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남중빌딩에 위치한 새 당사에서 현판식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김종인 “국민의힘 내 손안에”
김종인 위원장 임기는 내년 4월 재보궐 선거까지로 잡혀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현재 당 장악력을 볼 때 “내년 4월 이후에도 계속 당권을 쥐고 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김 위원장의 당 장악력을 점수로 매기면 몇 점 정도를 줄 수 있을까. 당 내부 구성원들에게 물어보면 B플러스 이상은 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 위원장은 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이른바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보수 정당의 이념과 반대 방향으로 좌회전하고 있다는 비판에 내몰렸었다. 때문에 김 위원장은 추석 밥상머리 대화에서 쏟아지는 비판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 소속 국회의원들 목소리다.
뿐만 아니다. 북한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총격 살해 사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휴가 특혜 의혹, 강경화 외교부 장관 남편의 요트 구매 여행 논란 등 연이은 여권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지지율이 좀처럼 급상승하지 못하자 ‘제1야당 존재감 부재론’ ‘김종인 피로감’이 최근 빠르게 번져갔다. “이제 할 일 다 한 것 아니냐?” “주호영 원내대표와도 사이가 벌어진 것 아니냐?” 등등의 말도 꼬리를 물었다.
‘악천후 상황’ 속에서 김 위원장은 추석 연휴가 끝난 직후인 10월 5일 비대위 회의에서 노동법 개정을 전격적으로 꺼내들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급작스런 우회전 발언이었고 김 위원장을 흔들어대던 목소리는 일거에 잦아들었다. 특유의 돌파력을 또 한 번 유감없이 보여준 셈이다.
김 위원장은 “경제·사회 분야에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그 첫 단계로 노동법 성역화를 타파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노동시장에 유연성을 불어넣지 않으면 4차산업 혁명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폄으로써 정통 보수·우파적 자유주의 경제 이론을 선명하게 드러내보였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공정경제 3법 입법과 맞물려 한국 경제의 전반적인 구조개혁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확실한 경제 비전을 보여주는 효과도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 최대 텃밭이자 가장 보수 성향이 짙은 대구경북 의원들을 대상으로 추석 연휴가 끝난 시점에 전수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 가운데 55%가 “김 위원장의 지도력에 문제가 없다”는 대답을 내놨다. 국민의힘이 국민들에게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김 위원장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판단으로 읽힌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은 초·재선 의원들로부터 강한 신뢰를 얻어내고 있다.
때문에 김 위원장에 대해 조직적으로 반기를 드는 모습은 갈수록 찾아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장제원 의원 등이 이따금 쓴소리를 하지만 메아리를 만들어낼 만큼의 풍부한 성량에는 미치지 못한다. 정치만큼 관성의 법칙이 세게 작용하는 현장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 위원장의 당 장악력은 시간이 갈수록 강해질 전망이다.
