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국정감사 전날인 10월 21일 대검찰청사 내부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난해 조국 전 장관 수사 이후 현 정권과 대립각을 세워오다 최근 라임·옵티머스 수사 과정에서 다시 맞붙은 윤석열 총장이 참석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참모들은 국감 준비에 분주했지만 정작 윤 총장은 평소와 다름없는 일정을 소화했다고 한다. 윤 총장과 가까운 한 법조인은 “‘(윤 총장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사실대로 말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 그게 윤 총장 스타일”이라고 했다.
예상대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윤 총장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윤 총장이 여기게 밀리지 않고 작심한 듯 맞받아친 것 역시 예상에서 빗나가지 않았다. 윤 총장은 15시간가량의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의원들과 공방을 벌였다.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 부하가 아니다”는 발언은 그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민주당 의원들이 윤 총장을 향해 “오늘 작심하고 나온 것 같다(김용민)” “오늘 싸우러 오신 것 같다(김종민)” 등과 같은 반응을 보였을 정도였다.
이 장면은 지난 2013년 서울중앙지검 국감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윤 총장은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수사팀장으로서 국감에 참석, 수사 윗선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윤 총장의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도 숱한 화제를 모았다. 그 후 윤 총장은 좌천을 당했다. 이런 경력은 문재인 정부 들어 오히려 ‘훈장’이 됐고,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오르는 발판이 됐다.
윤 총장 국감 발언을 지켜본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는 “2013년 윤석열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공개석상에 나가 ‘여론’에 호소한 것이다. 지금의 윤석열도 마찬가지”라면서 “팔다리가 다 잘린 상황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 위해 단단히 마음먹고 나온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수사지휘권을 잃은 윤 총장이 검사들에게 ‘원칙대로 수사를 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도 생각됐다”고 덧붙였다.
검찰 일각에선 윤 총장이 라임·옵티머스 특검을 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린다. 친 정권 성향으로 평가받는 현 수사 라인으론 진실 규명은커녕, 오히려 그들로부터 역공까지 당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장이 검사들을 믿지 못하는 형국인 셈이다. 하지만 특검은 수적인 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절대불가를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석이다.
윤 총장 국감 발언 및 현 수사 라인에 대한 인식은 이른바 ‘김봉현 옥중서신’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라임 사태 핵심 관련자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두 차례의 입장문을 통해 검사들에게 향응 접대를 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은 전관 출신 한 변호사가 자신에게 “윤석열 총장에게 힘을 실어주려면 강력한 한방이 필요하다. 청와대 강기정 수석 정도는 잡아야 한다”고 제안했다는 것도 폭로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0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의 법무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추 장관의 발언 태도 등과 관련한 야당 의원들의 의사진행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라임 사태 정권 실세 연루설이 끊이지 않던 차에 나온 김봉현 폭로에 여권은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윤석열의 검찰’이 비위 검사들과 이름이 거론되는 야당 정치인을 봐주려 은폐 수사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검찰이 문재인 정부에 흠집을 내기 위해 사건을 조작하려 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추미애 장관은 김봉현 입장문 발표 이후 윤 총장에게 라임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수사 지휘권을 발동하기도 했다.
윤 총장과 측근들은 김봉현 폭로에 대해 “소설 같은 얘기”라고 반박했다. ‘윤석열 사단’으로 꼽혔던 한 전직 검사는 “김봉현이 얘기하는 전관 출신 변호사가 일방적으로 윤석열 이름을 팔았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변호사가 한참 선배인 윤 총장에게 힘을 쓸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다녔을 개연성은 극히 낮다”고 했다.
