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펀딩은 흔히 P2P 업체들이 취급하는 신용 및 부동산 담보대출 외에도 음악, 공연, 영상 등 동산 담보를 특화해 재미를 봤다. 금융혁신사례로도 꼽히면서 2019년 11월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팝펀딩 파주 물류창고를 직접 방문해 “팝펀딩을 시작으로 또 다른 동산 금융 혁신사례가 은행권에서 탄생해 보다 많은 혁신중소기업이 혁신의 과실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팝펀딩 대표가 사채를 굴린 게 회삿돈 추심에 영향을 줬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런 기대와 달리 지난 6월 팝펀딩은 금융당국에 폐업신고를 했다. 은 위원장이 업체를 방문한 지 불과 반년 만이다. 지난 7월 검찰은 신현욱 팝펀딩 대표를 포함해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신현욱 대표는 P2P금융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팝펀딩 대표에 대한 형사 처벌 외에도 추가제재를 검토 중이라고 전해진다.
최근 일요신문은 팝펀딩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고, 신현욱 대표와도 연관이 있는 A 씨를 만날 수 있었다. A 씨는 팝펀딩에서 5억 원을 자신의 법인 명의로 대출받기도 했다. A 씨는 “팝펀딩을 이용해 사기 행각을 벌인 사람이 있었고 허술한 팝펀딩이 그 사람에 놀아나면서 피해자를 양산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A 씨는 이런 사기행각 속에서 팝펀딩의 허술한 시스템을 엿봤다고 했다. 그는 “팝펀딩 사태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내가 본 팝펀딩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고 망할 수밖에 없는 회사였다”라고 단언했다.
A 씨는 2017년 팝펀딩을 알게 됐다고 한다. 평소 친분이 있던 유 아무개 씨가 A 씨에게 사업을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하면서다. 그때 유 씨는 “팝펀딩은 법인과 지급보증만 하면 무조건 한 법인당 5억 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유 씨는 그 돈을 이용해 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유 씨는 법인 2개를 지인 명의로 개설한 뒤 10억을 대출 받아 법인 운영비, 급여, 원자재 수입 등에 사용했다. A 씨는 “팝펀딩은 법인과 보증인만 있으면 묻지마 대출을 해줬다”고 말했다. A 씨도 유 씨 말에 따라 법인을 만들고 유 씨를 보증인으로 넣어 팝펀딩에서 5억 원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 팝펀딩이 이때 대출해 준 돈은 농협은행을 통해 받은 돈으로 알려졌다.
팝펀딩은 이렇게 묻지마 대출을 해주는 대신 부품이나 원자재 등에 담보를 잡아 놓는 방식으로 안전장치를 해둔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담보로 잡은 물건들은 대출로 받은 돈의 일부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다. A 씨는 “처음에는 유 씨도 정상적인 사업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았지만 팝펀딩의 허술함을 엿본 뒤부터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유 씨는 이 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듯 보였다고 한다.
P2P 업체 이자율은 1, 2금융권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10%가 넘는다. 유 씨가 팝펀딩에서 빌려간 돈은 약 14% 이율로 고금리다. 이자가 쌓여가고 상환 만기가 다가오는데도 유 씨는 딱히 변제 계획이 없어보였다. 그때 팝펀딩에서 제안을 한다. 팝펀딩은 유 씨에게 ‘법인 하나를 더 만들면 5억 원을 추가로 대출해줄 테니 그 돈으로 상환을 하라’고 권했다고 한다.
6월 29일 한국투자증권 자비스팝펀딩·헤이스팅스팝펀딩 환매연체 피해자 대책위는 서울남부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투자증권과 자비스자산운용·헤이스팅스자산운용, 팝펀딩 관계자 등 6명을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사진=허일권 기자
유 씨는 또 다른 법인 이름으로 대출을 일으켜 채무 중 일부를 갚는다. 금융업체가 채무자의 대출 상환이 연체되자 돌려막기를 권했다는 얘기다. 라임자산운용이 돌려막기를 통해 연체율을 감췄던 방법과 비슷했다.
