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키움은 최근 10경기에서 3승 7패로 부진했다. 하지만 정규시즌 3위 감독이 중요한 순위 경쟁 중 감독직을 내려놓는다는 건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키움의 김치현 단장은 경질은 절대 아니라며 손 감독이 사퇴 의사를 밝혔을 때 말렸지만 손 감독의 의지가 확고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손 감독의 깜짝 자진 사퇴는 ‘미스터리’로 비칠 만큼 이상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규리그 3위를 달리고 있는 키움 히어로즈의 손혁 감독이 급작스럽게 사퇴를 선언했다. 사진=연합뉴스
#장정석과 손혁의 퇴장과 등장
지난 시즌 키움이 준플레이오프에서 LG 트윈스를, 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를 꺾고 5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을 때 당시 키움 사령탑인 장정석 감독(KBS N SPORTS 해설위원)의 재계약은 거의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키움은 준우승에 그쳤고, 구단은 장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손혁 당시 SK 수석코치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계약 기간 2년에 계약금 2억 원, 연봉 2억 원 등 총 6억 원의 계약 규모였다.
장 전 감독은 구단이 자신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을 손혁 신임 감독 발표가 났던 날 오전에 구단을 방문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장 전 감독은 올 시즌 초 기자와 만나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신임 감독 발표가 났던 날(2019년 11월 4일) 오전에 구단으로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고 사무실에 갔더니 하송 대표가 재계약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나로선 ‘알겠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재계약을 결정하는 주체는 구단 고위 관계자이기 때문이다.”
장 전 감독의 재계약 불발은 손혁 신임 감독 선임보다 더 큰 화제를 모았다. 자연스레 키움 구단이 어떤 연유로 3시즌 동안 팀을 잘 이끌어온 장 전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게 된 것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즈음 장 전 감독은 담당 기자들에게 입장문 형식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허민 이사회 의장이 손혁을 수석 코치로 추천했지만 그걸 거절한 내용과 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장석 전 대표 면회시 주고받은 이야기들, 구단의 고문직 제안을 거절한 이유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장 전 감독은 “그것마저 안하면 너무 큰 오해를 받을 것 같았다”면서 “당시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놓고 너무 힘든 나머지 욕실에 들어가 물 틀어 놓고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리고 지난 10월 8일. 장 전 감독의 뒤를 이어 키움 사령탑에 오른 손혁 감독의 깜짝 자진 사퇴 소식이 들렸다. 정규시즌 3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이 유력한 상황에서 나온 자진 사퇴라 더욱 충격적이었다. 손 감독도 기자들에게 인터뷰 대신 문자 메시지를 통해 짧은 인사를 대신했다. 자신의 역량이 부족했고, 채울 것이 많아 사퇴하게 됐으며 앞으로 더 공부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라는 내용이었다.
야구계에서 손 감독의 문자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없어 보인다. 더욱이 구단은 자진 사퇴하는 감독의 남은 연봉을 다음 시즌까지 보전하겠다고 말했다. 경질이 아닌 자진 사퇴일 경우 잔여 연봉은 지급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김치현 단장은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손혁 감독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불평불만 없이 팀을 잘 이끄셨다”면서 “사장님도 감사 표시로 내년 연봉까지 지급하라고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허민 의장과 이장석 전 대표의 관계는?
손혁 감독의 사퇴 소식이 알려진 후 키움 구단 내부 사정에 밝은 A 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난해 손혁 감독을 선임할 때만 해도 선임의 주체는 허민 의장이었다. 그러나 이번 손혁 감독 사퇴의 배경에는 허민 의장이 앞에 있지만 그 뒤에는 이장석 전 대표가 존재한다는 소문이 있다. 이 전 대표가 올시즌 손 감독의 팀 운영 관련해서 여러 차례 불만을 토로했다고 들었다. 이런 내용은 구단 관계자가 이 전 대표를 면회할 때 전달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전 대표는 KBO 영구 제명 상태로 외부적으로는 구단 경영에서 손을 뗀 상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전 대표가 여전히 구단 경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게 아니냐며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덧붙여 허민 의장과 이 전 대표의 관계가 어떤 형태로 형성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증폭되는 중이다.
