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제약사뿐만 아니라 복지부에 환자 의견서를 제출한 다른 제약사들도 허위로 작성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어 전수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콜린알포세레이트 건강보험급여와 관련한 정부와의 소송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작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제약사가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환자 의견서 양식. 사진=허일권 기자
지난 7월 24일 보건복지부는 2020년 제13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콜린알포세레이트 성분 의약품의 건강보험 혜택 범위를 축소했다. 치매 외 질환에 대해서는 임상적 유용성에 대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다. 전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7차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에서 콜린알포세레이트 성분 의약품의 급여 범위에 대해 재심의한 결과를 복지부가 그대로 수용했다. 앞서 6월 11일 제6차 약평위에선 콜린알포세레이트의 급여 적정성을 재평가해 치매 외 환자의 약값 부담률을 기존 30%에서 80%로 전환하기로 의결했다.
제약사들은 정부의 결정에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 7월 초 제약사 영업사원들은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에 제출하기 위해서 환자 의견서를 수집했다. 의견서는 “콜린알포세레이트 성분의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환자 본인 부담금이 30%에서 80%로 확대되는 것을 반대하며 기존 급여 범위를 유지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후 지난 8월 초, 한국제약바이오협회·한국제약협동조합의 회원사인 62개 제약사가 앞서의 의견서를 보건복지부에 제출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제출된 환자 의견서가 너무 많아 아직 정확한 수를 집계하진 못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최근 한 제약사가 앞서의 환자 의견서를 일반인에게 허위로 받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급여 범위가 줄어들면 환자들의 부담이 늘어난다고 설명하면서, 환자가 아닌 일반인에게 서명을 받는 방식이다. 앞서 7월 23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는 “제약사 직원의 요청으로 병원과 약국에 환자 의견서가 비치됐다”며 “제약사 이익을 위해 환자 동의를 받아 환자들의 자발적인 의견인 것처럼 포장해 제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우려가 현실화된 셈이다.
환자 의견서를 허위로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는 업계 관계자는 여러 증거를 제시하며 “본사에서 영업사원들에게 치매 환자 서명을 받아오라고 했다고 한다. 지시가 내려온 지 일주일이 채 안 된 시점에 영업사원 대부분이 투입됐다”며 “시간이 촉박해 실제 환자에게 다 받을 수 없으니 약을 처방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의견서 의도를 설명하고, 환자인 것처럼 서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시간이 부족해 주변 지인들까지 동원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 회사뿐만 아니라 다른 제약사에서 제출한 환자 의견서도 비슷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최근 허위 작성 정황을 포착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실의 한 보좌진은 “환자가 서명한 것조차 제약사가 의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받아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제약사들이 허위로 받은 환자 의견서는 향후 정부와의 소송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8월 78개 제약사들은 콜린알포세레이트 급여 축소에 반발하면서 정부를 상대로 개정 고시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환자 9명이 함께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업계 일각에서 복지부가 환자 의견서 전수조사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이동찬 더프렌즈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재판에 제출되는 자료는 증거, 참고, 소명 등으로 구분되는데 환자 의견서는 판사의 판단에 따라서 증거로까지 인정될 수 있다”며 “환자 의견서에 문제가 발견된다면 피고인 정부가 원고인 제약사의 자료가 오염됐다고 반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당 제약사 측은 23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환자 의견서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현장에서 받아온 환자 의견서가 환자인지 아닌지를 일일이 다 확인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급여 축소되면 매출에 심각한 타격
제약사들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전을 불사하는 배경은 ‘매출 타격’이 꼽힌다. 특히 소송을 주도하고 있는 두 대형 제약사는 국내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시장의 5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의약품 조사기관 유비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콜린알포세레이트를 성분으로 한 두 회사 약품이 각각 947억 원, 761억 원가량 처방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치매 외 매출은 각각 약 785억, 631억 원을 차지했다. 즉 치매 외 매출이 82%에 달하는 만큼 보험급여가 축소되면 해당 약품 매출 타격은 불가피하다.
그동안 제약사들은 치매 외 환자의 처방을 늘리면서 매출을 확대해왔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았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받은 자료를 보면, 콜린알포세레이트 보험급여 청구 규모가 2011년 930억 원에서 지난해 3491억 원으로 3.8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청구 건수는 150만 9000건에서 866만 5000건으로 5.7배 증가했다. 특히 치매 외 처방액이 2922억 원을 차지하고 있다. 치매 관련 질환 처방액은 약 17%에 불과하다.
남인순 의원은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치매 환자 이외에는 임상적 유용성에 대한 근거가 없음에도 제약사가 뇌 영양제, 치매 예방약 등으로 홍보를 강화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며 “지난 9년 6개월 동안 콜린알포세레이트 청구액이 1조 7260억 원에 달하면서 건강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까지 개정된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약값 부담률은 적용되지 않고 있다. 제약사들이 앞서의 개정 고시 취소소송과 함께 집행정지 가처분도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고시 취소 청구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환자 본인 부담률은 현행 30%로 계속 유지된다.
정부는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기간에 제약사가 벌어들인 수익을 환수하는 등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지난 10월 20일 김선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장은 “현재 행정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으로 발생한 이득을 환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제약사가 소송에서 최종적으로 패소하면 소송 기간 내에 발생한 이득을 환수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국회 국정감사에서 말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난 10월 8일 국정감사에서 “제약사가 사법 제도를 이용해 보험급여를 연장하고 유지하는 ‘부당이익’으로 보고 있다. 환수할 수 있는 조치를 강구해보겠다”며 “법원이 가처분 신청은 받아들였지만 본안 소송은 반드시 정부 측이 이길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