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일 ‘뉴욕포스트’가 ‘바이든의 비밀 이메일’이라는 표지 기사를 통해 소문으로 떠돌던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암시하는 증거를 찾았다고 보도했다.
‘뉴욕포스트’가 입수한 증거는 다름 아닌 바이든의 차남인 헌터의 이메일이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 관련 내용이 담긴 이 이메일은 지난해 4월 바이든의 고향인 델라웨어주의 한 컴퓨터 수리점에 맡겨진 노트북에서 발견됐다. 물에 젖어 손상됐다며 맡기고 갔던 이 노트북은 몇 달이 지나도록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았고, 이에 컴퓨터 수리점 주인은 노트북을 처분할 생각에 저장된 자료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이 발견됐다. 전 부통령의 아들인 헌터로 추정되는 인물이 찍힌 사진과 함께 성관계 동영상이 발견된 것이다. 12분짜리 동영상 속에서 이 남성은 코카인을 흡입한 상태로 신원미상의 한 여성과 성행위를 하고 있었다.
수리점 주인이 사진과 영상 속의 인물이 헌터일 것이라고 의심한 이유는 노트북에 붙어 있던 스티커 때문이었다. 그는 ‘데일리비스트’ 인터뷰를 통해 “수리를 맡기러 온 사람이 헌터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노트북에 헌터의 형인 보 바이든을 기리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고 말했다. 바이든의 장남인 보는 2015년 뇌졸중으로 사망했으며, 현재 그의 이름을 딴 ‘보 바이든 재단’이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수리점 주인은 “연방수사국(FBI)에 노트북을 신고해 가져가도록 했다. 다만 노트북을 넘기기 전에 하드 드라이브를 복사해 두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였던 그는 이 복사본을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이자 측근인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에 건넸고, 이렇게 전달된 자료는 대선을 목전에 둔 지난 14일 ‘뉴욕포스트’에 의해 폭로됐다.
‘뉴욕포스트’는 헌터의 사진과 동영상보다 다른 데 더 주목했다. 바로 헌터와 그의 부친인 바이든이 우크라이나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담긴 이메일이었다. 2015년 4월 17일,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회사인 ‘부리스마’의 고위 임원인 바딤 포자르스키가 헌터에게 보낸 이 이메일에는 “친애하는 헌터 씨, 저를 워싱턴 DC로 초청해서 잠시나마 당신의 아버지를 만날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고 적혀 있었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미-우크라이나 관계를 담당하고 있었다.
헌터 바이든의 이메일 스캔들이 대선을 코앞에 둔 조 바이든에게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2010년 당시 바이든 부통령(왼쪽)과 차남 헌터가 농구경기를 관람하는 모습. 사진=AP/연합뉴스
헌터는 2014년부터 ‘부리스마홀딩스’의 이사로 일하고 있었으며, 당시 연봉은 월 5만 달러(약 5700만 원) 정도였다. 또한 ‘뉴욕포스트’는 포자르스키가 그보다 앞선 2014년 5월 헌터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는 “(부통령의 아들인) 당신의 영향력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도 폭로했다.
‘뉴욕포스트’의 이번 보도는 지난해부터 ‘우크라이나 스캔들’ 의혹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호재와 다를 바 없었다. 대선 TV 토론회에서도 이런 의혹을 거듭 제기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다 할 관련 경력이 없는 헌터가 ‘부리스마’에서 고액 연봉을 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헌터가 부통령이었던 아버지의 영향력을 남용했다는 사실이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부리스마’의 부패 의혹에 대한 수사를 벌이던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이 2016년 갑자기 해임된 것이 바이든 전 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부에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포자르스키가 헌터에게 감사 이메일을 보내고 8개월도 채 안 된 2015년 12월,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바이든은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과 아르세니 야체뉵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당시 ‘부리스마’의 비리를 수사하고 있던 빅토르 쇼킨 검찰총장을 해임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이를 행하지 않을 경우 10억 달러 상당의 차관 제공 계획을 보류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그로부터 3개월여 후인 2016년 3월, 쇼킨 검찰총장은 해임됐다.
이에 대해 바이든은 2018년 미국외교협회(CFR) 행사에서 “당시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의 해임을 건의한 것은 그가 부패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유럽연합(EU)도 공감하고 있었던 바”라고 해명하면서 “결코 내 아들과 비즈니스 문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또한 바이든은 “나는 그들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6시간 후에 떠날 것이다. 그때까지 쇼킨이 해임되지 않으면 돈을 못 받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측은 이에 대해 명백히 바이든이 공권력을 남용한 사례라고 주장하면서 “바이든은 즉시 전세계에서 벌여온 가족사업과 관련된 이메일, 회의, 통화내역 등 모든 기록을 공개해야 한다”고 공격했다. 선거 유세에서는 지지자들을 향해 “바이든이 부패한 정치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맹공을 퍼붓기도 했다.
