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원전 3·4호 부실공사 책임을 두고 관련 정부기관과 현대건설이 좀처럽 합의점을 못찾고 있다. 한빛원전 전경. 사진=연합뉴스
#부실공사 드러난 한빛원전 3·4호기
지난 10월 1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국정감사에서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한빛원전 3·4호기에서 발생한 격납건물 공극에 대해서 현대건설이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법률적으로 손해배상 청구 기간이 지나 책임을 묻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도 “법률 이전에 도의적으로 현대건설에서 최소한의 조치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으로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빛원전 3·4호기의 공극 발생량과 철근 노출량은 다른 원전에 비해 심각한 수준이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수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가동 원전 24기 중 14기의 격납건물에서 332개의 공극이 발생했다. 특히 한빛원전 3·4호기에서 발생한 공극이 각각 124개, 140개에 달한다. 전체 공극의 80%가량을 차지했다. 콘크리트 안에 있어야 하는 철근이 노출되는 문제도 한빛원전에서 다수 발견됐다. 한빛원전 3·4호기에서 철근 노출이 207개나 발견됐다. 전체 철근 노출의 47%에 달한다.
원안위는 공극 발생과 철근 노출의 원인으로 부실시공을 꼽는다. 지난해 원안위는 한빛원전 3·4호기에 공극이 발생한 것은 부실공사 때문이라는 공식 조사결과를 한빛원자력안전협의회에 보고했다. 원안위에 따르면 1989∼1996년 한빛 3·4호기 건설 당시 작업 절차서에 격납건물 콘크리트 타설 다짐 작업에 대한 주의 사항이 없었다. 심야 타설 작업도 한빛 3·4호기가 16회로, 한빛 1·2호기 9회, 한빛 5·6호기 1회와 비교해도 훨씬 많았다.
한빛원전 3·4호기 부실시공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도 상당하다. 보수 기간이 늘어나면서 재가동이 계속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빛원전 3·4호기는 공극이 발견돼 정비에 들어가면서 각각 2018년 5월, 2017년 5월부터 가동을 멈췄다. 송전량, 판매단가, 사업비 등을 종합한 한빛 3·4호기 손실액은 각각 1조 1125억 원, 1조 6464억 원으로 추산된다. 지난해까지 한빛 3·4호기 보수에 들어간 돈만 586억 원이다.
#설계·감리·시공 중 누가 부실공사 책임질까?
한수원은 2018년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현대건설에 공극 발생에 대한 책임 분담 방안을 논의하자는 공문을 4차례 보냈다. 한빛 3·4호기의 부실 운영에 대해 대국민 사과 발표를 추진하자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시간을 더 달라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대건설은 한수원의 후속대책 협의뿐만 아니라 한빛원전 3·4호기 공극 원인 조사 과정에서도 시공 품질 보증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현대건설은 국내 원전 9기를 건설했고, 현재 건설 중인 신한울 1·2호기 시공사인 만큼 책임 있는 해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지난해 이원우 현대건설 부사장이 노웅래 국회 과방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자체 비용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원전 시공의 하자보수 기간이 종료돼 책임이 없다고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이후 공극이 생긴 원인을 파악하고자 출범된 협의체는 이후 단 한 차례도 후속 회의를 열지 못하고 있다. 협의체는 설계·감리·시공 등에 참여한 기관과 기업 관계자를 포함해 원안위, 민간 전문가 등 총 9명으로 구성됐다.
국회 과방위 소속 의원실 한 보좌진은 “협의체는 설계·감리·시공 등 3자 검증을 통해서 구조건전성평가 결과가 나오면 후속 회의를 열겠다고 합의했고 현재 한빛 3호기 조사는 완료됐고 4호기 조사가 남아서 후속 회의가 열리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대 관건은 부실공사의 책임을 어떻게 분담하느냐는 것이다. 한빛 3호기는 1989~1995년, 한빛 4호기는 1989~1996년에 걸쳐서 건설됐다. 한빛 3·4호기의 시공을 맡은 건 현대건설이지만, 설계사는 한국전력기술이고 검사기관은 원안위 산하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다. 운영사는 한수원이다. 엄재식 원안위 위원장은 지난해 8월 한빛 3·4호기에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현대건설, 한국전력기술, KINS, 원안위, 한수원 등이 모두 관련됐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빛 3·4호기는 처음으로 한국이 주도해 지은 원전이다. 정부가 원전 기술자립을 위해서 나섰지만, 기술력이 부족해 공사 초기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현대건설은 공사 기간을 맞추지 못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데, 설계도만 600회 이상 수정되면서 공사가 지체됐다. 당시 야간 공사가 빈번했던 이유다.
현대건설이 다짐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은 문제도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정부기관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용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한 보좌진은 “시공사뿐만 아니라 기관들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며 “한빛 3·4호기는 건설 초기부터 현장 인부로 일한 주민들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모든 의견이 묵살됐고 현재 상황까지 이르게 됐다”고 덧붙였다.
탈핵시민행동 활동가들이 지난해 8월 22일 서울 종로구 현대건설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수의 구멍이 발견된 한빛 3·4호기 폐쇄와 시공사인 현대건설에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KINS는 지난 8월 14일 열린 124회 원안위 회의에서 한빛 3호기의 구조건전성에 문제가 없다며 보수 방안을 보고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진상현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는 “원인 파악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황에서 건전성·안전성 평가 끝났으니 공극 채우기 위해서 보수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냐”며 “시공사, 관리·감독기관, 규제기관 중에서 누가 책임을 지느냐에 따라서 비용 책임도 달라지는데 이에 대한 논의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한편 책임공방으로 인해 조사결과가 미뤄지자 사회적 갈등도 심해지고 있다. 지난 10월 13일 정의당 광주시당은 격납건물 공극이 발견된 한빛원전 3·4호기 재가동 계획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광주‧전남지역 시민단체도 한빛원자력안전협의회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빛 3호기 폐로와 함께 원안위 위원장 해임을 촉구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