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신인 나승엽을 포함한 롯데 신인 3인방의 계약 내용이 공개됐다. 사진=김혜령 제공
#“김진욱 아버지한테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다”
롯데 자이언츠는 지난 21일 2021년 KBO(한국야구위원회)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은 신인 선수 11명과 입단 계약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발표하는 상황이 흥미로웠다. 11명 전원을 한꺼번에 발표한 게 아니라 이날 오전에 2차 지명 전체 1순위인 강릉고 좌완 투수 김진욱과 3억 7000만 원에 입단 계약을 맺었다고 먼저 발표했다. 2차 1번에 대한 구단 나름의 예우였다. 2차 2번인 나승엽과 동시에 발표할 경우 나승엽 이슈에 김진욱 계약이 묻힐 수 있다는 판단에 오전과 오후로 신인 선수들 계약 발표에 차이를 뒀다.
하지만 2차 1번인 김진욱보다 2차 2번인 나승엽의 계약금이 1억 3000만 원 더 많았다. 성 단장은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인 부분이었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김)진욱이 아버지한테 굉장히 고맙고, 진욱이한테 미안했다. 진욱이 아버지는 (나)승엽이가 얼마 받는 줄 알고 계셨다. 인간적으로 섭섭하셨겠지만 계약금 문제로 구단과 이견을 빚기보다는 진욱이 계약을 빨리 마무리 짓고 진욱이가 운동에 전념하기를 바랐다. 구단 입장에서는 발표 타이밍을 나눠 드래프트의 꽃인 2차 1번 선수가 온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해주고 싶었다.”
김진욱은 성 단장의 우려와 달리 자신의 SNS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계약금을) 더 많이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내게 롯데 유니폼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다. 내가 더 버텨야 할 곳은 계약 협상장이 아니라 롯데를 위해 던질 마운드라고 생각했다.’
#나승엽의 마음을 돌리기까지
잘 알려진 대로 나승엽은 일찌감치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미국 진출을 선언한 상태였다. 이미 미네소타 트윈스와 구두 계약을 마무리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런데 9월 21일 열린 2021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롯데는 2차 1번으로 김진욱을 지명했고 2차 2번으로 ‘고교 야수 최대어’로 꼽힌 나승엽을 지명하는 승부수를 띄었다.
만약 나승엽이 미국행을 선언하지 않았다면 그는 1차 지명이 유력한 선수였다. 그런데 선수가 미국에서 뛰고 싶다고 말하는 바람에 롯데를 비롯한 9개 구단은 나승엽을 지명하는 걸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 2차 드래프트를 앞두고 나승엽을 지명하는 구단이 나올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롯데는 지명권을 날릴 위험을 무릅쓰고 나승엽을 지명했다.
성민규 단장은 다른 팀 상황이 지명선수 계약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성 단장은 처음부터 계약에 확신을 갖고 있진 않았다고 한다. 단 코로나19로 인해 미국 마이너리그 상황이 불확실해졌다는 점, 메이저리그 신인 계약 시기가 2021년 1월까지인 상황에서 도중에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점에 모험을 걸었다.
“지명 전에는 선수와의 접촉이 불가능했지만 지명 후 선수와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진정성과 신뢰를 갖고 접근했다. 아버지가 구단을 믿고 자식을 맡길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사람들은 내가 시카고 컵스에서 스카우트로 일하며 선수들의 성공과 실패를 가까이서 지켜봤기 때문에 그런 점을 내세워 나승엽을 설득했으리라고 보지만 나로선 미국 가면 실패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건 내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에 진출할 경우 장점도 있겠지만 한국에 남는다면 롯데가 어떤 부분을 해줄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그 과정에 이석환 대표님이 나승엽한테 추석 선물과 문자도 보내고 스카우트 팀이 서울에 상주하면서 지속적으로 승엽이 아버지를 만났다. 신뢰를 얻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돈이라고 생각하지만 돈을 제시하기 전까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신뢰다.”
