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이른바 ‘저축은행 사태’를 겪으며 생존을 걱정하는 수준까지 추락했던 저축은행 업계는 지난해부터 이용자 수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2012년 400만 명대까지 주저앉았던 저축은행 거래자 수는 지난 6월 말 기준 657만 1696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월 583만 6462명 대비 73만 5234명 증가한 것으로, 저축은행중앙회가 거래자 수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지난해부터 기준금리가 세 차례 인하되며 초저금리 시대에 접어든 덕이 컸다. 시중은행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약 1%포인트)를 제공하는 저축은행에 다시 소비자들이 눈길을 돌린 것이다. 게다가 대형 저축은행 중심으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앞다퉈 내놓으며 거래자 수 증가에 힘을 보탰다.
고객 증가는 당연히 실적 호조로 이어졌고, 이는 자연스럽게 은행장 입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대형 저축은행 은행장들은 실적 잔치와 함께 대거 연임에 성공했지만, 중소형 저축은행의 경우 행장 교체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수장이 교체된 저축은행이 10곳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우선 금융지주 계열이거나 오너 체제인 저축은행장들은 상당수가 자리를 지켰다. 원래 저축은행업권은 최고경영자(CEO)가 장기간 연임을 이어오는 경우가 많아 수장 교체 소식이 드문 편이다. 올해도 연임을 확정 지은 SBI저축은행의 임진구, 정진문 각자대표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각각 6년과 5년째 수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 외에도 OK저축은행 정길호 행장, 웰컴저축은행 김대웅 행장 등도 자리를 지켰다.
SBI저축은행 임진구, 정진문 각자대표는 올해 연임을 확정지었다. 사진=박정훈 기자
은행계 저축은행에도 ‘장수 CEO’가 포진해 있다. 2015년 1월부터 회사를 이끌고 있는 김영표 신한저축은행장과 2017년 12월 취임한 신홍섭 KB저축은행장은 이미 지난해 12월 나란히 연임이 확정된 상태다. 오화경 하나저축은행장(2018년 3월 취임)도 연임 중이다.
다만 김영표 행장은 지속적인 실적 개선을 바탕으로 4차례나 연임한 가운데 조용병 회장의 신임이 두터워 더 큰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신홍섭 행장 역시 최근 다른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로 승진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올 한 해 모바일 플랫폼 키위뱅크의 개편으로 그룹의 전반적인 디지털 전환 작업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다.
이런 가운데 교체가 확정된 곳들도 있다. 6월에는 NH농협금융 계열인 NH저축은행 신임 행장으로 최광수 전 농협자산관리 전무가 선임됐다. 지난 2년간 어려운 경영여건 속에서도 꾸준한 성과를 낸 김건영 전 행장의 연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농협금융의 계열사 대표이사 ‘2년 임기 룰’에 이변은 없었다. NH저축은행은 2014년 NH금융지주의 금융계열사로 편입된 이후 2년마다 행장이 교체돼 왔다.
1961년생인 최광수 행장은 30여 년 간 농협에 몸 담은 대표적인 ‘농협맨’이다. 1987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해 △시흥시지부 팀장(2000) △경기지역본부 채권관리팀장(2001) △경기지역본부 조합경영검사국 국장(2009) △경기지역본부 부본부장(2012) 등을 거쳤다.
10월 들어서는 DB저축은행 대표이사에 윤재인 DB캐피탈 사장이 선임됐다. 1951년생인 윤 사장은 DB저축은행에서 CEO직을 맡게 되면서 ‘금융계열사 최고령 수장’ 타이틀을 유지하게 됐다. 그는 DB손보, DB금융투자 등에서 몸 담은 뒤 DB캐피탈 사장직을 거쳤다. 김남호 DB그룹 회장이 금융부문에서 세대교체 대신 ‘안정’을 택한 이유는 최근 악화된 금융업황과 불확실한 경영환경 때문으로 풀이된다. DB손보·생명 등 보험 계열사들이 올 상반기 호실적을 기록했지만, 초저금리·경기 침체 악화 등으로 여전히 안정을 도모해야 할 시기라는 판단을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
J트러스트그룹 계열사인 JT친애저축은행도 2012년 출범 이후 첫 수장 교체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JT친애저축은행은 3월 박윤호 전 JT저축은행 상근감사위원을 행장으로 선임했다. 박 행장은 2012년 8월 사외이사로 JT친애저축은행과 인연을 맺은 뒤 이듬해 2월 상근감사위원을 맡아오다 업무 역량을 인정받아 신임 대표로 추천받았다.
이들 외에도 융창저축은행과 스마트저축은행을 비롯해 바로‧더블‧고려‧대한‧동양‧라이브저축은행 등도 수장을 교체한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저금리와 1금융권 대출규제로 인한 풍선효과, 디지털 뱅킹 등이 맞물리면서 저축은행을 찾는 고객이 크게 늘었지만 빈익빈 부익부 효과도 그만큼 커졌다”면서 “업계는 호황인데 업체는 불황인 일부 저축은행들로서는 수장교체를 통해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커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