윤 총장 측근으로 분류되는 검사도 “검찰총장과 현직 검사들 이름이 언급된 폭로다. 사실이라면 큰 문제지만, 일단 팩트부터 철저하게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으면서 “어떻게 범죄자 주장만 듣고,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비판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윤 총장 주변에선 김봉현 전 회장 배후를 의심하기도 한다. 김 전 회장이 모종의 ‘딜’을 통해 폭로를 결심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라임 수사 사정에 정통한 앞서의 윤 총장 측근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김 전 회장이 지난 4월쯤 그 전관 출신 변호사로부터 강기정 전 수석 관련 발언을 들었다고 한 부분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과거 수사 자료 등을 종합하면 김 전 회장이 올해 1월부터 강기정 전 수석을 비롯해 여권 몇몇 정치인 이름을 얘기하고 다녔던 것으로 파악됐었기 때문이다. 이들 중 일부는 수사가 이뤄졌지만 나머진 아예 시작조차 안했다. 이를 지켜본 김 전 회장은 어떤 생각이 들었겠느냐. 본인이 살려면 누구에게 줄을 대야 할지 명백한 것 아니냐. 김 전 회장이 이제 와서 검사들과 야당 정치인, 윤석열 이름을 강조하며 입장을 바꾼 것은 석연치 않다.”
여권에선 윤 총장 국감 발언을 두고 부글부글 끓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10월 23일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는 위험한 인식을 드러냈다”며 강한 목소리를 냈다. 윤 총장이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가 부당하고 비상식적이라고 한 부분에 대한 비판이었다. 같은 날 김태년 원내대표도 “검찰을 성역화된 신성불가침한 권력기관으로 바라보는 총장의 인식이 우려스럽다”고 꼬집었다.
추미애 장관도 즉각 움직였다. 윤 총장이 국감에 참석하고 있던 10월 22일 저녁, 추 장관은 라임 사태 수사에 대한 법무부-대검찰청 합동 감찰을 지시했다. 저녁식사를 위해 잠시 국감이 휴정하고 있던 때, 추 장관이 윤 총장을 향해 기습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대검 감찰부가 검찰총장 관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윤 총장으로선 자존심에 체면을 구긴 셈이다(관련기사 추미애 장관 전격 감찰 지시 ‘임은정 부장검사’ 존재감 드러내나).
여권과 추 장관은 검찰이 라임 수사 과정에서 검사들 비위가 발견됐지만 이를 은폐했거나 묵인했다고 의심한다.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윤 총장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본다. 감찰 지시는 그 연장선상이다. 민주당 한 의원은 “검찰 개혁의 필요성”이라고 잘라 말했다.
추 장관 측은 라임과는 별개로 신라젠 수사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언 유착’ 논란을 빚었던 신라젠 수사 당시 일부 검사들이 신라젠 측으로부터 부적절한 향응 접대를 받았다는 진술이 있었는데,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자체 확인 중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여기서 거론되는 검사 중 특정인이 윤 총장 라인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검찰 내에선 추 장관이 감찰을 앞세워 ‘윤석열 사단 씨 말리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청와대는 공식 입장을 내놓진 않았지만 불쾌해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윤 총장이 국감에서 청와대를 향해서도 여러 차례 부정적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앞서 청와대는 윤 총장에 대한 추 장관 수사지휘에 대해 “엄중한 수사를 위해선 불가피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윤 총장이 수사지휘를 부당하다고 한 발언을 두고 사실상 대통령에 대한 항명이란 격앙된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원한 청와대 관계자는 “어찌됐건 검찰총장은 임기가 있고, 이를 지켜준다는 게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 생각이었다. 교체했을 경우의 후폭풍도 부담이었다”면서 “그런데 이쯤 되면 그야말로 막가자는 것 아닌가. 윤 총장은 국가보다 검찰 조직이 더 중요한 분 같다. 대검 국감 이후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향후 감찰 결과 등을 살펴봐야겠지만 검찰총장 교체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할 단계에 왔다”고 했다. 여론에 따라 윤 총장 경질까지 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편 윤 총장은 국감에서 거취를 묻는 질문에 “임기라고 하는 것은 취임하면서 국민과 한 약속이다. 어떤 압력이 있더라도 제가 할 소임을 다할 생각”이라며 자진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