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기안기금 투입이 최근 가시화됐다. 아직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아시아나항공 간 약정은 체결하지 않았지만 이르면 연말께 집행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자금이 투입되면 아시아나항공은 출범 이후 ‘개점휴업’ 상태였던 기안기금의 1호 지원 기업이 된다.
채권단은 앞서 지난 9월 11일 아시아나항공의 기안기금 지원을 승인했다. 금호그룹이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에 계약해지를 통보한 당일이다. 기안기금은 총 2조 4000억 원이 투입된다. 1조 9200억 원은 일종의 ‘마이너스통장’ 방식으로, 아시아나항공이 한도 범위 내에서 필요할 때마다 자금을 꺼내쓸 수 있도록 했다. 나머지 4800억 원은 영구 전환사채(CB)를 취득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매각이 무산돼 채권단 관리 체재에 접어든 아시아나항공이 경영정상화 작업에 시동을 걸었다.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 본사. 사진=연합뉴스
아시아나항공은 자금 지원이 절실하다. 국책은행에서 빌린 자금이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다. 채권단은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한 영구채 5000억 원 인수를 시작으로 한도대출 8000억 원, 스탠바이 LC(보증신용장) 3000억 원 등 총 1조 6000억 원을 지원했다. 올해는 추가로 1조 7000억 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HDC현산과 10개월간 매각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는 과정에서 자금을 꾸준히 끌어다 쓰면서 차입금이 대부분 소진됐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최근 인출한 2000억 원을 포함하면 현재 남은 자금은 1000억 원가량”이라고 말했다.
지원받은 기안기금으로는 자회사를 지원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은 당장 현금화가 가능한 자회사들의 분리매각이 이어질 전망이다. 일단 분리매각 1호는 금호리조트가 낙점됐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골프장 아시아나CC와 경남 통영마리나 리조트 등 4곳의 콘도와 중국 웨이하이 골프리조트 등을 보유한 회사다.
금호리조트의 핵심은 아시아나CC다. 이곳 몸값만 2000억 원가량으로 추산된다. 금융투자업계는 수도권에 위치해 있고, 최근 수년 사이 골프장 몸값이 오르고 있는 추세라 가장 먼저 매물로 금호리조트를 내놓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금호리조트 부채가 3573억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손에 쥐는 현금은 유의미한 수준은 아닐 것으로 관측된다.
아시아나IDT와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도 분리매각 대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모두 아시아나항공 의존도가 높은 곳들이다. 기안기금의 자회사 지원 불가 조건 탓에 향후 아시아나항공에 기댈 수 없게 된 만큼, 매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다만 아시아나IDT는 아시아나항공과 계열사들의 전산시스템 구축과 운영 등을 맡고 있어 따로 떼어 팔기가 애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어부산의 경우 매각보다는 자체 경영정상화 작업 착수 쪽에 힘이 더 실린다. 현재 유상증자를 진행 중인데 이 자금을 활용하고, 추후 기안기금을 별도로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종업원 수가 100명 남짓인 에어서울은 최소 요건을 갖추지 못해 기안기금을 신청할 수 없다. 다만 분리매각보다는 아시아나항공에 흡수되거나 청산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업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어 당장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을 매각하기는 어렵다”며 “이들 항공사의 매각은 항공업 회복 이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시아나항공 A350. 사진=아시아나항공 제공
이처럼 채권단과 금호그룹의 ‘플랜B’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지만, 금융투자업계와 항공업계 일각에선 이 작업을 두고 뒷말이 나온다. 일단 기안기금의 경우, 특혜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기안기금은 코로나19로 심각한 타격을 받은 항공, 해운 등 기간산업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출범했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극심한 부실화가 진행 중이었고 지난해 말 HDC현산과 매각 협상을 시작했던 탓에 기안기금 후보로 꼽히지 않았다.
기안기금의 높은 금리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이 급락한 탓에 대출금리가 최소 연 7%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시아나항공은 기금의 일부만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만약 전액을 사용할 경우 이자만 연 1680억 원을 내야 한다. 역시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기업을 지원하겠다는 기안기금 취지와 충돌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아시아나항공 내부사정과 기안기금의 취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산은 등 채권단이 자금 투입을 강행하는 것을 두고 최종 목표는 다른 데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기안기금으로 채워 경영 정상화에 나선 것은 1차 목표일 뿐, 궁극적으로는 재매각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인력 구조조정이 당분간 미뤄진다는 점이 이 해석에 힘을 싣는다. 기안기금 투입 조건에는 지원받은 기업은 6개월간 고용을 90% 이상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항공업계 다른 관계자는 “항공업은 구조조정으로 한 번 ‘다이어트’를 하면 다시 몸을 만드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산업으로 꼽힌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력 구조조정은 항공업 회복 또는 매각 이후 추진하는 게 더 유리할 수 있다”며 “항공업 회복은 불확실하고, 채권단도 언제까지고 아시아나항공을 품고 있을 순 없다. 각종 논란을 감수하면서도 강행하는 기안기금 투입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모양새로 비춰지지만 실제로는 재매각을 염두에 둔 사전 작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아시아나항공 경영 정상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금융투자업계를 중심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새로운 주인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특히 ‘호남 건설사 컨소시엄’과 대한항공 등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후보들이다. 금호그룹은 호남 향토기업이고, 이 지역 건설사들이 지난해 공동인수를 검토하기도 했다. 특히 이 지역 일부 건설사들은 상당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고, 최근 산은과 접촉한 점도 이 인수설에 힘을 싣고 있다.
대한항공의 이름도 거론된다. 산은 등 채권단으로부터 올해 1조 원대 지원을 받은 대한항공이 항공업 부활 및 대규모 고용 유지 등을 앞세워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국내 조선업 부활을 명분으로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 중인 현대중공업의 사례도 있다.
이에 대해 호남지역 건설사, 대한항공 등의 관계자들은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아시아나항공의 몸집과 재무 부실이 부담스러운 데다가, 변수가 많은 항공업 M&A에 쉽게 뛰어들 수 있는 여력도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