P2P 업계 전문가는 팝펀딩의 허술한 대출승인 시스템과 별개로 돌려막기를 즉시 제안한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P2P 업계는 온라인 기반 금융이기 때문에 연체율, 대출잔액 등이 실시간으로 반영돼 순위까지 매겨진다. 연체율이 올라가면 그 즉시 투자가 들어가지 않는다. 워낙 먹튀가 많았다보니 민감할 수밖에 없다. 많은 P2P 업체들이 상환이 늦어지면 그 즉시 돌려막기로 전환하는 이유도 돌려막기를 안하면 투자유치가 안돼 급속도로 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 씨 말에 따르면 신현욱 팝펀딩 대표는 유 씨에게 개인 사채까지 투자했다. A 씨가 제공한 녹취록에는 신 대표가 “유 씨가 10년 이상된 중고차를 외국으로 파는 게 돈이 된다고 설명했다. 10억 원만 모아주면 월에 25% 이상 수익이 난다고 했다. 수익률이 월 25%라고 하길래 4번을 물어봤다. 그래서 주변 지인들 돈을 모아서 10억 원을 만들어 줬다. 수익률이 25%라고 했으니 유 씨가 15%, 내가 10% 수익률을 가져가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현재 법정 최고 이자율은 24%다. 연 이자율을 초과해 이자를 받은 대부업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녹취록 속 신 대표는 5%씩 6개월을 받았다고 말했다. 월 이자 5%를 1년 단위로 계산하면 이자율 60% 정도의 고금리가 된다.
전 P2P금융협회장이었던 신 대표가 법정 최고이자를 훌쩍 뛰어넘는 고리대금업을 했다는 것도 황당하지만 더 큰 문제는 개인적인 사채가 공적 업무인 회사와 연결되면서다. 팝펀딩이 적극적으로 유 씨에게 돈을 받아내지 못한 이유가 신 대표의 돈 놀이 때문이라는 녹취가 존재했다. A 씨가 건넨 또 다른 녹취에는 B 아무개 팝펀딩 이사가 ‘신 대표가 불법 이자를 받았기 때문에 팝펀딩에서 빌려간 유 씨 채무 추심을 강력하게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는 순간이 녹음돼 있었다.
10월 8일 현재 팝펀딩 대출 잔액은 약 1290억 원, 연체율 97.48%에 달해 피해는 점점 더 커질 전망이다.
유 씨는 팝펀딩에서 돈을 쉽게 대출받는다는 점을 이용해 여러 명에게 대출을 일으켰고 이 돈을 갚지 않았다. 유 씨 문제가 점점 커지자 법인 대표들은 팝펀딩에 유 씨 채권을 추심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팝펀딩은 “법인 대표는 개인이니 문제가 생기면 폐업하면 된다. 유 씨가 보증인이고 유 씨가 쓴 돈이니 대표들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는다”고 공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팝펀딩의 말과 달리 현재 자금주인 농협 측에서는 법인 대표들에게 추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팝펀딩 대표가 개인적으로 대출해준 일 때문에 제때 추심하지 못하면서 유 씨 말을 믿고 법인 명의로 투자금을 대출받은 법인 대표들의 피해만 커졌다. 신현욱 팝펀딩 대표 등 3명은 6개 자산운용사와 개별투자자 156명의 약 550억 원의 투자금으로 부실대출금을 돌려막기 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팝펀딩이 공시한 대출 잔액은 이날 현재 약 1290억 원으로 연체율이 97.48%에 이르기 때문에 피해액은 늘어날 전망이다.
A 씨는 “팝펀딩은 법인만 개설되면 묻지마 대출을 해줬고 문제가 생기면 돌려막기를 서슴지 않았다”면서 “자금에 부실이 생겨도 대표 약점 때문에 제대로 추심하지 못한 어처구니없는 업체였다. 결국 피해는 팝펀딩에 돈을 맡긴 P2P 투자자들과 유 씨의 사례처럼 팝펀딩의 허점을 이용해 벌인 사기 행각에 속아 법인 대출을 받아 준 법인 대표들이 떠안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유 씨는 수사를 받다 미국으로 도주했고 검찰에서는 기소 중지한 상태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