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특수상황’ 속에서 치러진 대표팀 간 경기에서 송민규는 출전과 동시에 골을 넣으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진=KFA 제공
해외를 넘나들며 경기를 펼쳐야 할 국가대표팀에 코로나19는 치명적이었다. 출입국 과정에서 2주일 격리 과정을 거쳐야 했기에 대표팀은 1년 가까이 ‘개점휴업’ 상태였다. 이에 대한축구협회가 두 팔을 걷어붙였다. 파울루 벤투 감독의 A대표팀과 김학범 감독의 U-23 대표팀의 맞대결을 성사시킨 것이다. 비공식 연습경기가 아닌 ‘하나은행컵’이라는 타이틀까지 달며 양 팀이 경기를 치르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과거 1970년대 ‘화랑’, ‘충무’ 등의 이름을 달고 대표팀을 이원화해 운영했던 시기를 제외하면 두 대표팀의 경기가 눈길을 끄는 일은 드물었다.
지난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나서 우승하며 올림픽 티켓을 거머쥔 김학범호는 이번 ‘스페셜 매치’에서 연속성을 이어갔다. 스쿼드 대부분을 당시 멤버들로 채웠다. 다만 팀 내 ‘에이스’ 역할을 하던 이동경(울산), 이동준(부산)과 AFC U-23 챔피언십 MVP를 수상했던 원두재(울산)를 A대표팀에 내줬다.
A대표팀은 해외파를 선발하지 못하는 특수한 상황에 놓였다. 손흥민(토트넘), 황의조(보르도) 등 유럽파는 물론, 김민재(베이징), 김영권(오사카) 등 아시아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도 선발할 수 없었다. 자연스레 대표팀 경험이 적거나 없는 선수들이 다수 이름을 올렸다.
뚜껑을 연 경기에서도 이 같은 ‘특수상황’이 반영됐다. 김학범호는 2021년 7월 개막이 예정된 올림픽을 앞두고 이번 경기를 조직력을 다지는 기회로 삼았다. 반면 A대표팀은 실험적 성격이 강했다. 대표팀에서 볼 수 없었던 선수들이 출전 명단을 채웠다. 벤투 감독이 그간 추구했던 축구의 방향은 그대로였지만 그 축구를 구현하는 선수들의 면면이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일부 선수들은 벤투 감독에게 합격점을 받을 만한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이번 기회를 살려 벤투 감독의 부름을 다시 받을 수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
지난 1월 AFC U-23 챔피언십 MVP를 수상했던 원두재는 이번 경기에서는 A대표팀 주전 수비수로 활약했다. 사진=KFA 제공
“한동안 대표팀 경기를 치르지 못했는데,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콤비’ 신승대 캐스터와 함께 팬들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며 웃은 이상윤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이번 A대표 멤버가 아닌 김학범 감독으로부터 기회를 받았던 송민규(포항)를 첫 손에 꼽았다. “이번 소집에서 A대표팀의 23세 이하 선수 선발을 3명까지 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벤투 감독은 몇 명 더 뽑고 싶어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분명 송민규를 뽑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애 최초로 연령별 대표팀에 선발된 송민규는 첫 경기에 교체로 나서 골을 기록했다. ‘형님’ A대표 수비수 3~4명을 뚫고 넣은 인상적인 골이었다. 10골 5도움으로 신바람을 내고 있는 K리그에서 흐름을 그대로 이어갔다. 이 위원은 “송민규는 현재 연령을 떠나 K리그에서 최고 공격수다. 그런 모습을 더 큰 무대에서도 유감없이 보여줬다. 경쟁자들에 비해 압도적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벤투 감독으로선 탐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스타 골키퍼 조현우의 이름도 언급했다. 그는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조현우는 벤투 체제에서는 김승규에게 밀려 ‘넘버2’의 이미지가 있었다”면서 “김승규가 해외에 있어 선발되지 못한 이번 경기에 조현우가 다시 한 번 확실한 존재감을 보였다. 공고한 김승규의 팀 내 위상에 한 발 더 다가가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국가대표 주전 골키퍼 경쟁에서 밀리는 듯했던 조현우는 다시 한 번 존재감을 과시했다. 사진=KFA 제공
