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당·정·청 간 미묘한 기류가 엿보인다. 내각 리스크에 부글부글 끓었던 여당 내부에선 ‘개각 불가피론’이 터져 나왔다. 일부 부처는 일찌감치 장관 교체 준비에 들어갔다. 청와대는 개각에 선을 긋고 있지만, 코너에 몰린 문재인 대통령이 승부수를 띄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개각을 밀어붙이는 쪽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다. 애초 유력시되던 개각 시기는 내년 연초였다. 올해 12월 막을 내리는 정기국회 일정을 감안하면, 국회 인사청문회 개최가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기류가 강했다. 인적 쇄신의 실익도 없었다. 추석 연휴 전 만난 여권 한 관계자는 “국정감사와 예산을 앞두고 인사청문회를 개최하겠느냐”라며 “장관 후보자 1명이라도 낙마하면, 안고 갈 리스크가 크다”고 밝혔다.
하지만 강경화발 파문이 모든 것은 흔들었다. 추석 연휴 기간 불거진 강 장관 남편의 미국 요트 구매 여행 파문 이후 당 내부는 그야말로 부글부글 끓었다. 개각 때마다 교체론에 시달렸던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포스터 논란까지 겹치자 여당 내부에선 “때가 오고 있다”는 여론이 급부상했다.
민주당 개혁 성향의 한 초선 의원은 강 장관 남편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를 직접 겨냥, “개인의 일탈이라고 해도 부적절한 행위”라고 잘라 말했다. 한 당직자도 “정부 국무위원들의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민주당 의원실 한 보좌관도 “연말 개각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문 대통령 지지도가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추석 직후인 10월 4월 고위 당·정 협의회에서도 여권 수뇌부들은 강경화발 리스크에 대한 논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만큼 사안이 급박했다는 얘기다.
다만 일부 의원들은 “남편 개인 일탈이 강 장관의 직 유지와 무슨 상관이냐”라고 반박하고 있다. 친문 직계 의원들 사이에도 강 장관의 경질론보다는 유임론이 다소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 중진 의원은 “청와대가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당 안팎에선 올해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새로운 외교전략 수립을 명분으로 강 장관을 교체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K5’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는 얘기다.
톤은 낮지만 정부 부처 기류도 엇비슷하다. 외교부 등의 부처 공무원들 사이에는 “이번엔 바뀌지 않겠느냐”는 기류가 우세하다. 국무총리실 관계자도 “청와대에 직·간접으로 개각 의견이 전달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무총리실이 주도하는 부처 업무평가 점수는 연내 단행될 개각에 활용될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 지지도의 심리적 마지노선(40%)이 조기에 무너지지 않는다면, 가을 개각보다는 ‘12월 개각’이 유력할 전망이다.
당의 물밑 움직임은 한층 빨라지고 있다. 민주당 발 인적쇄신 요구가 거센 이유는 ‘조각 수준’의 개각 전망이나 ‘자리 이동 효과’와 무관치 않다. 여권에 따르면 강경화 박능후 장관을 비롯해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조명래 환경부,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이정옥 여성가족부 등이 교체 대상이다.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군인 박영선 중기벤처기업부 장관은 차출 명분으로 교체될 수도 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2019년 4월 17일 오후 보석 허가로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나온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서울시장 후보군에 포함된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검찰 개혁 완수 후 자리에서 물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때 여의도 컴백을 원했던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여의도 안팎에선 ‘최소 7곳 이상·최대 9곳’이 교체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폭을 넘어 조각 수준의 개각이 단행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최소 7곳 중 과반을 민주당 현역 의원이 차지한다면, 차차기 대선을 노리는 당내 인사들도 자연스럽게 자리를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현역 중 일부는 여전히 문재인 정부 후반기 내각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인 송영길 의원도 그중 한 명으로 알려졌다. 5선인 그는 현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이다. 통상적으로 3선이 상임위원장을 맡는 게 관례인 점을 비춰보면, 송 의원의 수락은 다소 이례적이다. 송 의원과 친분이 깊은 야권 중진 의원은 이와 관련해 “국회 부의장급인 송 의원이 외통위원장을 맡을 당시부터 국회에선 ‘포스트 강경화’를 노린다는 얘기가 많았다”라며 “청와대 인사 검증이 변수이지만, 송 의원이 차기 외교부 장관을 위해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본다”라고 밝혔다.
