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비밀의 숲2’에서 김사현 역을 맡은 김영재는 작품의 최고 수혜자라는 평가를 듣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었다. 사진=UL엔터테인먼트 제공
‘비밀의 숲2’ 종영 후 인터뷰 자리에서, 그가 이토록 사랑한 캐릭터 김사현 못지않게 중요한 화두는 그의 인스타그램이었다. ‘비밀의 숲2’ 방영 기간 동안 인스타그램을 처음 개설했다는 그는 무슨 사진을 올려도 사람들로부터 “너무 귀엽다”는 칭찬 세례를 받고 있다고 했다. 자랑 아닌 자랑을 하면서도 “내 나이가 이런 말을 들을 나이가 아닌데…”라며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인스타그램 만들고 사진 올리고 나니까 사람들이 저보고 귀엽대요. 처음 들어봐요, 그런 말. 약간 얼떨떨하기도 하고, 이 분들 저보다 한참 어린 친구일 거 같은데(웃음). 당황스럽고 기분이 나쁜 건 아니고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기해요. 그런데 다들 저보고 셀카 못 찍는다고(웃음)….”
2001년에 데뷔한 김영재가 연기 인생 20년 만에 ‘귀엽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도 결국 김사현의 덕이었다. 시즌 2부터 형사법제단에 새롭게 합류한 김사현은 아군인지 적군인지 애매한 캐릭터 소개와 ‘비밀의 숲2’의 다소 늘어지던 전개로 인해 초반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는 스토리를 기반으로 그의 곱상한(?) 외모에 맞먹는 귀여운 언행까지 더해지면서 대중들의 애정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새롭게 시즌2에 합류한 대검 형사법제단장 우태하의 ‘적폐 곰돌이’에 이어 김사현의 ‘사며들다’ ‘곱상사현’ ‘킹사현’ 등의 별명과 유행어가 붙여진 것도 이런 인기를 실감케 했다.
김사현을 연기하면서 김영재는 그간 굳어져 왔던 ‘불륜남’ 캐릭터의 이미지를 벗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tvN 제공
김영재에게 있어 김사현은 작품 속 캐릭터 그 이상이었다. 단순히 인기를 끌게 되거나, 이전에 김영재를 모르던 대중들에게 그의 존재를 알렸다는 것만이 이유는 아니라고 했다. 김영재는 “사현이 덕분에 그동안 고정됐던 불륜남 이미지를 벗게 됐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예전에 ‘붉은 달 푸른 해’ 할 때는 욕밖에 안 먹었어요. 주인공 남편인데 막 바람 피고 그랬으니까(웃음). 다들 막 불륜남이라고 욕 하시고…. 그런데 제가 사실 불륜남만 한 건 아니고 제일 처음엔 교회 오빠 같은 걸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불륜남으로 찍힌 것 같더라고요(웃음). 그게 이제 김사현을 통해서 깨진 것 같고, 그 덕에 앞으로도 더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제작자 분들도 저에 대한 한정된 이미지를 좀 벗어날 수 있도록 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도 들고.”
가장 애착 가는 캐릭터이면서도 김영재의 연기 인생에 있어 은인이자 터닝 포인트가 될 김사현이지만 그의 퇴장은 다소 쓸쓸했다. 다른 배우들보다 먼저 촬영이 종료된 것도 있었지만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인해 종방연까지 진행되지 않은 탓이었다. 마지막까지 촬영 현장에 있었던 배우들은 그나마 종영 기념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었던 반면 그는 인스타그램으로 쓸쓸함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슬픈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비밀의 숲2’는 왕따에 관한 이야기, 김사현의 왕따 뭐 이런 거 아닐까요?”라고 농담을 던지면서도 그는 “사태가 더 안정화 되면 다들 기분 좋게 모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현이가 시즌3에서 어떻게 나오고, 또 완성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님, 감독님하고도 더 하고 싶고”라며 아쉬움을 달랬다(관련기사 ‘떡밥’ 이미 뿌려졌으니…‘비밀의 숲’ 시즌3 이어질까).
‘비밀의 숲2’로 그를 처음 본 대중들도 많겠지만 김영재는 데뷔 20년차의 어엿한 중견 배우다. 사진=UL엔터테인먼트 제공
“승우는 엄청 장난꾸러기였어요. ‘컷’ 하고 나면 바로 ‘누구 약 올리지?’ 이 생각밖에 없는 친구더라고요(웃음). 너무 귀여웠어요, 우리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 막 과하게 구는 게 아니라 시목이처럼 조곤조곤 다가가서 자기가 낙서한 거 보여주고…. 무성이 형도 이번에 처음 같이 찍게 된 건데 오랜 지기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형이 미소 지어주면 약간 브로맨스 같은 느낌이고(웃음). 두나 씨 같은 경우는, 제가 시즌2를 최빛과 한여진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거든요. 한여진이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배두나 씨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저도 같이 이입되는 순간이 많았어요. 그런데 아직도 연락처를 몰라요(웃음).”
김영재는 2001년 다양한 소규모 영화 출연을 시작으로 올해 데뷔 20년차를 맞이한 중견 배우다. 아직 그를 알지 못했던 이들은 이번 ‘비밀의 숲2’를 통해 김영재라는 이름 석 자를 알게 됐을 것이고, 여전히 그의 이름은 모르지만 김사현이라는 캐릭터로 그를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영재는 어느 쪽이든 기억된다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소박한 만족감을 쌓아 올려가다 보면 그가 목표했던 곳 이상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까지 연기한 캐릭터보다, 연기할 캐릭터가 더 많아진 지금의 시점에서만 봐도 그렇다.
“어렸을 땐 뭣도 모르고 시작했던 연기가 가족이 생긴 뒤부터는 가족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 해요. 사실 기대한 것도 바라는 것도 없었고 그저 연기하면서 먹고 살면 되겠다, 일이 끊기지 않고 배우 짓을 하며 그냥 살아가면 좋겠다 싶었는데 20년 만에 이런 관심과 사랑을 주셔서 제게 있어 정말 뜻 깊은 한 해가 된 것 같아요. 남들은 한 직장에 10년 있으면 된다고 하는데, 전 어떻게 보면 20년 된 거잖아요? 저를 모르시는 분들은 저를 무명 배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제 이름을 기억 못 해주셔도 김사현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많은 걸 보니까 저한테도 다음 목표가 생겼어요. 다음에 또 다른 캐릭터 이름으로, 또 불릴 수 있도록 캐릭터들의 이름을 계속 쌓아가고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