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에서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투자매력이 약화되면서 현대글로비스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는 모습이다. 정의선 회장이 그룹 총수(회장)에 올랐지만, 지배구조는 여전히 정몽구 명예회장 중심이다. 지배구조의 안정을 위해 정의선 회장 중심으로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서울 강남구 현대글로비스 본사 전경. 사진=고성준 기자
정몽구 명예회장은 과거 현대차와 기아차의 A/S 부품 부문을 현대모비스(옛 현대정공)에 넘기면서 그룹 지배구조를 완성했다. 현대차와 기아차 ‘순정부품’을 독점하는 A/S 부문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현재도 현대모비스의 모든 이익이 이 부문에서 창출된다. 모듈 부문은 매출은 크지만 만성 적자다.
이 때문에 한때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의 ‘순정부품’ 부문을 떼어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려 했다.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현대모비스 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익원이 필요하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중고차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제조와 유통채널을 모두 지배하는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은 엄청난 수익 잠재력을 갖는다. 중고차는 사는 쪽과 파는 쪽의 시세차이가 크다. 신차 판매와 함께 중고차를 싸게 사들여 마진을 붙여 국내·외에 판다면 상당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 현대글로비스가 중고차 사업을 주도한다면 현대모비스의 ‘순정부품’ 이상의 수익이 가능해질 수 있다. 정의선 회장이 지분을 보유한 전산회사 현대오토에버도 중고차 거래시스템이 갖춰지면 수혜가 가능하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품질 문제로 투자매력이 약해지면 현대글로비스에 대한 투자자들의 상대적 관심도도 높아진다. 현대차 주가가 하락하면 정몽구 명예회장 지분을 물려 받는 데 따른 증여·상속세 부담도 줄어든다. 퍼즐의 마지막은 현대엔지니어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장외가격 기준으로 정의선 회장 지분가치는 6700억 원에 달한다. 유동화나 맞교환이 가능한 상장 또는 우회상장이 이뤄지면 지배구조 퍼즐이 맞춰질 수 있다.
SK실트론 구미공장 전경. 사진=SK실트론 제공
SK하이닉스의 인텔 메모리반도체 인수 발표 이후 주가는 약세를 보였다. 10조 3000억 원의 인수자금 부담 때문이다. 인텔 메모리반도체 부문은 최근 수익성이 개선됐지만, 지속 여부는 불투명하다. 반도체 기업 간 합병이 성공한 사례도 드물다. SK가 무려 4조 원을 들여 지분을 공동매입한 도시바 반도체 투자성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그럼에도 SK하이닉스의 이번 M&A로 확실한 수혜가 예약된 곳이 SK실트론이다.
옛 LG실트론을 인수해 이름을 바꾼 SK실트론은 반도체 웨이퍼 생산업체다. 최근 매출액은 늘어나고 있지만 수익성이 하락하고 있다. 최근 5년 사이(2015~ 2019년) 글로벌시장 점유율은 9.3%에서 11.2%로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도체 제조사와 웨이퍼 업체간 가치사슬이 강력해 점유율 확대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메모리반도체 세계시장 점유율이 9%가 넘는 인텔 사업부를 인수하면 SK실트론의 실적이 크게 개선될 수 있다. 제조업은 가동률이 높아지면 그 이상으로 수익성이 개선된다.
SK실트론은 아직 비상장이다. 하지만 기업공개(IPO·상장) 대상이다. 지주사인 SK(주)가 51%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다. SK실트론의 실적이 획기적으로 개선돼 기업가치가 높아지면 SK(주) 등 주요주주들의 상장 차익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이번 인텔 반도체 인수 전 SK실트론 예상 시가총액은 약 3조 원이었는데, 웨이퍼 공급 확대로 실적이 급증한다면 5조 원 이상으로 불어나게 된다. SK(주) 등 주요주주들이 2조 원 이상의 차익이 가능한 셈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