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한, 김순옥 작가는 집필하는 드라마마다 논란과 화제를 몰고 다닌 동시에 시청률 면에서도 빠짐없이 성공했다. ‘욕하면서 본다’라는 안방극장 오랜 통념을 몸소 증명하면서 작품성과는 별개로 매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실력자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임 작가는 드라마 집필 중단을 선언한 지 5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온다. 어떤 식으로든 작품 스타일의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김 작가 역시 지난해 방송한 ‘황후의 품격’을 통해 처음 판타지 장르에 도전했던 만큼 변화가 지속될지 관심을 끌고 있다.
먼저 방송을 시작한 김순옥 작가의 SBS 월화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출발부터 예사롭지 않다. 10월 26일 첫 방송 시청률 9.2(닐슨코리아), 2회 시청률 10.2%를 각각 기록했다. 사진=‘펜트하우스’ 공식 포스터
먼저 방송을 시작한 김순옥 작가의 SBS 월화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출발부터 예사롭지 않다. 10월 26일 첫 방송 시청률 9.2(닐슨코리아), 2회 시청률 10.2%를 각각 기록했다. 평일 밤 10시 방송인 데다 최근 지상파 미니시리즈의 시청률이 추락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눈에 띄는 수치다. 하지만 시작부터 후폭풍도 거세다.
김순옥 작가는 2008년 시청률 37%를 기록한 장서희 주연의 드라마 ‘아내의 유혹’을 시작으로 2014년 막장 열풍을 다시 일으킨 MBC ‘왔다! 장보리’로 잇단 성공을 거뒀다. 화제와 더불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이야기 전개, 상식이나 통념에서 한참 벗어난 상황 묘사 등 ‘막장 대모’로 오랫동안 군림했다. 다만 지난해 시청률 17.9%를 기록했던 SBS ‘황후의 품격’을 통해 기존 스타일에서 벗어나 판타지 장르에 처음 도전하면서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변화인가, 기존 스타일의 유지인가를 두고 시선을 끌었던 김순옥 작가의 신작은 더욱 짙은 막장의 향기를 풍긴다. 최대 장기로 회귀, 시청자의 비판을 예상하면서도 어떻게든 화제작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내비친다. 드라마의 배경은 대한민국 상위 1%가 거주한다는 설정의 최고급 펜트하우스. 돈과 명예의 욕망에 휘말린 주인공들이 벌이는 부동산, 교육 전쟁은 물론 부모에서 자녀 세대로 이어지는 예술계 세습, 심지어 이웃 주민들의 불륜까지 자극적인 소재가 총출동한다(관련기사 스캐+부세? 뚜껑 열린 ‘펜트하우스’ 초반 시청률 심상찮다).
인간 군상의 암투를 통해 시대상을 풍자한다는 기획 의도가 무색하게 ‘펜트하우스’는 시작부터 선정성 논란에 오르내리고 있다. 누명을 쓰고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딸을 보호하려는 엄마가 교장의 얼굴을 발로 차는 장면은 ‘평범한’ 수준이다. 극 중 라이벌 관계인 주인공들의 과거 회상 장면은 충격 그 자체다. 악역을 맡은 김소연이 과거 콩쿠르에서 받은 트로피로 라이벌 유진의 목을 ‘긋는’ 다분히 폭력적인 장면까지 반복됐다.
한 소녀가 고층 펜트하우스에서 추락해 피투성이가 된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하고, 방에 가둔 자녀를 폭행하는 부모 등 묘사가 쉴 새 없이 펼쳐진다.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묘사로 인해 현재 드라마 시청 등급인 ‘15세 관람가’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청소년의 모방 범죄 심리를 자극한다”는 우려와 함께 시청 등급을 ‘19세 이상’으로 조정해달라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한쪽에선 아직 극 초반인 만큼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논란과 무관하게 고무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사실은 “드라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그만큼 높다는 것 아니겠나”라는 의견도 있다. 특히 출연 배우들이 김순옥 작가에 갖는 신뢰가 두텁다. 극의 중심인 주연배우 이지아는 “대본을 읽는데 다음 회가 궁금해 견딜 수 없는 기분을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매번 예측을 빗겨가는 흥미로운 대본”이라고 만족을 표했다. 또 다른 주연배우 봉태규는 “김순옥 작가의 세계는 전형적이고 뻔할 수 있는 부분까지 다르게 그린다”고 밝혔다.
#과연 임성한은? 연말 최대 화제작 ‘관심’
임성한 작가는 연말 안방극장의 최대 관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멀쩡한 사람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고, 등장인물들이 느닷없이 급사하고, 심지어 암에 걸린 주인공이 “암세포도 생명이다”라는 황당한 대사를 내뱉는 드라마를 통해 ‘막장’을 상징해온 그가 절필 선언 후 5년 만에 돌아오기 때문이다. 12월 TV조선에서 토일 드라마로 방송하는 ‘결혼작사, 이혼작곡’이 복귀작이다.
독창적인 세계관, 시청자를 빠져들게 하는 흡입력으로 국내 드라마를 대표하는 스타 작가로 꼽힌 임성한 작가는 2015년 MBC 드라마 ‘압구정 백야’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방송가에서는 그를 향해 쏟아지는 온갖 비판과 비난에 휴식기가 필요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드라마 절필 이후 건강관리 소재의 책을 집필하는 등 드라마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던 그는 이번 ‘결혼작사, 이혼작곡’에서 30대와 40대, 50대의 세 여성이 불행을 딛고 진실한 사랑을 찾는 이야기를 그린다.
2015년 MBC 드라마 ‘압구정 백야’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던 임성한 작가가 ‘Phoebe’라는 예명으로 TV조선 토일 드라마 ‘결혼작곡, 이혼작사’를 집필한다. 사진은 ‘압구정 백야’ 대본리딩 당시 모습. 사진=MBC ‘압구정 백야’ 홈페이지
변화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동안 주로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를 썼던 임성한 작가의 첫 미니시리즈다. 속도감 있는 전개를 예고한 가운데 특유의 장기를 살려 시청자들이 전에 본 적 없는 독창적인 이야기를 펼칠 것이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본명 대신 ‘Phoebe’라는 예명으로 집필에 나선 것에서도 새로운 각오가 느껴진다. 은퇴선언 당시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자신의 이름과 사진, 경력사항까지 전부 삭제했던 그는 잠시 집필을 멈췄을 당시 자연스럽게 쌓였던 아이디어를 모아 이번 드라마에 전부 쏟아 붓고 있다.
‘막장’이란 수식어로 연결되지만 임성한 작가와 김순옥 작가의 차이는 뚜렷하다. 인간의 노골적인 욕망을 통한 인간군상에 집중해온 김 작가와 달리 임 작가는 비록 표현방식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긴 했어도 세상을 살아가는 ‘참된’ 가치관이나 본래 인간이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다뤄왔다. 그동안 임성한 작가와 작업해온 성훈, 이태곤을 비롯해 박주미, 이가령, 이민영 등 새로운 연기자들까지 대거 합류한 이유도 작가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됐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