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관 대사대리. 사진=연합뉴스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는 평양외국어대학 프랑스어학과를 졸업한 엘리트 출신이다. 북핵 문제가 국제적으로 공론화되면서 이탈리아는 북한 대사를 추방했고, 이탈리아에 남아있던 조 전 대사대리는 대사 직위를 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2019년 1월 조 전 대사대리는 부인과 함께 잠적했다. 북한 대사관을 탈출한 조 전 대사대리 부부는 이탈리아 정보 당국 보호를 받으며 제3국 망명을 타진했다.
조 전 대사대리는 모종의 이유로 한국행을 결심했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조 전 대사대리는 2019년 7월 한국에 입국했다. 조 전 대사대리 딸은 2018년 11월 14일 북한으로 돌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조 전 대사대리 딸의 ‘강제 북송’ 관측과 관련해 조 전 대사대리 후임자인 김천 당시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 대사 대리는 “(조성길) 딸은 조성길 부부에 의해 집에 홀로 남겨졌다”면서 “부모를 증오했고 조부모에게 돌아가기 위해 평양에 가길 원했다”고 했다.
조 전 대사대리 부부는 모두 북한 유력 외교관 집안 자제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대사대리 아버지는 조춘형 전 콩고 주재 북한 대사라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의 장인 역시 태국 주재 북한 대사와 홍콩 총영사를 지낸 유력 외교관이라는 후문이다.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행은 의미 있는 사건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권력을 잡은 뒤 대사급 인사의 한국행은 처음이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공사 신분으로 한국행을 택했다. 대사는 공사보다 위에 있는 직급이다.
런던 주재 북한 공사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태 의원은 “그분(조성길)의 아버지와 장인은 북한의 오랜 베테랑 외교관으로 활동했다”면서 “저보다도 대단히 상류층으로 분류될 수 있는 그런 인물”이라고 말했다. 태 의원은 “내가 북한 외무성 부국장으로 있던 시절에 조성길은 같은 외무성 5과 이탈리아 담당 부원으로 있었다”면서 “나는 그와 20년 지기”라고 조 전 대사대리와 친분을 소개하기도 했다.
조 전 대사대리의 지난 1년 남짓한 한국 체류 기간에 대한 미스터리가 증폭되는 상황이다. 조 전 대사대리는 한국에 들어온 뒤 국정원 산하 국책연구 기관 소속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조 전 대사대리는 그간 어디서 지내고 있었던 걸까. 복수 탈북민과 북한 소식통은 조 전 대사대리가 한국에 입국한 뒤 국정원이 관리하는 ‘A 안가’에 머물렀을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서울시내 모처에 위치한 A 안가는 고위급 탈북민 거처로 자주 활용되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일요신문 취재에 응한 북한 소식통은 “갓 탈북한 탈북민들이 거주하는 시설들이 여럿 있다”이라면서 “그중에 A 안가는 고위급 인사들이 머무르는 거처”라고 했다. 소식통은 “북한에서 공무원 혹은 군인 임무를 수행했거나,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처럼 고위 공무직을 지냈던 이들이 A 안가에 머무르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A 안가 같은 경우엔 보안이 철저하기 때문에 언론이나 대중에 노출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생활을 이어가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라고 했다.
A 안가에 머무른 경험이 있는 한 탈북민은 이곳에서 처음 봤던 한국의 풍경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 탈북민은 “A 안가에 머물렀던 고위급 탈북민들이 느끼는 한국에 대한 인상은 비슷하다”면서 “A 안가에서 창문을 열면 교회가 많이 보인다”고 했다. 그는 “처음엔 ‘이 나라엔 무슨 교회가 이리도 많느냐’면서 놀라는 탈북민이 많다”면서 “A 안가에서 보이는 한국의 풍경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많은 수의 십자가”라고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사진=이종현 기자
조 전 대사대리의 그간 한국에서의 행적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철통 보안’이던 조 전 대사대리 소재가 밝혀진 경위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10월 7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조성길 한국 체류 관련) 기사가 나와서 놀랐다”면서 “(보도) 경위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고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조 전 대사 한국행과 관련해 강 장관은 “외교부가 할 역할은 충분히 했다”면서 “상세 내용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조 전 대사대리 아내가 딸과 가족이 있는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며 언론사 및 방송사에 제보를 한 것이 조 전 대사대리 내외의 한국 체류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게 하는 기폭제가 됐다’는 설이 제기됐다. 또다른 북한 소식통은 “물론 조 전 대사대리 아내가 한국 언론의 생리를 잘 이해하지 못해 한국 체류 사실이 외부로 새어 나갔을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북한에 있는 가족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조 전 대사대리 아내가 단독행동을 했을까’에 대한 의문은 남아있다”고 했다.
정부가 의도적으로 조 전 대사대리 한국 체류 사실을 공개했다는 설도 있다. 전직 정보 당국자는 “시기적으로 국내 정세가 ‘공무원 피격사건’으로 휘청이는 상황에서 대북 이슈를 또 다른 대북 이슈로 덮는 방식의 여론전일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북한 고위 공무원을 한국으로 데려온 사실은 북한이 우리 공무원을 피격한 사실과 대비된다”면서 “공무원 피격사건으로 한국의 대내외 정세가 불안한 상황에서 조 전 대사대리 한국 체류 사실 공개가 한국 여론과 북한 지도부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조 전 대사대리 부부 소식이 보도된 이후 북한에 체류하고 있는 조 전 대사대리 가족 신변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복수 북한 소식통은 조 전 대사대리 한국 체류 사실 공개가 북한 거주 조 전 대사대리 가족 신변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제시했다. 2019년 조 전 대사대리에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권유했던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의견도 비슷했다.
10월 7일 태 의원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외교관이 근무지를 탈출해 한국으로 망명하면 북한이 (해당 외교관을) ‘배신자·변절자’로 규정한다”면서 “변절자·배신자 가족에게 어떤 처벌이 내려질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청와대는 조 전 대사대리 한국 체류 사실이 공개된 것과 관련해 아무런 코멘트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