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한 SBS 월화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박은빈은 혼돈과 불안 사이에 선 청춘을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사진=나무엑터스 제공
“송아의 입장에서 보면 누구보다도 재능이 있길 바라고 절실한 입장으로서 ‘재능이 없는 게 축복’이란 말을 들으면 ‘재능이 있는 당신이니까 배부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순간 욱할 수도 있겠죠. 음악을 했던 저희 친오빠가 ‘애매한 재능은 비극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어요. 저는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 말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애매하다는 건 정말 잘하는 것도 아니고, 포기할 만큼 못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모로 확신을 얻기에 어려운 선택지를 주는 게 바로 애매한 재능이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 지점에 있어서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하는 부분이라(웃음)…. 그래서 둘 입장에 모두 공감을 했던 것 같아요.”
이처럼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꿈을 붙잡고 포기하지 않는 송아를 보고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미련스럽다”는 박한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성장형보다는 처음부터 완성형인 주인공을 원하며, 얽히고설키는 갈등 따위는 저 멀리에 치워 버리고 ‘사이다’ 전개에 열광하기 바쁜 오늘날의 시청자들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다소 늘어진 중후반부 전개가 답답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연기한 박은빈 역시 이런 지점을 신경 쓰고 있었다고 했다.
“‘송아 답답해’ ‘미련하다’ 이렇게밖에 느끼실 수 없었던 건 한편으론 그만큼 더 감정이입을 많이 해주셨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제 스스로 변명을 해 보자면, 내가 미련하다는 걸 알지만 이걸 못 놓고 있는 건 결국 (음악을 향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거든요. 내가 헌신한 세월이 있는데 그걸 한 순간에 놓을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죠. 이렇게 답답해질 수밖에 없고, 누구는 미련이라고 꾸짖을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는 것 자체가 그게 진심이었다는 증명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송아는 이럴 수밖에 없어!’ 하고 합리화했던 것 같아요(웃음).”
‘사이다’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중후반부 전개를 두고 “답답하다”는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박은빈 역시 이 같은 비판 지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사진=나무엑터스 제공
송아의 시점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였기에 박은빈은 시청자들이 송아의 삶에 자신을 투영하며, 송아를 응원하듯 자신의 삶을 응원하길 바랐다고 덧붙였다.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박은빈의 바람대로 시청자들은 “송아야, 행복해야 해”라는 가슴 뭉클한 댓글로 송아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
“저희 소제목이 음악 용어로 돼 있잖아요? 그렇게 소제목이 붙는 게 엄청 세련됐다고 생각했는데(웃음), 마지막 화 부제를 보시면 ‘크레셴도’예요. 점점 크게 라는 뜻인데, 지금이 가장 작은 상태이니까 앞으로 점점 커질 일만 남아있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저한테만 몰래 ‘아마 (마지막 화) 부제가 그렇게 될 건데, 송아의 인생도 크레셴도처럼 살 거예요’라는 말을 스포해주셨어요(웃음). 그래서 저도 그 말씀을 마음에 갖고 힘든 시간이 있을 때마다 ‘송아는 크레셴도로 살 거야!’ 하고 스스로를 북돋았던 것 같아요.”
함께 크레셴도의 길을 걸어갈 준영, 김민재에 대해서도 박은빈은 깊은 인상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함께 로맨스를 찍는 장면에선 설렜다기보다는 “끼를 부린다”고 생각했다며 웃음을 터뜨리긴 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크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특히 극중 ‘6각관계’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채송아와 박준영, 윤동윤(이유진 분) 간의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푸는 데엔 더할 나위 없는 연기 합을 보였다고 했다.
“준영이가 막 ‘날 좋아해, 좋아하라고’ 이런 느낌이죠(웃음). 연기로는 설렐 수 있지만 실제 배우로선 분리해서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송아가 준영이에게 마음이 쏠린 건 내가 사랑하는 음악을 통해서, 그동안 받아본 적 있나 싶었던 위로를 대신 전해줬다는 점이 송아의 마음에 훅 스며드는 계기가 됐지 않았나 싶어요. 준영이란 사람의 상냥함을 인지한 상태에서 계속 얽히는데 청계천에서 막…. 그렇게 되면 당연히 ‘동윤이가 누구죠?’ 이런 느낌이 되는 거죠(웃음). 이 작품이 잔잔하고 서정적인 멜로가 아니라 제 기대 이상으로 인물들 간 감정선 사이 치열한 고민이 엿보였고, 시청자 분들도 그 부분을 훨씬 더 격렬하게 포착하고 잘 느껴 주셨던 것 같아요. 저희 드라마 보고 그러시더라고요. ‘잔잔 마라 맛’(잔잔함+마라탕처럼 자극적임)이라고.”
올해 상반기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이세영 팀장부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채송아에 이르기까지 박은빈은 외유내강형 캐릭터를 잘 표현해 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사진=나무엑터스 제공
“요 근래 제가 맡았던 캐릭터들의 알맹이만 여과해 보면 굉장히 정의로운 사람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코 범법을 저지르지 않고 옳고 그름을 판별해 낼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할까? 어쩌다 보니 그런 역할들을 죽 맡게 됐는데, 그런 게 또 제 안의 모습이기도 해서 좀 더 (대중들을) 설득하기 쉬워서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웃음). 하지만 빌런(악역) 역할에도 관심이 있어요. 현실에선 못 할 걸 아니까 작품에서 법도 한 번 어겨보고, 그래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
다음 작품에선 그의 욕심처럼 ‘빌런 박은빈’도 기대할 수 있을까. ‘스토브리그’에 이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까지 꽉 찬 2020년을 보낸 박은빈은 남은 시간 동안 차기작을 기다리며 조용한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이불 속에 누워서 아무 것도 안 할 예정이에요.” 앞으로의 구체적인(?) 계획을 밝힌 박은빈에게 최근 유행하는 MBTI 검사에 따른 자신의 유형이 어떤 것인지 물어봤다. 집순이‧집돌이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INFP‘가 나왔다.
“일 하지 않을 때 특별한 취미라든가, 나만의 여가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는 그런 게 딱히 없어요. 그냥 이불 속에서 아무 것도 안 하기가 제 생활 패턴이에요(웃음). 달리 생각하면 저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는 쉬어야 해, 휴식을 취해야만 해 하는 강박적인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가만히 있는 게 곧 쉬는 거고, 그게 충분하다고 느껴지면 일을 할 동력이 생기는 느낌. 틀에 박힌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저에게 있어 제 삶의 가치는 행복해지는 것이고, 저로 인해 가족들도 행복할 수 있다면 제 가장 보람된 일이 될 것 같거든요. 그런 면에서 송아가 계속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도 제 개인 욕구가 투영된 말이었던 것 같아요. 저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등장인물의 행복을 바라 주시는 걸 보면서 그 행복을 바라는 기운들이, 행복을 빌어주시는 분들에게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많이 들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