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일 15년차 스타일리스트이자 에디터 A 씨가 여자 연예인에게 ‘갑질’을 당했다고 폭로한 뒤, 걸그룹 레드벨벳의 멤버 아이린이 이를 인정하며 공식 사과한 것에 대한 업계의 반응이다. 아이린의 인성 문제가 드디어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의미는 아니다. 업계에 만연해 있지만 묵인되고 있던 몇몇 스타들의 고질적인 갑질이 공론화됐다는 의미다.
실제로 폭언과 인신공격을 비롯한 스타들의 갑질에 상처 입은 업계 관계자들은 적지 않았다. 물론 일을 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하기 때문에 타박을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상식선에 비추어 보더라도 도가 지나친 갑질과 견딜 수 없는 모욕을 주는 경우가 잦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연예인은 이미지로 먹고 산다. 그렇기 때문에 갑질 논란 하나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스타들은 갑질을 서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아이린이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의 레드벨벳. 사진=일요신문DB
#왜 스타들은 갑질을 할까
분명히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 모든 연예인이 갑질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주변의 시선이 무서워 부당한 일을 당해도 ‘을질’을 감내하는 이들도 있다. 잘못된 일에 대해 정당하게 문제제기를 했으나 상대방이 갑질로 비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런 사례들을 뒤로하고, 오롯이 갑질을 하는 연예인에 한정해 이야기를 풀려 한다.
“신인이 갑질을 했다”는 경우를 들어본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인기를 얻기 전에는 ‘갑’의 위치에 설 수도 없고, 혹시 갑질을 하려 해도 받아주는 이가 없다. 결국 갑이 돼야 갑질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 맥락에서 스타는 갑이다. 드라마를 기준으로 할 때 회당 출연료가 1억 원을 호가하고, 그들이 참여하는 영화나 드라마 한 편에 수백억 원이 투입된다. 그들의 역량에 따라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지만 ‘쪽박’을 찰 수도 있다. 결국 그들을 향한 맞춤형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스타들은 부지불식간 요구가 많아지고, 목소리도 커진다.
여론과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극도로 예민해지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스타는 외식이나 산책 등 최소한의 자유를 누리기도 힘들다. 최적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항상 관리해야 하고, 쪽잠을 자며 일해야 하기 때문에 식욕이나 수면욕 등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억제된다. 이성을 만나는 것이 스캔들로 비화돼 인기가 하락할 수 있기 때문에 성욕조차 제한받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스타의 삶은 ‘빛 좋은 개살구’일 때가 많다. 아무리 인기와 돈이 많아도, 이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항상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더욱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하곤 한다”고 말했다.
스타들의 갑질을 받아주는 환경 역시 그들을 더욱 날카롭게 만든다. 그들의 무리하고 무례한 요구나 언행에 대해 처음부터 누군가 제지하고 나선다면 더욱 안하무인으로 변해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그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소속사를 비롯해 주변 스태프들은 최대한 비위를 맞추려 한다. 그러는 사이, “아! 이렇게 행동해도 되는구나”라는 자기합리화가 돋아난다.
하지만 간과한 게 있다. 스타 중에서도 충분히 주변을 배려하고 갑질을 최소화하는 이들도 있다. 스타가 날카롭게 굴고, 갑질을 해도 된다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결국은 성향이 좋지 않은 스타 몇 명이 전체 분위기를 흐린다고 보는 것이 옳다”며 “두 스타가 함께 일을 할 때도 한 명이 유난하게 굴면 다른 쪽도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룹 내에서도 물의를 일으킨 멤버 몇몇 때문에 그룹 전체가 피해를 보고 도매금으로 묶여 비난을 받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꼬집었다.
10월 21일 15년차 스타일리스트이자 에디터 A 씨가 여자 연예인에게 ‘갑질’을 당했다고 폭로한 뒤, 걸그룹 레드벨벳의 멤버 아이린이 이를 인정하며 공식 사과했다. 사진=아이린 인스타그램 캡처
A 씨는 21일 올린 글에서 “오늘 ‘을’의 위치에서 한 사람에게 철저하게 밟히고 당하는 경험을 했다”면서 “15년을 이 바닥에서 별의별 인간들을 경험하고는 인생사에 무릎을 꿇었다고 생각했고 이제 거의 내려놓았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낯선 방에서의 지옥 같은 20여 분이었다”라고 토로했다. A 씨가 아이린에게 갑질을 당하자마자 폭로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A 씨는 앞서 올린 글에서는 아이린에 대해 칭찬하기도 했다. 결국 A 씨가 업계에 발을 들이고 숱한 굴욕을 당한 지 15년 만에 용기를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참고 또 참는 스태프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참을까. 첫 번째 이유는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이라 할 수 있다. 스타의 이미지가 망가지면 해당 스타만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소속사를 비롯해 그를 둘러싼 모든 콘텐츠가 망가진다. 실제로 출연 배우가 불미스러운 일에 휩싸이며 100억 원가량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의 개봉이 불투명해지거나, 수십억 원을 들여 송출 중이던 CF가 중단 사태를 빚기도 한다. 결국 그 스타의 몰락으로 인해 애먼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여러 스타를 보유하고 있는 연예기획사 대표는 “스타는 제품이 아니라 사람이다. 제품이야 하자가 있으면 사과한 뒤 제대로 만들면 되지만 스타는 이미지가 깨지면 복구가 어렵다. 결국 그를 기용했던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된다”며 “쇼비즈니스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이치를 알기 때문에 잘못 없는 피해자가 다량 발생하는 것을 막으려 ‘내가 참고 말지’라고 생각하곤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업계에 남기 위해서’다. K팝과 K드라마 등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한국 쇼비즈니스 업계는 꽤 커 보이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상당히 작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고, 끊임없이 얽히고설킨다.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내부 고발자가 되면 업계를 떠나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어떤 현장이나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며 이끌어 가는데 외부에 이런 상황을 알리는 내부 고발자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 업계에서 롱런하기 위해 암묵적인 침묵을 요구받고 있는 셈이다.
한 중견 스타일리스트는 “A 씨의 용기 있는 고백을 응원하는 이면에는 A 씨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번 일로 인해 아이린과 그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공식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향후 SM엔터테인먼트가 A 씨와 일하길 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A 씨가 이런 불이익을 받지 않고, 내부고발자가 아닌 용기를 갖고 목소리를 낸 사람으로 응원으로 격려를 받아야 향후 스타의 갑질이 근절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