김환 JTBC 해설위원은 벤투 감독이 선택한 23세 이하 자원 3명 중 원두재에 주목했다. 그는 “원두재는 K리그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만큼 A대표에서도 기존 멤버로 느껴질 정도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며 “해외파가 돌아온다면 김민재, 김영권이 주전으로 나서겠지만 백업 자리는 왼쪽 권경원 외에 오른쪽은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모양새다. 원두재가 이 자리를 꿰찰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이번 스페셜 매치에선 원두재가 수비수로 기용됐지만 그의 제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 뛸 가능성도 제기했다. 원두재는 이번 시즌 소속팀 울산에서 대부분 경기에 미드필더로 뛰었다. MVP를 수상한 지난 U-23 챔피언십 당시에도 미드필더였다. 그는 “그동안 대표팀에서 정우영 외에 확실한 수비형 미드필더가 없었다. 손준호(전북), 주세종(서울) 등이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지만 원두재도 후보가 될 수 있다. 이들에 비해 좀 더 수비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원두재는 우리나라가 수세로 몰릴 강팀과 경기에서 좋은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1, 2차전 모두 선발로 나섰던 손준호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김 위원은 “손준호는 현재 K리그 탑 미드필더다. 테스트 성격으로 투입된 선수들도 있지만 손준호의 2연속 선발 출전은 팀 내 가장 좋은 선수기 때문으로 보인다”면서 “그동안 손준호가 이따금 대표팀에 뽑히긴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꾸준히 선발되는 멤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성주 IB스포츠 해설위원은 커리어 최초로 A대표에 데뷔한 김영빈(강원)을 언급했다. 벤투 감독은 앞서 A매치 공백기가 이어지며 K리그 현장을 부지런히 방문했고 그 중 유독 강원 FC의 경기에 자주 등장해 관심을 받았다. 결국 벤투 감독은 강원 소속 선수 4인을 선발하며 ‘취향’을 드러냈고 김영빈에게는 2차전서 선발 출전 기회를 줬다. 강 위원은 “김영빈은 비록 30대에 접어드는 시점에 대표팀 첫 출전이지만 왜 자신이 뽑혔는지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김영빈에 대해 “수비수로서 냉정함이 장점”이라며 “공격수는 열정적인 부분이 필요하지만 수비수는 차가워야 한다. 김영빈은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모습이 돋보인다. 실수가 없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강성주 해설위원은 “김영빈(맨 오른쪽)은 무표정한 얼굴에서도 수비수로서 냉정함이 잘 드러난다”는 평가를 남겼다. 사진=연합뉴스
강 위원은 이외에도 김태환과 주세종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했다. 그는 “김태환은 가끔 대표팀에 뽑혔지만 기회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이번 경기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주세종은 이번 선발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던 선수다. 소속팀 경기에 자주 나서지 못하고 있어서인데 그럼에도 대표팀에서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잘 보여줬다”고 말했다.
또 그는 양 팀의 전체적인 경기력에 대해 “1차전서 A대표가 고전하며 이를 질타하는 여론이 있기도 했다. 실험적 성격이 강했고 상대인 올림픽대표팀은 조직력을 어느 정도 갖춘 팀이기에 경기력을 지적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 경기 결과 올림픽대표팀은 1무 1패를 거뒀는데 중원 싸움에서 밀리며 송민규, 엄원상(광주) 등 좋은 측면 자원을 활용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다만 전방 공격수들의 전방 압박은 대단했다. 특히 1차전에서 백호 유니폼을 입고 수비수들에게 달려드는 장면은 무서울 정도”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치러진 경기였지만 새얼굴 합류로 대표팀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조직력을 가다듬는 등 수확이 많은 경기였다. 앞으로 이런 경기가 자주 있어도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