이를 놓고 봤을 때 “나를 능가할 대안이 과연 있느냐”는 명분을 내걸면서 김 위원장이 내년 4월 임기를 넘어 2022년 대선까지 당의 쇄신을 책임지고 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2022년 대선 후보가 그의 밑그림 위에서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이 누차 얘기한 것처럼 ‘앞선 선거에서 이미 판단이 끝난 사람’에 대해서는 차단막을 치고 젊은 상원 의원이 일약 대통령으로 당선됐던 미국의 오바마 모델처럼 ‘젊고, 혁신적인 인물’에 대한 모색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김 위원장의 롱런 여부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선거에서 일단은 판가름 날 것이다. 2곳 모두 국민의힘이 거머쥔다면 당연히 김 위원장은 계속 가는 것이고, 부산을 잡고 서울에서도 아깝게 패하는 수준이라면 ‘미워도 다시 한 번’ 얘기가 나올 수 있다. 그가 롱런을 한다면 당연히 기존 주자가 아닌, 미래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주자를 발굴해 내려고 할 것이다. 김 위원장이 정치인 출신이 아니라 교수를 지낸 이념형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이 9월 16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서욱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움직이기 시작한 잠룡들
국민의힘 대선 잠룡들은 본격적으로 당의 차기 대선 주자로 뛰어보겠다는 뜻을 분명히 내놓으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선 재수생’ ‘삼수생’을 싫어하는 것으로 보이는 김 위원장의 뜻이 어떻든 간에 스스로의 힘으로 국민의힘 대권 후보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추석 연휴를 끝내고 가장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단연 유승민 전 의원이다. 그는 10월 26일부터 이른바 유승민계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공동으로 운영할 정치카페 ‘하우스(how’s)’ 개점에 발맞춰 개인 사무실을 국회 앞 여의도에 마련 중이다. 정치권에선 유 전 의원이 정치카페 하우스를 세력화의 장(場)으로 이용하면서 개인 사무실은 대선 캠프 용도로 활용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민의힘 중앙당사 맞은편에 들어서는 정치 카페 하우스와 과거 바른정당 중앙당사가 자리했던 국회의사당 건너편 태흥빌딩 6층에 마련한 유 전 의원 개인 사무실은 내부공사가 진행 중이다. 정치 카페 하우스 공사 담당자들에 따르면 소규모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는 무대와 방문자들이 이용할 식음료 제공시설, 그리고 중소규모의 회의실을 마련 중이며 유 전 대표의 신간 출판기념회가 이곳 개장 첫 행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 전 의원 개인 사무실에는 언론인 휴식 공간에다 기자회견이 가능한 간이 브리핑 시설, 개인 집무실, 회의실 등이 들어설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상 대선 캠프 수준이다. 애연가였던 유 전 의원은 최근 담배까지 끊으면서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가 조만간 내놓을 신간에는 국방과 안보 관련 내용이 주를 이루고 경제학자로서 박근혜·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논평을 곁들일 것으로 전해졌다. 잠행을 하면서 기자들 전화는커녕, 문자·카톡도 잘 받지 않았던 유 전 의원은 최근 소통의 문도 열어젖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유 전 의원 행보에 대해 기대만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유 전 의원과 같은 경제학자인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취임 이후 정책 좌회전을 워낙 많이 했기 때문에 유 전 의원이 이를 뛰어넘는 개혁 보수의 모습을 보이기는 힘들고, 역으로 우회전을 하다보면 다른 경쟁자와의 차별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원희룡 제주지사도 몸을 본격적으로 풀고 있다. 국회 인근에 자리한 싱크탱크인 코리아비전포럼을 중심으로 원 지사 지지세력의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보이고 원 지사에 대한 좋은 이미지 만들기 작업도 구체화하고 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김종인 위원장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면서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그는 10월 1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김 위원장의 지지기반으로 꼽히는 국민의힘 일부 초선 의원들을 겨냥해 “80대 노정객의 당 개혁은 찬성하고 60대 중신(重臣)은 반개혁적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일부 초선들의 사고에 참으로 동의하기 어렵다”고 쏘아붙였다. 80대 노정객은 김 위원장을, 60대 중신은 홍 의원 본인을 각각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는 대권 도전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있지만 우군이 없어 고전하는 모습이다. 국민의힘 몇몇 의원들과 추석 연휴 직전 만찬을 갖기도 했지만 이 자리에서도 정치 재개에 대한 동력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그 자리에 참석한 의원들의 전언을 들어봐도 모두가 정치 재개를 말리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황 전 대표는 이미 시작된 국민의힘 당무감사의 벽도 넘어야 한다. 현재 지역구인 서울 종로에서 4년 뒤 황 전 대표가 다시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종로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가 ‘정리 대상’이 될 것이란 관측이 현재로서는 지배적이다. 그가 이번 당무감사에서 조직위원장 자리를 잃는다면 정치적 재기는 어려울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보고 있다.
한편, 안철수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은 10월 6일 국민의힘과 정책 연대를 하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안 대표가 야권 통합 리더로 올라서보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