모든 작업의 마침표는 계약서 도장이다. 성 단장으로선 그 도장을 찍고 계약을 마무리하기 전까지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꼭 우리 팀이랑 계약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최대한 기다리겠다, 더 고민해 보고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내려달라고 말했다. 그런 진심이 선수와 아버지한테 전달된 것 같다.”
성 단장은 나승엽과의 계약을 마무리하고 전체 1번 지명자인 손성빈(계약금 1억 5000만 원)한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성빈이 입장에서는 승엽이보다 앞 순위에 지명됐는데 스포트라이트가 승엽이한테 쏠리고, 계약금 액수에서도 차이가 있다면 기분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문자를 보냈다. 성빈이가 의젓한 게 그런 상황에서도 괜찮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하더라. 프로에서 성공하고 싶은 동기부여 말이다.”
성민규 단장은 김진욱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했다. 사진은 중학생 시절 대통령배 대회 우승 이후 부자의 기념사진. 사진=김진욱 아버지 제공
성 단장은 이번 드래프트 전략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었다고 말한다. 김진욱, 손성빈, 나승엽 외에 다른 지명 선수들 중에는 전 시즌 부상을 입었거나 ‘입스’로 힘든 시간을 보낸 선수들도 포함되었다. 성적과 커리어를 봤을 때 리스크가 큰 선수들이었지만 그걸 감수하고 지명을 강행했다고 한다.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시카고 컵스를 이끄는 테오 앱스타인한테 배운 건 남들하고 똑같은 시각으로 엇비슷한 선수를 뽑는다면 결국 엇비슷한 기량을 가진 선수들로만 팀을 구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뭔가 다르게 접근해야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데 KBO리그는 선수 풀이 작고, 드래프트도 10라운드밖에 진행되지 않아 변수가 적은 편이라 뚜렷한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부분 때문에 2차 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나승엽을 지명했는지도 모른다. 결국에는 그게 좋은 선택이 됐지만 말이다.”
결국 1라운드급 선수 고교 유망주 3명과 모두 계약에 성공한 성 단장은 “이 3명의 선수들을 한 드래프트에서 다 얻었다는 부분이 뜻깊었다. 이들 중에는 프랜차이즈 스타로 성장할 만한 선수들도 있어 구단한테도 매우 중요한 계약이었다”라고 만족했다.
성 단장은 키움 히어로즈가 장재영에게 9억 원의 계약금을 지급한 것과 관련해서 다른 팀 상황이 지명 선수 계약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선수들 계약은 모두 별개의 사항이다. 지명 선수대로, 실력 차이만큼, 야수보다는 투수가 더 계약금을 많이 받는다는 룰은 없다. 계약금에는 다양한 요소가 포함된다는 걸 이해해주길 바라고, 선수들을 설득할 때도 그런 부분을 강조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받은 선수라고 해도 프로에서 잘하리란 보장은 없다. 구단은 그런 리스크를 안고 계약하는 것이다. 강팀으로 가는 프로세스의 첫 번째는 좋은 선수를 수급하는 것이다. 지금은 그 부분만 생각하는 게 맞다.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고 좋은 결과가 나온 데 대해 만족한다.”
#3인방의 향후 계획은?
아직 고교 졸업 전이지만 프로팀과 계약을 맺은 만큼 신인 선수들은 겨울 동안 롯데에 합류해 훈련을 이어갈 예정이다. 성 단장은 그중 나승엽을 질롱코리아에 보내 호주에서 외국 선수들과 상대할 기회를 주고 싶어 한다.
“승엽이의 원래 꿈이 메이저리그 진출이지 않았나. 호주리그는 또 다른 차원이지만 겨울 동안 따뜻한 날씨에서 경기 뛰며 미리 프로를 경험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김진욱은 고교 시절 많은 공을 던지며 마운드에서 희생을 감수했다. 가급적 부상 없이 프로에 데뷔할 수 있도록 최대한 관리해주려고 한다. 손성빈은 인성이 훌륭한 선수다. 포수 육성은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렵다. 내년, 내후년보다는 5년 뒤 롯데의 주전 포수가 되는 그림을 그리고 잘 육성해 나갈 예정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