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8일 포항 스틸러스와 울산 현대의 2020 K리그1 25라운드 경기가 열린 포항 스틸야드에 포항 팬들이 내건 걸개 내용이다. 포항 베테랑 수비수 김광석의 요청에 따라 걸개는 곧 내려갔지만 울산의 아픈 곳을 날카롭게 찌르는 문구였다. 울산은 지난 수년간 K리그에 공격적인 투자를 해왔다. 지속적인 선수 영입으로 이근호, 김인성, 신진호, 박주호, 김태환 등에 이번 시즌 이청용, 윤빛가람, 조현우, 홍철까지 합류했다. 우승만 바라보고 달려왔지만 포항 팬들의 말대로 또 다시 실패의 쓴맛을 볼 위기에 놓였다.
울산이 우승 경쟁자 전북과 맞대결에서 패하며 우승 레이스에 빨간 불이 켜졌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3개월 넘게 지키던 1위 자리 내준 울산
2020시즌을 1경기 남겨두고 있는 시점, 울산은 자력 우승이 어려워진 상황. 포항 팬들의 걸개대로 지난 시즌에 이어 또 다시 2위에 머물 위기에 처했다.
이번 시즌만큼은 꿈에도 그리던 우승이 손에 잡히는 듯했다. 지난 7월 12일 리그 1위에 오른 울산은 2위 전북 현대와 맞대결이 펼쳐지기 전인 지난 10월 24일까지 3개월 넘게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1, 2위 자리가 뒤바뀌던 지난 시즌과 달랐다.
18일 포항전이 열리기 전까지 승점에도 여유가 있었다. 2위 전북과 승점 3점 차를 벌리며 앞서나가고 있었다. 승점이 같을 경우 다득점을 우선시하는 K리그 특성상 승점이 같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당시 전북에 10골 이상 다득점에서 앞서가던 울산이었다.
하지만 25, 26라운드 2경기를 치른 현재, 울산은 2위로 내려앉았다. 치욕적인 걸개를 내건 포항에서 0-4 대패를 당했다. 전북과 승점이 같아진 상황에서 맞대결 ‘현대가 더비’가 펼쳐졌고 또 다시 패배하며 순위가 역전됐다.
#전북·포항만 만나면…
이번 시즌 울산은 26경기에서 4패(16승 6무 4패)만 했다. 우승레이스를 펼치는 팀 입장에서 뛰어난 성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4패 중 3패를 전북과 일전에서 당했다. 올 시즌 리그 전북과 3경기에서 모두 패배한 것이다.
사실상 우승 여부가 달린 지난 25일 경기에서 울산은 전반 막판 이청용의 골 찬스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장면을 만들지 못했다. 상대 골대를 2회 강타하는 장면이 있었지만 모두 세트피스 상황이었다. 되레 전북이 페널티킥 득점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일찌감치 승부가 결정될 수도 있었다.
앞서 열린 ‘현대가 더비’ 2경기에서도 울산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시즌 첫 맞대결(0-2 울산 패배)에서는 울산 수비수 김기희가 경기 초반 퇴장을 당하며 경기가 기울어졌다. 두 번째 경기에서 울산은 수비 숫자를 늘리는 선택을 했지만 2골을 먼저 내줬고 경기 막판에서야 페널티킥으로 한 골을 따라갔다. 3번의 맞대결에서 단 1승이라도 거뒀다면 현재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다. 올 시즌 리그에서 열린 전북전 3경기에서 울산은 필드골을 단 1골도 만들지 못했다.
울산 입장에서는 전북에 당한 3패 외에 1패의 상대가 ‘동해안 더비 라이벌’ 포항이었기에 더욱 뼈아팠다. 인접한 도시를 연고로 하는 포항과는 오랜 기간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왔다. 울산의 주요 길목마다 포항이 발목을 잡아온 역사가 반복됐기에 울산 팬들은 다시 한 번 답답한 가슴을 두드려야 했다.
