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왼쪽)과 신진서의 슈퍼매치 7번기 1국. 노을이 내리는 남해 이순신순국공원 관음루에서 펼쳐졌다. 사진=사이버오로 제공
‘아름다운 보물섬 남해, 신진서 vs 박정환 슈퍼매치’다. 장충남 남해군수는 “신진서 9단이 기사로 성장하며 세계를 제패하는 모습을 보며 남해군에서 ‘뭔가 해야겠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군민의 뜻을 모으고 시의원들 다수가 협조해주었다. 한국기원의 도움을 얻어 국보기사 두 명을 남해로 초청할 수 있었다. 7번기 명승부를 보며 남해 군민이 모두 자긍심을 가졌으면 한다. 바둑은 곧 문화다. 군사, 경제를 넘어서 문화강국으로 우리가 세계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작이 남해이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1국은 10월 18일 이순신순국공원 관음루에서 열렸다. 신진서가 멋진 내용으로 불계승했다.
남해군은 신진서에겐 홈그라운드다. 신진서 부친 신상용 씨의 고향이다. 대회 소식을 듣고 부산과 울산에서 신진서를 응원하는 열혈팬들이 달려왔다. 야외 대국장 옆에는 ‘남해의 가을이 신공지능으로 물들다’란 플래카드까지 걸렸다. 본의 아니게 박정환이 외롭게 원정 경기를 치르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미 28세, 10년 넘게 정상에 서서 단련된 백전노장이다. 이런 분위기에 움츠러들 실력은 아니다.
게다가 신진서에게 받아야 할 빚도 있다. 두 기사 상대 전적은 16승 12패로 박정환이 앞서지만, 최근엔 연전연패 중이다. 2019년 공식대국에서 다섯 번 만나 박정환이 모두 이겼다. 그런데 2020년은 신진서와 아홉 번 대결에서 여덟 번을 패했다. 이번 7번기 슈퍼매치 1국까지 신진서에게 6연패 중이다. 뭔가 보여줘야 할 시점이다.
7번기는 남해군의 대표 관광지를 돌면서 펼쳐진다. 1국이 진행된 관음루. 사진=사이버오로 제공
1국을 마치고 한국기원 양재호 사무총장은 “이 대회는 군수님이 직접 기획하고 한국기원에 제안까지 하셨다. 남해군은 이번 매치를 시작으로 훌륭한 더 큰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박정환 9단에게 대국 의사를 물으니 흔쾌히 하겠다는 뜻을 밝혀 감동했다. 이번 대회는 한국 바둑의 보물 신진서와 박정환이 참가한 스타마케팅의 시작이다. 이 둘이 TV광고에 나올 만큼 대중에게 더 알려져야 한다. 7번기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이후 10번기 또는 더 멋진 대회를 열어 바둑계 전체 분위기를 띄우겠다. 적극적으로 동참해 준 두 대국자에게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7번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 지 궁금하고 흥분된다”라고 말한다.
두 기사는 이번 7번기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고자 한다. 대국을 앞두고 박정환은 “지금 성적과 실력이 약간 정체기다. 이번 7번기가 향상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실력에 많이 도움을 받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강한 상대와 대결은 배움의 기회다”라는 뜻을 밝혔다. 1국에서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힘겹게 승리한 신진서는 “1국 내용만 봐도 스코어에 욕심낼 여유가 없다. 4 대 3으로만 이겨도 만족이다. 이번 7번기를 통해 더 성장하고, 남해의 아들이라는 말에 걸맞은 대 기사가 되겠다”라며 승리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7번기는 10월에 1차전에서 3국까지 열고, 11월 2차전과 2월 초 벌어지는 3차전에서 두 판씩 연다. 대국 장소는 남해군의 대표 관광지다. 이순신 순국공원 관음루(야외)·상주 은모래비치 송림(야외)·독일마을·남해각·노도문학의 섬·설리 스카이워크·남해유배문학관을 배경으로 대결한다. 매판 상금은 승자 1500만 원, 패자는 500만 원이다.
[승부처돋보기] 노을에 물든 관음포 1차 대전 슈퍼매치 남해 7번기 1국 ●신진서 ○박정환 2020.10.20. 267수 흑불계승 실전진행1 #실전진행1 학익진을 펼치다 학의 날개처럼 멀리서 감싸안으며 적을 포위하는 이순신 장군이 즐겨 쓰던 진법이다. 남해 관음포는 그가 마지막 격전을 벌였던 장소. 7번기 1국은 노량해전이 열렸던 바다를 보며 열렸다. 1국 초반은 거의 100여 수까지 AI 추천수를 벗어나지 않았다. 신진서는 인공지능의 수를 쓰면서도 자기 바둑만의 맛을 살리는 기사다. 진행도 흑1로 붙이고 흑5로 넓게 감싸안는다. 상변 백(세모 표시)를 노려보는 ‘학익진’이다. 흑13도 정확하게 AI가 제시하는 타이밍에 둔다. 초반 백은 약간 느슨했을 뿐 실수가 거의 없었다. 그래도 형세는 흑이 유리하다. 실전진행2 #실전진행2 노을에 물든 승부 불리하지만, 백을 든 박정환은 차분했다. 두텁고 느긋하게 추격했다. 기어코 좌변에서 흑에게 과속딱지를 끊었다. 좌변 흑(네모 표시)의 교환은 필요 없는 손찌검이었다. 상변 흑돌에 안형 하나가 사라지면서 돌연 대마가 휘청거렸다. 물론 죽을 돌은 아니었지만, 흐름이 확 달라졌다. 나빠진 형세를 감지한 신공지능은 빠르게 승부수를 던진다. 흑1로 젖힌 수가 박정환의 마음을 묘하게 흔들었다. 백이 밑으로 받아줘도 유리했는데 강하게 끊어가서 사달이 났다. 자연스럽게 흑13까지 중앙을 막아 재역전에 성공했다. 이후 흑은 흔들리지 않고, 반집 유리한 형세를 계속 유지했다. 끝내기에서 백의 실수가 나와 차이가 더 벌어지자 박정환이 돌을 거뒀다. 저녁노을이 바다를 물들이던 무렵이었다. |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