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윤식 전 회장 | ||
한때 한국 통신산업계를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과시했던 그가 지난달 28일 경찰에 전격 구속됐다. 2001년 8월 4개 회사의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에 필요한 통신장비를 납품받는 과정에서 15~20% 비싼 가격에 장비를 구입하는 방식 등으로 업자들에게 특혜를 주었다는 게 이유였다.
지난해 10월 경영권을 인수하려는 LG텔레콤에 맞서 외자 유치를 통해 가까스로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던 하나로통신은 신 전회장의 구속이 또다른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특히 통신업계에서는 외자유치를 통해 경영권을 방어한 하나로통신이 장차 해외 매각 가능성도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불거진 신 전 회장의 구속이 어떤 파장을 몰고올지 모른다며 사태의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신 전 회장의 구속은 개인 차원의 문제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지난해 경영권을 두고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 신 전 회장에 대한 ‘음해성 투서’가 난무했다는 점에서 신 전 회장을 조기 퇴진시키기 위한 ‘음모’ 차원에서 불거졌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이 밝힌 신 전 회장의 구속사유는 그가 회장으로 재직하던 2001년 4개의 하청업체로부터 납품을 받는 과정에 특혜를 줘 회사에 1백억원대 손실을 끼친 혐의다.
그러나 신 전 회장에 대한 경찰 수사는 이미 하나로통신 회장 시절부터 시작됐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는 ‘하나로통신’ 경영권을 놓고 LG측에서 거세게 압박해 오던 시점이었다.
경찰 수사결과 ‘납품 비리’ 혐의로 구속됐지만, 수사의 시작이 ‘고소고발’ 없는 ‘투서’에서 시작됐다는 점은 배후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통신업계 관계자는 “경찰 내사가 시작되던 시점에는 신 전회장의 진퇴문제가 최대 이슈였다”며 “신 전회장 퇴임 이후 새로이 경영진에 합류하고자 하는 내부 인사 가운데 한 사람이 경영권 확보를 위해 뛰어든 특정 세력과 내통, 신 전회장에 대한 ‘투서’를 경찰에 보낸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름없는 ‘투서’의 작성자가 누구인지는 경찰 수사가 종결되고 검찰로 사건이 송치된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 특정 K고 인맥이 신 전 회장을 낙마시키기 위해 ‘작업’했다는 설도 나돌고 있다. 대주주의 입김도 적고, 정부의 입김으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하나로통신의 독특한 위상 때문에 K고 인맥들이 동문 출신 인사를 하나로통신 회장에 앉히기 위해 신 전 회장을 낙마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분석은 당시 정황에 비춰 흘러나온 얘기일 뿐,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신 전 회장측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주총에서 회장직에서 물러나기 전에 이미 경찰의 내사가 시작됐다”며 “이번 사건은 신 전 회장의 퇴진을 종용하기 위한 음해성 투서로부터 비롯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음해성 투서’로 시작됐다는 신 전 회장측의 해명은 그에게 씌워진 혐의가 특정 기간에 이뤄진 납품관련 혐의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 취재과정에 만난 업계 관계자들은 “수십 개의 납품업체와 상대하는 과정에 납품수량에 따라 납품단가는 달라질 수 있다”며 “신 전 회장이 2001년 몇몇 업체에게 특혜를 줬다는 혐의는 특정 기간과 업체를 한정해서 보면 배임혐의가 있어 보이지만, 전체적인 납품 현황을 파악해보면 달리 생각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의문은 신 전 회장에 대한 경찰의 수사는 비슷한 사안들에 비춰 훨씬 강도높게 진행되고 있는 부분이다. 납품비리의 경우 사안이 명백한데다, 회계장부만 열람해도 구체적인 증거를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수사강도가 그리 세지 않은 게 관례다. 물론 신 전 회장에 대한 수사강도가 세진 것은 노무현 정권 취임 초기 불거진 일인데다, 당시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대한 외부 여건이 개선된 상황에서 시작된 수사라는 점도 작용했다.
신 전 회장에 대한 투서가 처음 접수될 당시 내용은 신 전회장이 납품업체들로부터 거액의 리베이트를 받아 비자금을 조성, 정치권에 로비를 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때문에 수사를 담당한 경찰 입장에서는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 버금가는 대어를 낚을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년여 진행된 수사에도 불구하고 거액의 비자금은 발견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납품 특혜로 인한 배임쪽으로 수사 방향이 바뀌었다. 이 과정에 신 전 회장이 IMT-2000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몇몇 납품업체 대표들로부터 홍보비 명목으로 자금을 수수한 단서가 포착된 것. 결국 그의 혐의는 납품특혜 관련 배임으로 모아졌다.
당초 ‘거액의 리베이트로 조성된 비자금이 정치권으로 흘러갔다’는 투서로 시작된 수사가 배임과 자금 수수 등 개인비리 차원으로 축소된 것이다.
이 때문에 신 전 회장측은 “1년 동안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음해성 투서’로 시작된 경찰 수사가 성과를 올리기 위해 무리한 측면이 강하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한편 신 전 회장을 구속한 경찰은 수사 배경 및 수사 과정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으나 수사중인 사건이라는 이유로 답변하지 않았다.
신 전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 문제는 경찰의 손을 떠나 이제 검찰의 손으로 넘어왔다.
현재 이 사건을 접수한 곳은 서울지검 형사3부. 경찰로부터 넘어온 강력 사건을 주로 다루는 형사3부지만, 정치권 로비의혹 등이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사안인 만큼 앞으로 어떤 예기치 않을 내용이 나올지 통신업계는 물론 재계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