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중진들과 소통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또 잿밥과 감투 사랑?
10월 9일 국민의힘 인사가 전해졌다.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내년 4월 보궐선거 전략을 총괄할 재보선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했다는 것이다. 유 전 부총리는 이날 “2∼3일 전에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김선동 사무총장에게 연락이 왔다. 내년 재보궐 선거의 경선룰과 홍보전략 등을 맡아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10월 12일 인사가 뒤집어졌다. 국민의힘은 긴급 비상대책위원회를 열고 유일호 선대위원장 카드를 전격 철회했다. 이어 3선의 김상훈 의원을 경선준비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김상훈 위원장 인선 이유를 설명하면서 “(인선을) 바꾼 게 아니라 원래 확정된 게 아니었다. (유일호 전 부총리는) 확정되기 전에 밖으로 새 나간 것이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유 전 부총리 본인 입에서 “통보받았다”는 얘기까지 나왔는데 교체가 아니라고 둘러댄 것이다.
경선준비위에는 김선동 사무총장을 비롯해 김재섭 비대위원, 박수영 황보승희 조수진 최승재 의원, 지상욱 여의도연구원장, 임재훈 전 민생당 의원, 한오섭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 등이 참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틀 뒤인 10월 14일 김선동 사무총장이 사무총장직을 내려놨다.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는 인사가 시장 후보 경선을 관리하는 사무총장직을 수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커지면서다.
실제 김선동 사무총장의 서울시장 출마설은 지난여름부터 나왔다. 출마 준비를 한다는 말까지 구체적으로 나왔다. 그는 친박계로 여당 텃밭인 서울 강북(도봉을)에서 재선 의원을 지냈다. 21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김 위원장이 사무총장으로 직접 낙점했다.
하지만 김 사무총장의 ‘출마 희망’ 때문에 재보선 대책위 구성이 꼬인다는 말이 당 내부에서 끊임없이 나왔다. 사무총장이 대책위원장을 하면 되는데 ‘후보 욕심’ 탓에 총대를 안 멘다는 것이다. “선수가 심판을 겸한다”는 내부 비판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김 사무총장과 같은 ‘친박계’인 유일호 위원장 내정자도 신뢰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유일호 카드가 철회되고 계파색이 옅은 김상훈 의원이 위원장을 맡았다는 분석이다.
또한 당초 계획은 선거대책위원회였지만 여러 내홍을 겪으면서 경선룰만 정하는 경선준비위로 격하됐다. 전력을 다해야 하는 내년 보궐선거를 준비하는 시점에서 출발부터 산뜻하지 못한 모습이 나왔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이번에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된 경선준비위 구성 사안만 봐도 국민의힘 구성원들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당의 미래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이번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여전히 당의 혁신보다는 잿밥과 감투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이 드러냈다. 한마디로 부끄럽다”고 토로했다.
실제 당 중진들 사이에서는 야당 몫 상임위원장 7개를 챙기자는 의견이 나왔다는 것도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물론 국회 운영에 있어서 제1야당이 번번이 밀리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상임위원장 자리를 가져와야 한다는 논리지만 기본적으로 중진 의원들 사이에 ‘자리 챙기기’ 욕심이 존재한다는 게 적잖은 국민의힘 구성원들의 말이다.
#팀플레이가 없다
여러 문제가 불거지고, 당 지지율이 박스권에 갇히면서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응축돼왔던 비대위 체제에 대한 불만도 분출 중이다.
당 구성원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 편가르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정작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편가르기가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 분란의 중심에 김종인 위원장의 ‘나홀로 독주’가 있고, 그 와중에 소외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면서 협력을 통한 결집력이 발휘 안 된다고 구성원들은 토로하고 있다. 한마디로 팀워크가 엉망이라는 것이다. 한 재선 의원의 쌓여온 불만이다.
“김 위원장이 똑똑하고 많이 알지만 관료 교수 등 전문가 출신이 많은 우리 당 구성원 특성상 김 위원장보다 지식이나 경륜이 적은 사람이 있나. 그건 아니지 않나. 그렇지만 김 위원장은 혼자 다 아는 것처럼 당을 꾸려가고 있다. 최근 얘기가 나오는 기업규제 3법을 보자. 여당은 공정경제 3법이라고 하지만 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지향하는 우리 보수정당 입장에서는 기업규제로 봐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김 위원장이 의원총회에 나와서 한마디 설명한 바도 없다. 당신이 말하면 따르라는 식이다. 소통을 하지 않고 혼자 끌고 온 결과가 고작 이것인가.”
