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시 중구 을지로 롯데그룹 본사 전경. 사진=박정훈 기자
#‘깜짝퇴진’ 이어 조기 인사‧외부수혈 할까
롯데의 조직개편 의지는 지난 8월부터 깜짝 인사로 드러났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최측근으로 2017년 지주사 체제 출범 당시부터 신 회장과 공동 대표를 맡았던 황각규 부회장이 롯데지주 대표이사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황 부회장은 신 회장이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법정 구속됐던 2018년 비상경영체제를 이끌었을 정도로 명실상부한 롯데그룹의 2인자였다.
황각규 부회장은 퇴진 이후 임직원에 보내는 서신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 요구 등으로 그룹은 지금 주요한 시점에 와 있어 후진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드려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황 부회장이 실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는 분석도 나왔다. 롯데는 그룹의 양대 축인 유통부문과 화학부문 모두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황각규 부회장의 퇴임으로 롯데지주에서는 황 부회장 전략 라인의 인적쇄신이 이뤄졌다. 더불어 롯데물산과 롯데하이마트 등 롯데의 일부 주요 계열사 대표도 교체됐다. 황 부회장 후임으로 내정됐던 이동우 롯데하이마트 사장은 지난 10월 8일 열린 롯데지주 임시주총에서 정식으로 대표에 선임됐다. 이 사장 선임으로 롯데지주는 신동빈 회장과 송용덕 롯데지주 부회장, 이동우 롯데지주 사장 3인 대표 체제로 전환됐다.
업계에서는 체제를 전환한 롯데가 올해 연말 임원 인사를 앞당겨 진행하면서 큰 폭으로 변화를 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롯데는 황각규 부회장 퇴임 전후로 롯데지주 소속 임직원 수를 기존 170여 명에서 140명으로 줄이는 등 조직 슬림화에 나섰다. 지주를 중심으로 하던 기존 경영 방식에서 탈피해 유통과 호텔‧리조트, 화학, 식품 등 4개 사업부문(BU, Business Unit) 중심의 책임경영을 강화하겠다는 것.
이에 앞서 유통 맞수 신세계그룹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마트부문 임원 인사를 앞당겨 단행했다. 신세계는 지난 10월 15일 이마트부문 6개 계열사 대표를 교체하는 임원 인사를 실시했다. 이번 인사에서 신세계는 계열사 6곳 가운데 4곳의 신임 대표 자리에 외부 출신을 앉혔다. 지난해 이마트 창립 이래 최초로 외부에서 영입되며 눈길을 끈 강희석 이마트 대표는 올해 그룹 통합 온라인몰인 SSG닷컴도 함께 이끌게 됐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유통 대기업의 파격인사는 결국 경영 악화에서 탈출하기 위한 변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며 “경영 전략 변화를 위해서는 조직문화 변화가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인적쇄신이 우선되어야 해 (황 부회장 퇴임과 관련) 전략적으로 인사가 이뤄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이어 “경직된 조직문화로 유명한 롯데에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체제가 바뀐 만큼 외부수혈 등도 적극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롯데는 최근 유통부문에서 ‘롯데온’을 필두로 온라인을 강화하고 화학부문에서 고부가가치 신사업 투자를 확대하는 등 부진 탈출을 위한 전략 모색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진=롯데온 홈페이지 캡처
#‘온라인‧배터리’로 뒷북 우려 딛고 탈출?
