는’ 메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이런 메시가 대한민국 대표팀에게는 버거운 상대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승패 여부를 떠나 전 세계 축구인들의 꿈의 무대인 월드컵에서 메시의 ‘착하고 멋진 플레이’를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축구팬들은 흥분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
균형 감각 -169㎝의 작은 키에 뛰어난 균형 감각을 보유하기란 사실 힘든 일. 메시는 이런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서 하체 단련 훈련에 집중했고, 그 결과 누구보다도 튼튼한 하체 힘을 갖게 됐다. 덕분에 측면을 돌파하는 속도는 여느 장신의 선수보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침착함 -한번 골 찬스를 잡으면 결코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유명한 메시. 일단 페널티라인에 들어서면 골키퍼의 움직임을 읽기 위해 잠시 기다렸다가 침착하게 슛을 쏘는 방법으로 득점력을 높인다.
볼 제어력 -많은 훌륭한 선수들이 그렇듯이 메시 역시 볼을 다루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일단 발에 걸린 볼은 놓치지 않으며, 발로 공을 몇 번 차지 않고도 먼 거리를 달려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가령 처음 발로 공을 터치한 후 두 번째 터치에 4m를 달려가서는 4번째 터치 만에 슛을 쏜 적도 있다.
환상의 드리블 -상대 선수의 혼을 빼놓는 빠르고 정확한 메시의 드리블은 순식간에 수많은 선수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폭발력을 지녔다.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 오른쪽 발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대신 마치 자석이라도 붙은 양 왼쪽 발로만 공을 드리블한다.
관대한 성격 -공격수는 골을 넣는 데 있어 이기적이야 한다는 생각을 바꾸게 해준 선수가 바로 메시다. 메시는 개인적인 영광이나 기록에 연연해하지 않는 선수로 유명하다. 해트트릭을 기록했던 경기에서도 페널티킥을 얻어 4번째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그는 동료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에게 기회를 양보했다. 왜 그랬냐는 질문에 메시는 “골은 나보다 이브라에게 더 필요했다”고 말했다.
패스 능력 -현재 바르셀로나 팀에서 모두가 최고라고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패스 실력을 갖췄다. 따라서 송곳처럼 정확한 어시스트도 메시의 장기 중 하나다.
슈팅 파워 -메시는 ‘샷건’보다 ‘메스’를 더 선호하는 타입이다. 즉 중거리 슛보다는 상대 진영을 깊숙이 파고 들어가서 슛을 쏘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페널티 라인 밖에서 중거리 슛을 쏠 수 있는 파워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스피드 -순간 질주력도 웬만한 단거리 육상선수 못지 않을 정도록 폭발적이다. 비록 보폭은 작지만 그만큼 드리블하면서 빠른 속도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인지력 -메시는 드리블 할 때 고개를 들고 정면을 바라본다. 따라서 어느 선수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으며, 그만큼 정확한 패스와 어시스트도 가능해진다. 이 능력 덕분에 잽싸게 공을 패스한 후 다시 적절한 위치로 달려가서 다시 공을 리시브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체력 -작은 키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키 큰 선수들을 상대로 훈련을 거듭한 덕분에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체력을 자랑한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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