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는 올해 자회사들의 ‘릴레이 IPO 추진’을 공식화했다. 자회사들이 모회사로부터 자금을 지원 받는 방식보다는 자체 투자 유치와 상장 등을 통한 독립 성장을 추구한 경영전략이다. 이미 초읽기에 들어간 카카오페이와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지와 함께 카카오M, 카카오모빌리티 등이 추가 IPO 리스트에 올라있다.
이 가운데 카카오뱅크가 확보한 위치는 사뭇 다르다. 인터넷전문은행이 국내 주식시장에 등장하는 건 카카오뱅크가 처음이다. IPO 과정에서 카카오뱅크가 겪게 될 일들은 케이뱅크와 토스뱅크 등의 선례가 될 가능성이 높고, 범위를 더 넓히면 IT와 융합한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카카오뱅크가 IPO에 본격 착수했다. 경기도 성남시 카카오뱅크 본사. 사진=박정훈 기자
카카오뱅크의 IPO 추진 목적은 자본 확충을 통한 성장 발판 마련이다. 그동안 카카오뱅크는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끌어 모았다. 2017년 자본금 3000억 원으로 시작해 세 차례의 유상증자를 거쳐 자본금을 약 1조 8000억 원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몸집이 커지면서 보다 안정적인 자본 조달 방법이 필요해졌다.
사업 다각화를 위해서도 자본이 더 필요하다. 신사업을 추진하기 전에 미리 자본비율을 올려둬야 한다. 향후 카카오뱅크가 추진할 수 있는 신사업은 올해 케이뱅크가 먼저 발을 들인 아파트담보대출이 우선 거론된다. 추후 중소기업 대출을 시작으로 기업금융까지 영역을 넓히는 구상도 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비율도 고려한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6월 말 기준 카카오뱅크 BIS 비율은 14.03%였다. 안정권에 속하는 수치지만, 금융당국 권고가 14%라 대출을 현재 수준에서 관리하거나 자본을 확충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시장에선 카카오뱅크의 기존 성과와 미래 성장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출범 3년 만에 오프라인 영업점 없이 고객을 1300만 명까지 모았고, 올해 상반기 원화대출 잔액은 17조 600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137억 원의 연간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453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면서 흑자 구조에 안착하는 모습이다
카카오 플랫폼과 연계돼 있는 점, 아직 신용대출 외에 굵직한 사업이 없는 점 등이 향후 고성장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실제 장외시장에선 이 기대가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장외시장에서 거래되는 물량은 카카오뱅크 전체 발행주식의 극히 일부지만 시가총액이 40조 원대로, 국내 4대 금융지주 시총을 모두 합친 수준과 맞먹는다.
다만 성과와 성장성을 고려해도 가치가 과대평가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증권가에서 보는 카카오뱅크의 적정 시가총액은 8조 원 수준이다. 괴리가 큰 이유로 현재 시총이 카카오뱅크의 현재와 미래 가치만 반영됐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SK바이오팜과 카카오게임즈,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등이 잇따라 IPO 흥행을 하면서 투자 열풍이 불었고, 이 열기가 고스란히 카카오뱅크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지난 7월까지만 해도 장외시장에서 7만 원대에 거래되던 카카오뱅크 주가는 IPO 열풍이 불면서 50% 가까이 급등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앞선 IPO들의 경쟁이 치열했고 상장 첫날 급등한 점 등을 경험한 투자자들이 미리 장외주식에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기업가치와 직결될 카카오뱅크 정체성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카카오뱅크는 ‘은행, 그 이상의 은행’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기존 시중은행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시장 역시 카카오뱅크를 IT기업 또는 핀테크 쪽에 초점을 맞춰 미래 성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배달의민족과 쿠팡 등이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는데도 몸값은 수조 원 수준에 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카카오뱅크는 근본적으로 은행업을 영위하고 있다. 단기에 몸집을 크게 불린 핵심 사업인 신용대출은 물론 신사업으로 거론되는 아파트담보대출과 기업금융 등도 시중은행들이 오랫동안 해온 핵심 업무들이다. 여기에 카카오뱅크의 핵심 무기인 ‘디지털 금융’도 시중은행들이 앞다퉈 추진하면서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IPO 추진 목적으로 BIS 비율을 고려한 점 역시 시중은행들과 다름없이 규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카카오 자회사들이 잇따라 증권 시장에 진출한다. 사진=일요신문DB
증권업계에서도 올해 IPO 사례들을 볼 때 카카오뱅크 상장 직후 주가가 크게 오를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기업 가치 논란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관측한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시중은행들의 주가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IT기업들은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만큼 카카오뱅크의 정체성이 어떻게 평가 받느냐에 따라 기업 가치도 큰 폭으로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카카오뱅크를 보는 기준이 은행 쪽에 기울 경우, 국내 금융시장을 압도적으로 지배하지 않는 이상 높은 평가를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익숙한 은행업 외에 가장 강력한 무기로 꼽히는 카카오 자회사들과 연계된 서비스 등 새로운 사업 모델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카카오뱅크 IPO가 높은 관심을 받으면서 이례적으로 IPO를 둘러싼 장외전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올해 안에 결정될 카카오뱅크 IPO 주관사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증권사 간 경쟁이다. 앞서의 논란과는 별개로 현재로선 기업 가치가 수십조 원으로 평가받고 있는 빅딜이지만, 카카오뱅크가 인터넷전문은행이라 금융권과 복잡한 고차방정식으로 얽혀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주관을 맡을 증권사 대부분이 금융지주에 속해 있는 만큼 경쟁구도와 이해관계까지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IPO 주관사 ‘빅3’로 통하는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대우, NH증권 모두 주관사 참여가 불투명하다. 우선 한국투자증권은 카카오뱅크의 이해관계자다. 지주사인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카카오뱅크 지분 4.93%, 계열사인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이 28.6%를 보유하고 있다. 발행사 주식 등을 10% 이상 보유한 증권사는 대표 주관 업무를 맡을 수 없다. 미래에셋대우는 카카오의 경쟁사인 네이버와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케이뱅크의 지분 10%를 가진 주주다. 카카오뱅크 입장에선 경쟁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증권사들에 주관을 맡기기가 껄끄러울 수 있다.
그밖에 카카오뱅크의 현재 주주들의 추가 투자 여부도 시장의 관심사다. IPO를 통해 자본이 늘어나면 기존 주주들의 이익이 커지지만, 지금의 지분율을 유지하려면 추가 투자를 해야 한다. 카카오뱅크의 주주는 최대주주 카카오와 한투밸류자산운용, 한국투자금융지주, 국민은행, 넷마블, SGI서울보증, 우정사업본부, 이베이, 스카이블루, 예스24, 우리사주조합 등이다. 최근 카카오뱅크가 IPO를 결의하면서 이 회사들이 ‘관련주’로 분류돼 주가가 오르기도 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