롯데는 최근 깊은 부진에 빠진 그룹의 양대 축인 유통과 화학부문에서 반등을 꾀하고 있다. 지난 2분기 롯데쇼핑은 14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98.5% 급감했고 롯데케미칼 영업이익 또한 전년 동기 대비 90.5% 급감한 329억 원에 그쳤다. 롯데는 최근 유통부문에서 온라인 역량을 강화하고 화학부문에서 고부가가치 신사업 투자를 확대하는 등 부진 탈출을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유통부문에서 롯데는 지난 4월 공식 출범한 ‘롯데온’을 중심으로 온라인화에 집중하는 동시에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한 고강도 다운사이징을 진행하고 있다. 롯데쇼핑은 지난 2월 향후 5년간 백화점과 마트, 슈퍼, 롭스 등 오프라인 점포 200여 곳(2월 기준 700여 곳 중 30% 수준)을 정리하고 3년 내 수익선을 개선하겠다는 미래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롯데슈퍼 50여 곳, 롯데마트 10곳이 폐점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방향성을 두고는 대체로 이견이 없지만 시점을 두고는 한 발 늦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신세계는 온라인 유통 채널에서 이미 롯데보다 2년가량 앞서있다. 신세계는 2018년 1월 이커머스 시장에 뛰어들며 그룹 통합 온라인몰인 ‘SSG닷컴’을 내놨다. 더불어 점포 구조조정 및 효율화 또한 2019년 시작했다. 당시 이마트는 부진이 심한 전문점부문을 중심으로 총 33개 점포를 정리하고 효율화를 가속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형마트 3사의 전략을 보면 롯데는 구조조정 차원에서 매장을 폐쇄하고 있고, 신세계 이마트는 리뉴얼, 홈플러스는 DNA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며 “젊은 총수가 혁신에 힘쓰는 이마트는 대형마트 사업이 어두워진 상황에서도 SSG닷컴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성장 모멘텀을 만들어 낸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서 교수는 이어 “롯데는 소매업부터 면세점까지 세계적으로 봤을 때에도 몇 없을 정도의 다업태 형태로 유통부문을 운영해왔는데, 이를 하나의 채널 ‘롯데온’으로 통합하려는 시도에 우려가 있다”며 “차라리 기존 타 이커머스 업체를 인수하는 방향이 바람직했다고 본다”고 평했다.
롯데는 화학부문에서 ‘스페셜티 고부가가치’ 사업 확장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최근 주요 대기업이 모두 뛰어든 전기차 배터리 소재 사업에도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정밀화학은 지난 9월 두산솔루스 인수 펀드에 지분을 투자하며 전기차 배터리 소재사업에 진출했다. 두산솔루스는 전기차용 배터리 동박(전지박)을 생산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다. 또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배터리 소재 사업을 영위하는 일본 히타치케미컬 인수를 시도했다 실패하자 히타치케미컬을 인수한 쇼와덴코 지분 투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배터리 사업에 손을 뻗기도 했다.
이 역시도 우려와 기대가 공존한다. 이미 국내 5대 대기업 가운데 롯데를 제외한 모든 대기업이 배터리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상황에서 ’뒷북‘ 진출 아니냐는 우려다. 반면 급속도로 성장하는 배터리 시장의 미래 먹거리가 풍부한 만큼 중인 배터리 자체가 아닌 소재부문 진출은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최근 테슬라의 사례처럼 자동차 제작사들 또한 자체적으로 배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시장이 치열해진 만큼 롯데의 배터리 시장 진입이 간단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배터리 전지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먹거리가 풍부한 만큼 롯데는 배터리 전체를 만드는 것보다 일부 부품, 소재 등을 중심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롯데의 화학부문 주력 계열사인 롯데케미칼 또한 배터리 사업 진출에 대해서는 아직 거리를 두는 분위기다. 다만 롯데알미늄 등 계열사를 중심으로 배터리 소재 사업을 추진 중인 것으로 보인다. 롯데알미늄은 1100억 원을 투자해 지난 4월부터 헝가리에 배터리 양극박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롯데알미늄이나 롯데정밀화학 등 계열사별로는 사업 방향이 조금씩 다르게 진행될 수 있지만, 롯데케미칼은 화학소재사업이다 보니 배터리 사업과는 거리가 있다”며 “(BU를 중심으로) 롯데 화학부문은 고부가가치 소재 쪽으로 사업 가능성 여부를 확인하고 사업 확장을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