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김수철이 어린이를 끌고가는 모습이 촬영된 CCTV 화면. 연합뉴스 |
초등학생 여아를 엽기적인 수법으로 성폭행한 일명 ‘조두순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국민을 공분케 한 악마가 등장한 것이다. 여덟 살짜리 초등학생 여아를 납치해 무참히 성폭행한 김수철(45)은 최악의 범죄자들과 함께 국민들의 뇌리에서 잊히지 않을 공공의 적에 이름을 올렸다. 김 씨가 입에도 담을 수 없는 행각을 저질렀다는 것에도 국민들은 공분하고 있지만, 이 여아가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 안에서 납치됐다는 사실에도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것은 김 씨가 강도·강간·폭력 등 전과 12범인 데다 잔혹하고 비정상적인 성적 취향을 가진 위험인물이었음에도 성범죄 우범자 관리대상에서 제외된 채 버젓이 거리를 활보해왔다는 사실이다.
‘악몽’이 시작된 것은 지난 6월 7일 오전 9시경이었다. 서울 영등포구에 소재한 한 초등학교에 빨간색 티셔츠와 검정색 칠부바지를 입은 40대 남자가 나타났다. 김수철이었다. 활짝 열린 교문을 통과한 김 씨는 운동장을 한 시간 남짓이나 돌아다녔다. 이른 시각이었지만 김 씨에게서는 술냄새가 확 풍겼다.
또 머리를 자꾸 쓸어 넘기는가 하면 계속 뒤를 돌아보거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등 무척이나 불안한 모습이었다.
사건 당일 이 학교는 재량휴교일로 학교 안에는 컴퓨터 수업 등 방과후 수업을 위해 일부 학생과 교사들만이 나와 있었다. 한참 동안 운동장을 서성거리던 김 씨가 급기야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복도를 어슬렁거렸지만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층 복도를 돌아다니며 창문 너머로 교실 안을 힐끔힐끔 들여다보던 김 씨의 눈에 한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컴퓨터 수업을 받으러 복도를 지나가던 2학년 A 양(8)이었다.
“꼬마야, 이리 와 봐라” 김 씨는 A 양을 불렀다. 평소 같았으면 낯선 사람을 경계했을 A 양이었지만 이날은 달랐다. 학교 안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났다. A 양이 다가가자마자 김 씨는 A 양의 목에 팔을 둘렀다. 느닷없는 행동에 깜짝 놀라 김 씨의 손아귀를 벗어나려던 A 양의 눈에 들어온 것은 커터칼이었다. 김 씨는 A 양의 턱 밑에 커터칼을 들이민 채 어깨를 감싼 팔에 지긋이 힘을 줬다. 그리고 “소리지르면 죽여버리겠다. 입 다물고 따라와”라고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A 양은 김 씨가 이끄는 대로 조용히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A 양이 울먹거리며 김 씨를 따라가는 동안 여러 사람이 그들을 목격했지만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A 양의 옷깃에 칼이 가려져 있었을 뿐 아니라 얼핏 보기에 어깨동무를 한 다정한 부녀지간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A 양은 그 상태로 480여m 떨어진 김 씨의 반지하 쪽방까지 끌려갔다. 이곳에서 A 양은 수차례에 걸쳐 무참하게 성폭행을 당했다. 미처 피지도 못한 여아를 30여 분간이나 유린한 김 씨는 이후 잠에 빠져 들었다.
폭력 혐의로 구속된 뒤 지난해 10월 순천교도소에서 출소한 김 씨가 현재의 쪽방으로 이사온 것은 작년 12월경이었다. 김 씨는 동네주민들에게 왠지 모르게 ‘이상하고’ ‘불쾌한’ 느낌을 주는 인물이었다. “동네 골목길을 속옷 차림으로 돌아다니거나, 트렁크나 내복바람으로 구멍가게에 들르는 것, 지나다니는 주민들을 음흉하게 쳐다보거나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에게 말을 걸고, 또 마흔이 훌쩍 넘어 혼자 사는 남자가 10대 청소년들과 자주 어울리는 것도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인근 주민들의 공통된 증언이었다.
▲ 김수철 |
김 씨는 경찰에 검거된 후 “술을 먹고 저질렀다” “평소 술을 마시면 성욕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새벽에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영등포역에 갔지만 허탕쳤다. 홧김에 감자탕집에서 소주 두 병과 맥주를 마셨고 술김에 학교를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충격적인 것은 김 씨가 이미 엽기적인 성범죄 전력이 있는 요주의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김 씨는 21세이던 1987년 부산의 한 가정집에 침입, 남편을 결박하고 그가 보는 앞에서 부인을 강간하는 등 인면수심의 범행을 저지른 인물이었다. 김 씨는 15년형을 선고받고 2002년 만기출소 했지만 그 후에도 몹쓸 버릇은 고치지 못했다.
김 씨는 출소 4년 만인 2006년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15세 소년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또다시 입건됐다. 하지만 김 씨는 피해소년의 부모를 “당신 아들이 동성애자인 것을 세상에 알리겠다”고 협박했고 결국 피해소년 측과 합의가 이뤄져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강도·강간과 동성 미성년자 성추행 등 과거의 범행전력으로 볼 때 김 씨는 분명 비정상적인 성적 취향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 언제든지 유사한 성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다분했다. 문제는 김 씨가 이처럼 위험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범죄 우범자 관리대상에서 제외되어 주기적인 관리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경찰은 ‘김길태 사건’ 이후 성범죄 전과자를 3가지 부류로 분류해 관리를 해왔지만 1990년 이후 성범죄를 저지른 인물들을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김 씨는 관리대상에서 빠졌다.
경찰 조사에서 김 씨는 “잘못했다”는 상투적인 말 뿐 A 양에 대한 진심어린 죄책감은커녕 안부나 걱정의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징역을) 얼마나 살면 됩니까”라고 묻는 등 자신이 받게 될 형벌 수위에만 관심을 보였다는 것. 유치장에 수감된 후 세끼 식사도 깨끗하게 비우고 잠도 잘 자는 등 인면수심의 범행을 저지른 인물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는 게 경찰관계자들의 얘기다.
특히 김 씨는 ‘술김에 저지른 짓’ ‘정신질환이 있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는 말로 자신의 범행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범행 전 술을 마셨다는 그의 주장은 범행 당시 정확한 사리판별이 불가능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점을 강조함으로 형량을 낮춰볼 요량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실제로 조두순의 경우에도 한 여아의 인생을 망쳐버린 잔악한 범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만취상태였다는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12년이라는 낮은 형량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그는 왜 악마가 됐나
어릴적 악몽이 ‘부메랑’그의 암울한 성장기는 김 씨가 자신을 담당하던 사회복지사에게 보낸 편지내용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된다. 편지에 따르면 김 씨는 초등학교 5학년때 부모님을 잃은 후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했다. 배가 고파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김 씨는 자신의 성장기에 대해 “항상 배가 고프고 잠 잘 곳을 찾아 헤매는 불안한 아동기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중학교 교복을 반듯하게 입고 모자를 쓰고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면 괜시리 심사가 뒤틀려 불만이 쌓여갔다”는 김 씨는 “청소년기에는 고아들끼리 모여 본드를 하고 약을 먹거나 대마를 피는 생활에 빠져들었다”고 적었다.
또 “술을 마시면 처음에는 양처럼 순해지고, 좀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워지고, 더 마시면 돼지처럼 추해지고, 더욱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소란을 피우게 된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