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 은행연합회장의 임기만료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차기 회장에 금융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은행연합회 정관에 따르면 회장의 임기는 3년이며,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 하지만 역대 회장 11명 가운데 김준성 초대 회장을 포함해 10명의 회장이 단임에 그쳤다. 이 때문에 금융권은 김태영 현 회장의 연임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 분위기다.
오는 11월 임기가 끝나는 김태영 회장의 후임에 관한 금융권의 하마평은 정·관계 출신 우세론이 주를 이룬다. 규제강화 등 산적한 금융 현안을 정부와 조율하려면 민간 출신보다는 정치권이나 관료 출신이 더 유리하다는 이유에서다. 퇴직 관료나 정치인 입장에서도 은행연합회장은 구미가 당기는 자리다. 임기 3년이 보장되는데다, 연봉 또한 어지간한 기업 최고경영자(CEO) 부럽지 않다. 2018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김태영 회장의 연봉은 기본급 4억 9000만 원에 성과급 50%를 더해 7억 3500만 원에 달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전통적으로 관료 출신들이 선호했던 자리다. 1984년 김준성 초대 회장을 비롯해 신병현(2대), 정춘택(3~4대), 이동호(6대), 류시열(7대), 유지창(9대) 등은 모두 한국은행이나 산업은행 총재 또는 부총재 등으로 역임한 인물들이다. 10대 회장을 맡았던 신동규 전 회장 역시 한국수출입은행장을 지냈다.
유지창(9대), 신동규(10대) 전 회장은 행정고시 출신이다. 민간 출신은 이상철(5대) 전 국민은행장, 신동혁(8대) 전 한미은행 회장, 박병원(11대)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하영구(12대) 전 씨티금융지주 회장 정도다. 게다가 박병원 전 회장의 경우 행시 17회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차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지낸 ‘반민반관’ 출신이다. 최근에는 고위 공직자의 민간기업 재취업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까지 더해져 관가에서 은행연합회장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현재까지 거론되는 차기 회장 유력 후보로는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과 민병두 전 의원이 꼽힌다. 최 전 위원장은 지난해 9월 퇴임한 이후 지난 8월 라이나생명의 라이나전성기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2017년에는 수출입은행장을 역임한 바 있어 금융지주 회장이나 은행장을 지낸 인물이 은행연합회장을 맡는 최근 관례에도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 전 위원장은 행시 25회로 은성수 금융위원장(27회)보다 두 기수 선배다. 국회 정무위원장 출신인 민병두 전 의원은 은행권 근무 경력이 없지만, 오랜 정무위 활동으로 금융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이들에 앞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김도진 전 기업은행장 등도 차기 회장 후보군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이동걸 산은 회장은 연임에 성공해 후보군에서 멀어졌다. 임종룡 전 위원장과 김도진 전 행장은 박근혜 정부와 함께 일했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대세다.
여러 상황들을 종합하면 ‘최종구 vs 민병두’의 양강구도가 굳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금융권에서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는 신중론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제3의 인물이 막판에 급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 금융관련 수장 자리에 기존 판세를 뒤엎는 인물이 기용된 사례가 다수 있는 만큼 은행연합회장 역시 끝까지 가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2017년 현 김태영 회장이 유력 후보들을 제치고 깜짝 등장하던 과정은 ‘막판 뒤집기’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농협중앙회 부회장(신용대표이사)을 맡고 있던 김 회장은 유력 후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이 지금처럼 ‘양강’를 형성하며 엎치락뒤치락하던 상황이었다.
김태영 은행연합회장.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2017년 11월 열린 은행연합회 이사회는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김태영 회장을 단독 후보로 추천하는 데에 합의했다. 이경섭 당시 농협은행장의 추천으로 갑자기 등장한 김 회장의 단독 후보 추천은 어찌된 일인지 별다른 의견 없이 신속하게 그리고 조용하게 처리됐다. 특히 유력 후보였던 윤용로 전 행장의 경우 갑자기 회장직을 고사하고 김 회장을 지지한다고 밝혀 의구심마저 자아냈다.
이런 과정은 은행연합회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 이뤄진 생명보험협회장 선출 과정에서도 KB생명 사장을 맡고 있던 신용길 현 회장이 갑자기 등장했다. 신 회장이 당시 유력 후보군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은 물론 관료 출신이 내정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상태였다. 금융권 최고권력으로 꼽히는 금융감독원장 자리도 예측을 무색케 하는 장면들이 여러 번 연출됐다. 취임 14일 만에 불명예 퇴진했던 김기식 전 금감원장은 아예 하마평에 오르지도 않다가 막판에 등장했다. 게다가 그의 후임에는 김오수 법무연수원장이 내정됐다는 보도까지 나왔지만 실제 주인공은 윤석헌 현 원장이었다.
이런 사례들에 비추어 이번 은행연합회장 선출 역시 “예측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예측”이라는 금융권 일각의 시각이 들어맞을지 관심을 모은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금융권 수장 인사를 돌이켜 보면 임기 만료 한 달 전까지의 구도는 그냥 당사자나 업계의 희망사항일 뿐인 경우가 많았다”면서 “정부 입김이 강한 업종인 만큼 업계 현장보다는 ‘높으신 분들’의 의중이 어디에 있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