김병지가 K리그 최초로 골키퍼로서 골을 기록했던 당시에도 울산의 최종 성적은 준우승이었다. 사진=연합뉴스
#‘K리그 최다 준우승’ 울산
울산은 K리그 역사에서 꾸준히 강팀으로 군림해왔다. 2005시즌 당시 ‘K리그 사기유닛’으로 불리던 이천수의 활약에 힘입어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고 2012시즌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김호곤 감독의 ‘철퇴축구’를 앞세워 무패우승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전북과 맞대결서 양팀 유니폼에 새겨진 엠블럼 위에 박힌 별의 개수는 대조적이었다. 우승 횟수를 의미하는 별의 개수가 전북은 7개였던 반면, 울산은 2개에 그쳤다. 우승횟수 2회는 ‘명문’으로 불리기에 아쉽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그 이면에는 울산의 숱한 준우승이 있다. 울산은 K리그 37년 역사에서 준우승만 8번 경험하는 아픔이 있다.
앞서 1988년과 1991년 준우승 횟수를 적립한 울산은 1998년 또 다시 준우승을 경험한다. 당시 리그 이후 4강 플레이오프가 치러지던 시기였고 극적인 과정 끝에 챔피언결정전에 올랐다. 탈락 위기에서 골키퍼인 김병지가 골을 넣었고 승부차기에서 활약으로 결승전에 올랐다. 하지만 1990년대 말 강력함을 자랑하던 수원 삼성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어 2002년과 2003년에는 연속 준우승을 차지했다. ‘레전드’ 유상철, 신인 이천수, 외국인 공격수 도도, 국가대표급 골키퍼 서동명 등이 포진한 강팀 울산이었음에도 2년 연속 2위에 그쳤다. 성남 일화의 존재 때문이었다. 당시 성남은 2001~2003년 3년 연속 K리그를 제패한 ‘역대 최강’으로 꼽히는 팀이었다. 울산으로선 성남의 전성기와 팀의 강력한 시기가 겹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2013시즌에는 트라우마로 남을 만한 준우승을 기록했다. 2012시즌 압도적인 모습으로 아시아 챔피언에 오른 울산은 2013시즌 리그 우승을 노렸다. 리그 최종전을 앞두고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지막 상대는 라이벌 포항, 무승부만 거둬도 승리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90분 내내 상대를 틀어막다 추가시간 5분에 결승골을 내주고 말았다. 승부와 동시에 역전 우승을 차지한 팀 역시 포항이었기에 울산엔 더욱 치명적인 상처로 남았다. 사실상의 결승전이었던 이날 경기 패배는 울산을 다시 한 번 강팀으로 끌어올린 김호곤 감독이 사퇴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19시즌 최종전, 빗속의 패배로 울산은 준우승 횟수를 8회로 늘렸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2019시즌에도 유사한 장면이 반복됐다. 전북과 우승을 놓고 각축을 벌이며 리그 1위를 달리던 울산은 리그 최종전에서 포항을 만났다. 결과는 4-1 참패. 우승을 내준 전북과 승점이 같았고 다득점에서 1점 차로 뒤졌다. 포항과 최종전에서 패배하더라도 2골을 더 넣었다면 우승을 차지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에 실패하며 준우승 횟수를 8회로 늘렸다.
울산의 준우승에는 비슷한 장면들이 반복됐다.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주요 자원들이 퇴장, 경고 누적 등의 징계로 경기에 나설 수 없었다. 또 순위 경쟁에 직결되는 상위권 팀간의 맞대결에서 무릎을 꿇으며 눈물을 흘렸다. 우승 레이스에서 유리한 고지에 있었음에도 쫓기는 듯한 모습으로 평정심을 잃으며 우승을 놓쳤다.
지난 시즌 눈앞에서 우승을 날린 울산은 최종전 직후 열린 연말 시상식에서 MVP 김보경을 배출하며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다. 김보경은 당시 수상 소감과 함께 남긴 말로 큰 울림을 줬다.
“모두가 2등을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울산 선수, 스태프, 팬들은 우리의 2등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올해 정말 잘했지만 마지막 1경기로 실패했다고 모두가 말하고 있다. 나는 올해를 단지 실패로만 생각하면 정말 실패가 되고 올해 얻은 것을 기억하고 내년을 기억한다면 울산은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