송 의원이 포스트 강경화 자리에 안착할 경우 국회 외통위원장도 새 인물이 꿰찰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한 보좌관은 “현역 의원들에게 개각 자리는 매우 매력적인 인사이동”이라며 “대권을 노리는 이들이 개각에 참여하면 앞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중진 의원의 운신 폭도 넓어진다”고 말했다. 내년 4월 재보선 전후로 이낙연 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대권을 노리는 정세균 국무총리마저 직에서 물러날 경우 중진급 의원들은 ‘연쇄 이동’ 시대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잇따라 제기되는 개각설에 선을 긋고 있다. 한 핵심 관계자는 “지금의 개각 보도는 언론이 그냥 쓰는 것”이라며 “청와대도 모르는 인적 쇄신이 있을 수 있느냐”라고 일축했다. 다만 여권 안팎에선 청와대가 추석 이전, 인적 개편을 위한 인사검증에 착수했다는 말이 돌았다. 올해 연말께 내년 재보선과 2022년 지방선거 출마 희망자를 ‘원샷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구체적인 플랜도 흘러나왔다. 이와 함께 강경화·박능후 장관을 먼저 교체한 후 나머지 장관을 바꾸는 이른바 ‘순차 개각’이 플랜B로 대두했다.
“김경수 변수를 눈여겨봐라.” 민주당 한 의원이 던진 말이다. 여권 관계자들은 개각 변수로 문 대통령 지지도와 함께 오는 11월 6일 예정된 친문 적자인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항소심 선고를 꼽았다. 청와대도 친문 적자인 김 지사의 운명을 본 뒤 개각의 마지막 퍼즐을 맞출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항소심에서 김 지사를 옭아맨 ‘재판 족쇄’가 풀릴 경우 문재인 정부 인적쇄신은 포스트 문재인 준비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반대 결과 땐 리스크 관리용 개각을 단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 변수’도 마찬가지다. 유력한 차기 주자로 자리 잡은 이 지사가 정 총리와 비슷한 시기에 대선 출마를 강행할 경우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운신 폭이 넓어질 수 있다. 유 부총리는 차기 경기도지사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차기 경제부총리설이 끊이지 않는 김현미 장관 거취는 청와대 인적개편과도 맞물려 있다. 김 장관의 거취를 놓고는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발탁설, 전북지사 도전설 등의 소문이 파다했다.
청와대 참모진 개편의 핵심 관전 포인트는 부동산 대란에서 뭇매를 맞은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교체 여부다. 노 실장의 정치적 생명 연장 여부에 따라 김현미 장관의 향후 행보도 적잖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 장관은 청와대 참모진 개편 때마다 노 실장 후임으로 거론됐다. ‘양비(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의 별칭)’ 행보도 청와대 참모진 개편의 변수다. 양 전 원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부터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거론된 인사였다.
다만 집권 중·후반기를 거치면서 여권 내 ‘양비 불가론’도 만만치 않다. 양 전 원장이 친문 내부 권력투쟁에서 밀려났다는 소문도 돌면서 양비의 청와대 입성 전망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청와대 한 참모진은 “‘선 개각·후 청와대 개편’을 통해 안정된 내각을 구성한 뒤 3기 청와대 새로운 참모진을 꾸리겠다는 게 문 대통령의 구상”이라고 말했다. 다만 추미애 리스크에 이어 이미 확전된 강경화발 리스크, 이재명·김경수 변수 등이 즐비한 만큼, 문 대통령의 구상이 후반기 안정성을 담보할지는 미지수다. 때마다 오작동한 청와대 인사 시스템은 지난 4년간 문 대통령의 가장 약한 고리였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