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정 법무법인 강한의 대표 변호사는 “ISD 소송으로 간다면 개설허가 취소가 핵심 쟁점이 아니라 녹지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금지한 제주도 처분의 적법성이 핵심 쟁점”이라고 설명했다. 남기정 변호사는 현재 보건복지부 현지조사선정심의위원, 사회보장위원회 제도개선특별위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문변호사로 보건·의료 소송 전문 변호사다.
남기정 법무법인 강한의 대표 변호사는 국내 1호 영리병원인 제주 녹지국제병원을 둘러싼 논쟁과 관련해 “ISD 소송으로 간다면 개설허가 취소가 핵심 쟁점이 아니라 녹지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금지한 제주도 처분의 적법성이 핵심 쟁점”이라고 설명했다. 남기정 변호사는 현재 보건복지부 현지조사선정심의위원, 사회보장위원회 제도개선특별위원, 건강보험시사평가원 자문변호사로 보건·의료 소송 전문 변호사다. 사진=임준선 기자
사건의 시작은 2006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제주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외국인이 설립한 법인은 도지사의 허가를 받아 제주도에 외국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게 됐다. 외국의료기관 개설에 필요한 사항은 도 조례인 ‘제주특별자치도 보건의료 특례 등에 관한 조례’(제주특별조례)에 따라 정하기로 했다.
중국 녹지그룹은 2012년부터 제주도의 영리병원 건립에 관심을 내비치다가 2015년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15년 12월 18일 보건복지부에 영리병원 건립 사업계획을 승인받았고, 2017년 7월 28일 녹지병원 건물을 준공했다. 녹지그룹은 2017년 8월 28일 제주도에 개설허가를 신청했지만, 이때 시민사회의 완강한 반발에 부딪힌다. 영리병원을 한번 허용하면 점차 전국에 번지게 되고, 의료의 공공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여기서 영리병원은 기업이나 민간 투자자의 자본으로 세워진 병원을 말한다. 수익을 투자자에게 다시 돌려주는 주식회사 형태의 병원이다. 국민건강보험과 의료급여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제주도는 녹지병원 개설허가를 미루고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를 구성한 뒤 도민 토론회를 거쳤다. 공론조사위원회는 녹지병원 개설 ‘불허’ 권고를 결정했다. 깊은 고민 끝에 제주도는 2018년 12월 5일 ‘내국인 진료 금지’를 조건부로 녹지병원에 개설허가를 내줬다. 제주도 입장에선 타협점을 찾은 셈이다.
남기정 변호사는 “외국의료기관 개설 근거가 제주특별법이기 때문에 특별법에서 내국인 진료 금지하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면 이 같은 제한이 가능하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지금 특별법과 도 조례엔 내국인 진료를 금지하는 조항을 찾기 어렵다”고 전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녹지제주가 녹지병원을 개원하지 않고 버티자 제주도는 이 틈을 노려 2019년 4월 17일 녹지병원 개설허가를 취소했다. 의료법 64조 1항은 개설 허가를 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를 시작하지 않으면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근 제주지법이 녹지제주가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 취소처분 취소소송’에서 취소처분이 적법했다고 판단한 것도 이 부분이 근거가 됐다.
남기정 변호사는 “사실 이번 제주지법의 판결은 명백했다. 허가 난 뒤 3개월 이내에 업무를 하지 않으면 허가 취소할 수 있다고 의료법에 명백하게 나와 있기 때문이다. 법에 나온 ‘정당한 사유’는 녹지제주가 증명할 일로 남겨둘 수 있기 때문”이라며 “문제가 되는 건 ‘내국인 진료 금지’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남 변호사는 “의료기관이 조건부로 환자 진료를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내국인 진료 금지 조건이 의료법 위반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외국의료기관 개설 근거가 제주특별법이기 때문에 특별법에서 내국인 진료 금지하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면 이 같은 제한이 가능하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지금 특별법과 도 조례엔 내국인 진료를 금지하는 조항을 찾기 어렵다. 이번 제주지법 재판부가 ‘개설허가 조건 취소 건’에 대한 판단은 미룬 것도 그런 사정으로 읽힌다”고 전했다.
제주지법 재판부는 녹지제주가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달아 녹지병원 개원을 허가한 것은 부당하다며 도에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조건 취소 청구 소송’에 대해서는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 취소처분 취소소송’에 대한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선고를 연기하기로 했다.
국내 1호 영리병원인 제주의 녹지국제병원 전경. 제주지방법원 행정1부는 10월 20일 녹지병원 개설허가를 취소한 제주도의 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녹지병원을 소유하고 있는 중국 녹지그룹의 자회사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녹지제주)는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사진=연합뉴스
남기정 변호사는 “제주도 차원에서 도 조례를 제정한 뒤 내국인 진료 금지 조항을 넣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상위 위임입법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 될 수 있다. 제주특별법에서 위임받은 권한 밖의 일을 할 순 없는 것”이라며 “영리병원 허가에 내국인 진료 금지 조건이 꼭 필요하다면 중앙정부나 국회가 나서서 제주특별법을 개정함으로써 제주도의 정치적 부담을 줄여줄 필요도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남기정 변호사는 국내 1호 영리병원인 녹지병원 건립 찬반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는 튼튼한 건강보험제도를 마련했다. 영리병원이 들어선다고 해서 무너지지 않을 공공성을 획득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며 “물론 베블런효과라고 할까, 더 비싼 돈을 내면 더 좋은 의료라고 착각하는 현상으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도 있지만, 더 좋은 의료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니즈를 충족해줄 필요도 있지 않느냐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남 변호사는 “다만 현재 우리나라에선 병원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정한 수가에 맞게 가격을 책정한다.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영리병원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 아닌 합리적인 가격 선을 지킬 수 있게 하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는 있다. 또 국민들의 의료서비스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중앙정부가 공공의료체계를 확충하는 것도 당연히 필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