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홍콩판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며 ‘하나의 중국’을 향한 의지를 확고히 했다. 그 가운데 중국 내 56개 소수민족 역시 중화민족이라는 간판 아래 통합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중국 내 소수민족 자치구에선 소수민족 자체 언어 교육 과정이 대폭 축소된 것으로 전해졌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주도 옌지의 거리. 사진=연합뉴스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다. 주류를 이루는 민족은 한족이다. 한족이 중국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조사 기준 약 92% 규모로 12억 8000만 명가량이다. 중국 인구가 14억 명 규모인 것을 감안하면, 압도적인 비중이다. 소수민족 인구는 1억 2000만 명이다. 장족, 회족, 만주족, 위구르족이 인구 1000만 명을 넘기는 소수민족 그룹이다. 내몽고 자치구를 기반으로 하는 몽고족과 연변 자치주를 기반으로 하는 조선족은 점차 인구가 줄고 있다.
1982년 제정된 중국 헌법 제4조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각 민족은 일률로 평등하며 어떤 민족에 대한 기시와 압박을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족을 제외한 소수민족들의 민족 정체성을 국가가 부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중국 중앙정부의 소수민족 존중 기조는 2010년대 들어 다른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이른바 ‘중화민족 한 가정 꾸리기’ 프로젝트가 가동되면서부터다. 여기서 언급된 중화민족은 기존에 없던 개념이다. 2012년 등장한 이 개념은 중국에 거주하는 모든 민족을 ‘중화민족’이란 한 지붕 아래 두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일종의 민족 통합 프로세스인 셈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들의 언어 교육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4년 중앙민족공작회의에서 “소수민족 지역 학교가 중국어와 고유 언어를 잘 구사하도록 가르치면 취업은 물론 과학과 문화 지식을 흡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이런 교육 방침은) 사회 통합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중언어 교육을 강조한 셈이다.
소수민족 내부 커뮤니티에선 중국 정부 차원의 이중언어 교육방침이 새로운 민족말살정책이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명분만 이중언어 교육일 뿐, 실질적으론 중국어 교육 비중을 늘리고 소수민족 고유 언어를 제2외국어 수준으로 가르친다는 이유다. 중국은 그간 ‘민족학교’라는 교육 기관을 둬 소수민족 언어로 교육을 진행했다. 중국 정부의 최근 방침은 민족학교의 의미를 상당히 퇴색하게 했다는 것이 복수 중국 소식통의 전언이다.
중국 정부의 ‘강제 중국어 수업’ 방침을 규탄하는 네이멍구 자치구 몽고족들. 사진=연합뉴스
네이멍구 자치구를 기반으로 한 몽고족은 2020년 9월 중국 정부의 민족 정체성 말살 정책에 대해 거세게 반발했다. 중국 내 몽고족의 반발은 9월 7일 미국 백악관 청원에도 등장했다. 해당 청원은 “2020년 9월부터 중국 정부가 네이멍구 자치구 초등학교 교육 언어를 몽고어에서 중국어로 강제로 바꾸려 시도하고 있다”면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모국어를 지키려 행동했지만 정부와 경찰이 이를 막았다”고 주장했다. 청원자는 “중국 정부가 중국 헌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소수민족 정체성을 약화하려는 중국 정부의 방침은 몽고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중국 전역의 소수민족이 똑같은 상황에 놓여있다. ‘조선어’를 모국어로 삼는 조선족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 정부의 정책 변화에 조선족 커뮤니티 내부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9월 5일 조선족 온라인 커뮤니티엔 ‘살구나무’라는 필명을 가진 조선족의 글이 올라왔다. ‘살구나무’는 “중국 중앙교육부 지시에 따라 20201년부터 연변 조선족 중·소학교에서 조선어문과를 취소하고 일률로 중국어문으로 입시를 대체하며 학교에서 수업도 원래 조선어로 가르치던 것을 전부 중국어로 가르쳐야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고 했다. 이어 그는 “중국 정부가 헌법 규정을 어기면서 민족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면서 중국 정부의 교육 정책을 20세기 초 일본이 했던 창씨개명과 민족말살정책에 비유했다.
중국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조선족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민족 정체성 훼손에 대한 우려와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내 지식인 계층이라 불리는 동포 김 아무개 씨는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중국 정부의 교육 정책을 “아주 고약하다”고 표현했다. 김 씨는 “일부 소수민족들이 ‘독립’을 목표로 들고 일어나니, 이런 움직임을 사전봉쇄하려 준비했던 교육 정책을 풀고 있는 것”이라고 중국 정부의 정책을 분석했다. 김 씨는 “다른 소수민족들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데, 몽고족만 잠시 발끈하다 잠잠해졌다”고 덧붙였다.
이번 중국 정부 조치는 연변 조선족자치구 서민 계층 조선족들의 불만까지 고조시킬 정도로 직접적이라는 후문이다. 연변에 거주하는 서민 계층 동포 이 아무개 씨는 “중국 정부의 교육 정책 변화는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면서 “그간 중국 정부가 인정해왔던 조선족의 정체성을 완전히 훼손하려는 불합리한 조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정부 정책에 조선족 내부 민심이 동요하고 있지만, 조선족들이 한국이나 북한 정부에 기대하는 부분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한 실정이다. 중국 소식통은 “조선족들이 같은 민족 정체성을 공유하는 국가인 한국이나 북한 정부에 손을 내미는 것 역시 쉽지 않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조선족을 신경 쓸 여력조차 없는 정부다. 애초에 기대 자체가 덜한 편이다. 그렇다고 한국 정부에 손 내밀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조선족들은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이면서 중국 정부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고 본다. 조선족들이 가지고 있는 민족 정체성이 한국과 사뭇 다르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조선족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중국 해방전쟁과 항미원조(한국전쟁 당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피를 흘렸다고 인식하는 편이다. 한국 정부와는 노선 자체가 다른 셈이다. 여기다 조선족이 손을 뻗는다고, 한국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란 확신도 없다.”
2019년 베이징에서 회담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 사진=청와대 제공
또 다른 동포는 “조선족이 이미 사라지는 과정에 놓여 있다”고 했다. 이 조선족은 “나는 조선어를 잘 구사하지만 자식 세대에선 그렇지 않다”면서 “이뿐 아니라 자식 세대에서 조선족들이 한족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조선족의 민족 정체성은 점차 흐려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여담으로 집에서 키우던 반려견도 이제 중국어를 하지 않으면 못 알아들을 정도”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 지린성 소재 대학 교수는 “중국 정부는 조선족을 한중 교류에 적극 이용하고 있다”면서 “동시에 조선족들의 한족화도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기점으로 중국 경제가 호황기에 접어들면서, 더 이상 조선족 젊은층들이 ‘민족 정체성’에 집착하지 않게 됐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1980년대 이후에 출생한 조선족들의 경우 한족 주류 사회에 편입해야 한다는 열망이 생겼다. 197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민족학교에 진학한 비중이 높았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엔 조선족이 민족학교가 아닌 한족학교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조선족이 한족과 결혼해 다음 세대에서 ‘민족세탁’을 하는 상황도 빈번해졌다. 조선족 청년층이 본인들이 중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면서 중국 내 이너서클에 편입하려는 의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에 기성세대에서는 조선족의 민족 색채가 옅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는 “조선족 사이에서도 결속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큰 이견이 없는 상황”이라면서 “2020년 조선족은 명맥은 남아 있으나 빠르게 한족 중심 사회에 편입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