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레전드 강기웅은 고의로 누의 공과를 이용하려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마지막 타석에 선 강기웅은 또 다시 큼직한 타구를 날렸다. 공이 펜스에 맞았다면 3루타에 도전할 수도 있을 듯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의도와 다르게 타구가 외야 담장을 넘어가 버렸다. 홈런을 치고도 기쁘지 않을, 희한한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순간 ‘꾀돌이’로 유명했던 강기웅의 머릿속에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누의 공과였다. 홈런을 치고도 홈플레이트를 밟지 않으면 해당 베이스의 점유권을 상실해 3루타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강기웅은 1루와 2루, 3루를 차례로 밟은 뒤 보란 듯이 홈 플레이트를 밟지 않고 그대로 지나쳐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누가 봐도 고의성이 다분한 ‘공과’였다.
그러나 강기웅이 하나 잊은 게 있었다. 누의 공과는 반드시 상대 팀이 어필해야 성립되는 기록이라는 점이다. 이미 큰 점수 차로 뒤져 있던 데다 이날 맹활약한 강기웅의 ‘고의 공과’에 기분이 상한 제일은행은 그대로 침묵했다. 홈 플레이트 공과를 바로 눈앞에서 지켜본 제일은행 포수조차 꿈쩍하지 않았다. 심판은 그대로 강기웅의 홈런을 선언했고, 그가 그토록 바랐던 사이클링 히트 기록은 실패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