대선 TV 토론회에서도 헌터의 문제를 걸고넘어진 트럼프는 “헌터는 코카인 흡입 문제로 군대에서 불명예 제대했다. 그리고 당신이 부통령이 될 때까지는 딱히 직업도 없었다. 당신이 부통령이 되자 그제야 우크라이나, 중국, 모스크바 등지에서 거금을 벌어들였다. 그런데 거금은 벌었지만 직업은 없었다”고 공격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은 TV 토론회에서 헌터 문제를 걸고 넘어지며 조 바이든 후보에 맹공을 가했다. 사진=AP/연합뉴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바이든 측은 “전혀, 그리고 완전히 신빙성이 없다”라고 부인하고 있다. 바이든 캠프는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근거 없는 음모론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하면서 “당시 바이든 후보의 일정을 검토해봤는데 ‘뉴욕포스트’가 주장한 그런 만남은 없었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앤드류 베이츠 대변인 역시 “바이든 부통령은 당시 미국의 공식적인 정책을 수행했을 뿐 어떠한 불법행위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바이든 측은 또한 그 노트북이 정말 헌터의 것이 맞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실제 수리점 주인의 진술이 번복되고 있다는 점도 수상하긴 마찬가지다. ‘데일리비스트’ 인터뷰에서 그는 “노트북에서 파일을 보고 난 뒤 수사당국에 연락했다”고 말했다가 다시 “FBI가 먼저 나를 찾아왔다”고 말을 바꾸는 등 횡설수설했다.
미국의 진보 언론과 정치 비평가들 역시 이번 스캔들을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NBC는 “많은 정치 비평가들은 헌터 바이든이 불리한 정보가 가득 담긴 노트북을 수리점에 맡긴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누군가 헌터의 (클라우드) 자료를 해킹해 노트북에 저장한 후 자연스럽게 유출된 것처럼 꾸미려고 했다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 1월에는 ‘부리스마’가 러시아 해커들에게 뚫려 기밀 정보가 새어나갔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러시아 개입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FBI는 이메일 내용의 진위 여부보다는 노트북의 출처를 밝히는 데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러시아 등 민주당에 적대적인 국가들이 바이든 후보에게 불리한 정보를 언론에 흘리기 위해 개입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은 2016년에도 불거진 바 있었다. 당시 민주당의 이메일 계정을 해킹한 것으로 의심받은 러시아 정부는 다른 한편으로는 SNS 계정 등을 통해 은밀하게 트럼프를 지원하는 선거운동을 벌이면서 트럼프의 당선을 도왔던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당시 민주당의 유력한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은 국무장관 재직 시절 개인 이메일 서버를 이용해 기밀문서를 주고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궁지에 몰렸고, 결국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
헌터 바이든 알코올·코카인 중독 극복 스토리 바이든의 차남인 헌터는 과거 알코올 및 코카인 중독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심각한 증상에 시달렸다. 지난 6월 ‘뉴요커’ 인터뷰에서 코카인 중독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벌였던 투쟁에 대해 털어놓은 그는 “10대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조지타운에서 대학을 다니던 90년대 초반부터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가끔은 코카인을 흡입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그가 자신의 중독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2001년이었다. 헌터는 “당시 집에서 술을 한 잔만 더 마시려고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기차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그때 내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스스로 충격을 받은 그는 그해 말부터 술을 끊기 위해 알코올중독재활센터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3년부터 2010년까지 7년 동안은 술을 끊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결국 알코올 의존증은 재발했고, 그후 몇 년 동안 헌터는 다시 술을 끊기 위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 싸움은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술과 마약을 끊는 데 계속 실패한 헌터는 한번은 LA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만취한 나머지 형의 지갑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이에 다시 일주일간 재활원에 입소한 헌터는 “끊으려고 애를 쓰면서도 나는 길거리 노숙자들을 만나면 코카인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 어딘지 묻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2017년에는 코카인에 취한 채 렌터카를 들이받는 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 헌터의 이런 약점을 가만히 보고 있을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는 지난 9월 바이든과 맞붙은 TV 토론회에서 이를 물고 늘어졌고, 바이든은 그 자리에서 “내 아들은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그리고 집에 있는 많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한때 마약 문제를 겪었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아들은 이겨냈다. 중독증을 고쳤고, 열심히 노력했다. 나는 그런 내 아들이 자랑스럽다”라고 덧붙였다. |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