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우승 경력을 보유해 ‘명장’으로 불리던 황선홍(왼쪽), 최용수 감독은 이번 시즌 나란히 팀에서 중도하차 하는 불명예를 맞았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K리그 명장’들의 불명예
‘월드컵 영웅’ 중 K리그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지도자는 최용수 감독과 황선홍 감독이다. 선수 시절 국가대표 공격수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이들은 지도자가 돼서도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앞서나간 이는 최용수 감독이었다. 최 감독이 2012년 FC 서울에서 K리그 우승을 차지하자 1년 뒤 황선홍 감독이 포항 스틸러스에서 첫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황 감독은 국내 최초로 K리그와 FA컵을 같은 해 동시에 석권하는 ‘더블’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후 황 감독은 최용수 감독의 후임으로 서울 지휘봉을 잡았고 다시 한번 K리그 정상에 올랐다. 2010년대 전북의 독주(2011, 2014, 2015, 2017, 2018, 2019 우승)가 이어진 가운데 이를 견제한 지도자가 최용수, 황선홍이었다.
하지만 2020시즌 이들은 나란히 큰 시련을 겪었다. 활동 무대는 달랐다. K리그1 무대에서 최용수 감독은 처절한 실패를 맛봤다. 리그 개막 이후 1개월간 2승 2패로 무난한 행보를 가는 듯했지만 이후 두 달간 단 1승에 그쳤다. 순위는 11위,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결국 최 감독은 7월 30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황선홍 감독으로선 이번 시즌이 지도자 경력에서 매우 중요한 한 해였다. 2018시즌 서울에서 사퇴한 이후 중국으로 떠났지만 현지 구단 사정 때문에 경력을 이어가지 못했다. 올 시즌 시민구단에서 기업구단으로 다시 태어난 대전하나시티즌에서 명예회복을 노렸다. 근래 K리그에서 보기 드문 대대적인 투자, 축구인 출신 경영인(허정무 이사장) 등 황 감독에게 좋은 여건이 펼쳐진 듯했다.
하지만 황 감독과 대전의 동행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이유는 ‘성적 부진’이었다. K리그2 우승으로 ‘다이렉트 승격’을 노리는 구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답답한 경기력을 떠나 황 감독 사퇴 당시 대전의 순위는 2위였다. 여전히 상위권에서 승격 경쟁을 지속하고 있었지만 양측은 결별을 선택했다.
K리그 무대에 감독으로서 첫 선을 보인 김남일(왼쪽), 설기현 감독은 혹독한 데뷔 시즌을 치렀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롤러코스터 탄 새내기들
이번 시즌 K리그 무대에 새롭게 도전장을 던진 ‘2002 전설’들도 존재했다. 김남일, 설기현 감독이 그들이다. 이들은 이전까지 코치 생활을 하거나 아마추어(대학) 무대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2020시즌을 앞두고 김남일 감독은 성남 FC, 설기현 감독은 경남 FC 지휘봉을 잡았다. 각각 첫 프로 무대 사령탑에 오른 시즌,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시행착오를 겪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이를 극복하는 모습은 달랐다.
김남일 감독은 시즌 초반 신바람을 냈다. 상대적 약체로 평가받는 성남을 이끌고 개막전이자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하더니 5월에만 2승 2무를 거뒀다. 신인 감독으론 이례적으로 한국프로축구연맹 선정 ‘이달의 감독’에 뽑혔다. ‘진공청소기’라는 선수 시절 별명을 떼고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 디에고 시메오네에게 빗대 ‘남메오네’라는 새 별명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상승세는 오래 가지 못했다. 이후 18경기에서 3승만 추가했다. 연승을 이어가던 FA컵 또한 4강에서 멈춰 우승 꿈이 무산됐다. 시즌 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최하위 인천과 각축을 벌이며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당장 ‘강등’이라는 급한 불을 끄지 않으면 다음 시즌 감독직을 이어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설기현 감독은 데뷔 초반 어려움을 겪었다. 시즌 전부터 기존 K리그 팀들보다 훈련 횟수를 줄이고 식사 여부를 선수에게 맡기는 등 ‘유럽식 축구’를 표방해 주목을 받았다. 경기장 위에서는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후방 빌드업에 초점을 맞췄다. 운동장에 나서는 선수 절반 이상 공격에 배치하는 실험적 전술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부작용도 발생했다. 수비진에서 패스를 돌리는 과정 중 실수가 나오며 허무한 실점을 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후방이 불안해지며 승리하지 못하는 경기가 많았다.
설 감독의 경남은 시즌 중반부터 반등하기 시작했다. 공수에 균형을 맞추는 방식으로 전술에 수정을 가했고 승리라는 결과가 따라왔다. 승리를 거듭하며 설 감독의 전술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9월 27일 충남아산과 경기에서 전반 0-1로 끌려가자 후반 시작과 동시에 교체카드 3장을 모두 활용하며 3-1로 뒤집었다. 설 감독의 과감함이 찬사를 받기도 했다. 시즌 중반까지 7위에 머물던 경남은 4위권 싸움을 이어가며 잔여 경기 결과에 따라 승격 플레이오프를 노릴 수 있는 위치다.
유망주 육성에 관심이 많은 차두리는 고교 무대에서 첫 감독직을 시작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도전하고 있는 스타들
이들 외에도 2002 한일월드컵 당시 23인 스쿼드 중 박지성, 안정환, 이영표 등 7명을 제외한 16명이 지도자를 경험했거나 현재 지도자 생활을 지속 중이다.
당시 대표팀 주장으로 탁월한 리더십을 보인 홍명보 현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는 가장 먼저 지도자로서 두각을 드러낸 인물이다. 각급 대표팀 코치를 거쳐 U-23 감독직을 맡으며 대한민국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하지만 A대표팀 감독을 맡아 월드컵 16강 진출에 실패 후 하차, 중국에서 경력을 이어나가다 행정가의 길로 돌아섰다.
최진철, 유상철, 이을용, 윤정환은 이미 한 차례 이상 감독 또는 감독대행으로 K리그 구단 지휘봉을 잡은 바 있다. 다만 최용수, 황선홍에는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냈다. 이들은 사령탑에서 물러난 이후로도 지도자 생활을 이어나가며 또 다른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민성과 최태욱은 태극마크를 달고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들은 각각 U-23 대표팀과 A대표팀에서 코치를 맡았다. 김학범 감독과 파울루 벤투 감독을 도우며 커리어를 쌓고 있다.
김남일, 설기현 외에 2020년 감독 데뷔를 한 인물이 또 있다. ‘타이거 마스크’로 유명세를 떨쳤던 김태영 감독이 오랜 코치 생활 끝에 K3리그 천안시 축구단 지휘봉을 잡았다. 차두리는 친정팀 FC 서울의 산하 유스팀 오산고 사령탑에 오르며 감독 데뷔 시즌을 치렀다.
스포츠계에는 ‘스타플레이어는 명장이 될 수 없다’는 오랜 격언이 있다. 그럼에도 홍명보, 최용수, 황선홍 등은 지도자로서도 성과를 내며 찬사를 받기도 했다. 2002 신화 주역들은 이들을 넘는 발자취를 남기려 도전 중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