보통 감독의 사퇴 또는 경질은 시즌 종료 후 발표되는 게 대부분이다. 시즌 도중 사퇴한다고 해도 경기가 없는 월요일을 ‘D-데이’로 정한다. 그러나 손 감독은 정규리그를 12경기 남긴 상태에서 8일 목요일을 선택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해설위원 B 씨는 손 감독의 사퇴 관련 소문은 이미 7월부터 구단 내부에서 흘러나왔다고 말한다.
“지난 여름부터 손 감독의 입지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때는 사퇴가 아닌 경질이었다. 구단 고위층에서 손 감독의 선수단 운영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손 감독에게 이런저런 불만을 제기했다고 들었다. 그로 인해 손 감독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키움이 프런트 야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손 감독도 그런 사실을 익히 알고 감독직을 수락했지만 투수 기용, 선발 라인업, 경기 운용 등 전체적인 부분에서 구단이 훅 밀고 들어오는 상황에 심한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B 해설위원은 손 감독이 사퇴할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구단의 간섭과 월권이 존재하지만 사퇴를 결정한 것은 손 감독의 선택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규리그가 끝나기 전에 사퇴 카드를 내민 건 손 감독의 결정이라고 본다. 구단이 처음에는 만류했다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손 감독도 듣는 소문이 있을 테고 어차피 시즌 마치고 경질되는 수순이라면 자진 사퇴가 더 낫다고 봤을 것이다. 구단은 그 선택을 받아들이고 잔여 연봉 지급으로 손 감독과 합의한 것일 테고.”
손혁 감독이 떠난 키움 사령탑 자리엔 김창현 감독대행이 선임됐다. 사진=키움 히어로즈 제공
#감독대행 김창현이 누군가요?
키움은 손혁 감독의 사퇴로 공석이 된 감독 자리에 홍원기 수석코치가 아닌 김창현 퀄리티컨트롤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선임했다. 김창현 감독대행은 경희대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고 프로 경력 없이 2013년 구단 전력분석원으로 입사해 올 시즌을 앞두고 신설된 퀄리티컨트롤코치를 맡았다. 투수, 야수, 불펜 코치 등 파트별 코치 경험이 전무한 상태이고, 1985년생으로 나이는 박병호보다 한 살 많고 홍원기 수석코치와는 무려 열두 살 어리다.
10년 이상의 현장 경험을 쌓은 홍원기 수석코치 대신 김창현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선임한 데 대해 구단은 “수석코치에게 감독대행을 맡길 경우 보좌할 수석코치를 선임해야 하기 때문에 김창현 감독대행을 홍원기 수석코치가 돕기로 했다”는 다소 황당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의혹이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 이와 관련해서 또 다른 해설위원 C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좀처럼 화를 삭이지 못했다.
“키움은 야구판을 정말 우습게 보는 것 같다. 현장 코치 경험이 없는 1985년생 전력분석원을 감독대행에 앉히면서 보좌할 수석코치가 없을까봐 수석코치 대신 퀄리티컨트롤코치를 선임했다는 게 말이 되나. 홍원기 수석코치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이건 야구인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아무리 구단 운영이 구단주 마음이라고 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감독대행 선임은 처음 봤다.”
포스트시즌을 준비하는 키움이 선수단 장악 능력이나 역량은 물론 현장 경험이 부족한 퀄리티컨트롤코치에게 감독대행 자리를 맡긴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한 지방 구단 관계자는 키움이 김창현 감독대행을 선택한 배경에는 그가 조직을 배신하지 않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염경엽 감독이 LG 운영팀장을 하다가 넥센 감독으로 선임된 건 이장석 전 대표의 안목 때문이었다. 장정석 감독이 구단 운영팀장을 맡다 히어로즈 신임 감독으로 선임된 것도 이 전 대표의 신뢰를 받았기 때문이다. 김창현 감독대행 선임에도 이 전 대표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2013년부터 구단 전력분석원으로 일하며 평소 전력분석에 관심이 많은 이 전 대표와 친분을 쌓으며 신뢰를 형성했을 것이고, 8년 동안 히어로즈 구단 일을 하면서 누구보다 이 전 대표의 성향을 잘 파악했을 것이다. 그런 부분이 구단 고위층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히어로즈 관련 이슈는 해마다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정규리그 마치기 전 감독이 깜짝 사퇴를 발표하고 나간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파트별 코치 경험이 없는 35세의 전력분석원 출신이 감독대행을 맡은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결국 피해는 선수들과 팬들의 몫이다. 키움 히어로즈의 2020시즌이 어떤 형태로 마무리될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