정치 경험이 적은 초선 의원 중심으로 김 위원장이 자신의 세력 기반을 만들고 중진 의원들과는 소통에 소홀하다는 지적도 많다.
또 다른 재선 의원 역시 “별로 대화를 해보지 않아서 속내를 모르겠다. 대다수 의원들 의견이 그렇다. 소통이 되지 않는다. 널리 의견을 구하면 좋을 텐데 그럴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집단지성을 모으고 지혜를 나누는 노력을 한다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태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펀드 비리 등에서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은 공격력을 보여주지 않았겠나. 당 구성원들 대다수가 당 내부 상황을 내부로부터가 아닌 신문에서 읽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이러한 여론을 느낀 듯 원내외 중진들과 스킨십을 늘려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근본적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당 내부의 중론이다.
김 위원장에 대해 ‘쓴소리’를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장제원 의원은 10월 13일 자신의 SNS를 통해 “책임을 느껴야 할 김 위원장은 느닷없이 ‘이런 식이면 비대위원장을 할 수 없다’라고 했다고 한다. 전례 없이 막강한 전권을 휘두르는 김 위원장이 남 탓을 한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가질 않는다. 비대위는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10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선준비위원회 첫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김상훈 국민의힘 재보선 경선준비위원장. 사진=이종현 기자
#사람이 먼저다
대다수 국민의힘 구성원들은 위기 상황 타개를 위해서는 결국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인데 김종인 위원장의 ‘나홀로 아리랑’ 방식으로는 ‘사람의 힘’을 못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당장 내년 보궐선거 인물난부터 풀어가야 하지만 김종인 위원장은 여전히 탐색 모드다. 선거를 막후에서 많이 치러본 국민의힘 소속 국회 베테랑 보좌관들은 한결같이 “사람으로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래 권력’이 될 수 없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정책 창안과 차세대 유망주 발굴을 위한 조력자에 머물고, 기존 잠룡들이 주역이 돼 정국을 끌고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국민적 관심이 만들어지고 당에 활력이 생긴다는 논거다.
20년 경력이 넘는 국민의힘 한 보좌관은 “야권이 분위기를 반전하려면 원희룡 오세훈 유승민 등 대권 주자들이 너도나도 무대에 뛰쳐나와 메시지를 내며 보수만이라도 대선 붐을 일으켜야 한다. 그래야 당에 역량 있는 사람이 모인다”고 했다.
또 다른 보좌관도 “이른바 ‘전문경영인’ 체제가 아니라 차기 대권주자 또는 킹메이커 중심으로 당을 재편하고 지금부터 정권교체를 해보겠다고 나설 사람들에게 멍석을 깔아줘야 한다. 차기 대선주자들이 마음껏 춤출 무대를 만들면 거기서 조직과 사람들이 각자 주군을 위해 경쟁을 벌인다. 정당 생활 오래 해본 내 경험으로는 그 과정에서 대여 전투력이 최고조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김 위원장이 손을 놓는 상황이 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대선 국면으로 가는 여정에 인재를 발굴하는 혜안이 있는 김 위원장의 역할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전직 보좌관은 “더불어민주당이 서울과 부산시장 후보를 낼 조짐을 보이는데 상식적으로 번듯한 제1야당이 존재했다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국민의힘이 얼마나 국민으로부터 괴리돼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국민의힘은 보수이자 기득권이고 탄핵과 국정농단 세력’이라는 연쇄 등식이 떠오르지 않는 새로운 인물도 발굴해야 하며 이들을 기존 잠룡들과 함께 무대에 올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재 보수정당이 직면한 지지율 위기의 원인 중에 새로운 비전 제시 실패도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안 창조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김종인 위원장의 대체재가 지금은 없고 당분간 나오기도 어렵다. 그러니 모자라고 불만이 있어도 함께 갈 수밖에 없다. 무조건적 비판보다는 건설적 대안 제시가 필요하고, 김 위원장도 지금의 태도와는 다른 열린 모습으로 다가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