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철 감독이 KT 구단 최초 재계약 감독으로 남게 됐다. 3년 총액 20억 원이라는 특급대우와 더불어 계약 기간을 1시즌 남겨두고 진행된 재계약이라 눈길을 끌었다. 사진=연합뉴스
이강철 감독은 2년 전인 2018년 10월 KT의 제3대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3년 총액 12억 원에 사인했다. 계약금이 3억 원, 연봉도 매년 3억 원이었다. 그러나 KT는 아직 계약기간을 한 시즌 더 남긴 이 감독과 일찌감치 계약서를 새로 썼다. 포스트시즌을 아직 치르지도 않은 상황이라 더 파격적이다. 이 감독의 지도력을 인정하고, 향후 감독의 리더십에 더 힘을 실어 주겠다는 의미다. 이로써 이 감독은 2023년까지 KT 지휘봉을 잡고 선수단을 이끌게 됐다. 내년 시즌 연봉도 올해보다 2억 원 올랐다. 5억 원은 베테랑인 류중일 LG 트윈스 감독이 올해 받은 금액과 같다.
#KBO 리그를 거쳐 간 구단별 감독은?
지금까지 KBO리그를 거쳐 간 감독은 총 112명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명의 감독이 3~4개 팀을 오가며 지휘봉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 프로야구 감독이 되면, 성적이 좋지 않아 물러난 뒤에도 ‘재취업’이 어렵지 않았다. 감독 2명이 서로 1년 전과 다른 유니폼을 입고 다른 구장에서 재대결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분위기에 급격한 변화가 생겼다. 스타플레이어 출신과 ‘경력자’가 우대받던 감독 후보군은 점점 외국인 사령탑과 백업 선수 출신들까지 넓어졌다. 프로 지도자 경험이 없는 프런트 출신 감독도 연이어 등장했다. 오히려 과거의 대스타들이 은퇴 후 오랜 기간 코치로만 머무는 일이 많아졌다.
2020시즌까지 가장 많은 감독을 배출(?)한 팀은 롯데 자이언츠와 LG 트윈스다. 두 팀은 유독 인기가 폭발적이고 팬들의 입김이 센 데다 오랜 암흑기까지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위권을 맴돌던 시기에 팀을 맡은 감독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연이어 옷을 벗었다. 1~2년이 무섭게 사령탑이 교체돼 ‘감독들의 무덤’이라 불렸다.
롯데는 총 19명의 감독이 거쳐 갔다. 강병철 감독이 제2대, 6대, 10대 감독을 맡아 무려 3차례나 한 팀의 1군 지휘봉을 잡았던 게 눈에 띈다. 양상문 감독도 11대와 18대 감독을 역임했다. 박영길, 강병철, 성기영, 어우홍, 김진영, 강병철, 김용희, 김명성, 우용득, 백인천, 양상문, 강병철, 제리 로이스터, 양승호, 김시진, 이종운, 조원우, 양상문, 허문회 감독 순이다.
LG는 전신 MBC 청룡 시절부터 총 18명의 감독을 사령탑에 앉혔다. 백인천, 김동엽, 어우홍, 김동엽, 유백만, 배성서, 백인천, 이광환, 천보성, 이광은, 김성근, 이광환, 이순철, 김재박, 박종훈, 김기태, 양상문, 류중일 감독이 차례로 지휘봉을 잡았다. LG 역시 백인천, 김동엽, 이광환 감독이 두 번씩 부임한 경력이 있다.
그 다음은 역시 원년 구단인 삼성 라이온즈다. 서영무, 김영덕, 박영길, 정동진, 김성근, 우용득, 백인천, 서정환, 김용희, 김응용, 선동열, 류중일, 김한수, 허삼영 감독까지 총 14명이 삼성 더그아웃을 지켰다. 1985년 빙그레 이글스로 창단한 한화는 11명의 감독이 팀을 이끌었다. 배성서, 김영덕, 강병철, 이희수, 이광환, 유승안, 김인식, 한대화, 김응용, 김성근, 한용덕 감독이다. 11명 중 4명이 2010년 이후에 몰려 있다.
김응용 감독은 과거 해태를 18시즌간 이끌며 ‘장기집권 감독’으로 활약했다. 사진=연합뉴스
두산(전신 OB 포함) 베어스와 KIA(전신 해태 포함) 타이거즈도 원년 구단이지만 감독 수는 롯데와 LG의 절반 정도에 그친다. 두 팀의 화려한 한국시리즈 우승 경력이 그 이유를 말해준다. 야구 잘하는 팀은 감독을 자주 바꿀 이유가 없다. 베어스 감독은 지금까지 총 10명이었다. 김영덕, 김성근, 이광환, 이재우, 윤동균, 김인식, 김경문, 김진욱, 송일수, 김태형 감독 순이다. 특히 2004년부터 올해까지 17시즌 가운데 김경문 감독이 7년 3개월, 김태형 감독이 6년을 책임졌다. KIA는 김동엽, 김응용, 김성한, 유남호, 서정환, 조범현, 선동열, 김기태, 맷 윌리엄스 감독이 거쳐 갔다. 제2대 김응용 감독이 1983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18시즌 동안 장기 집권했다.
2000년 창단한 SK 와이번스는 강병철, 조범현, 김성근, 이만수, 김용희, 트레이 힐만, 염경엽 감독이 역대 사령탑으로 이름을 올렸다. 2008년 시작된 히어로즈 감독의 역사는 이광환, 김시진, 염경엽, 장정석, 손혁 순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장 감독이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하고도 재계약하지 못했고, 올해 부임한 5대 사령탑 손 감독은 팀이 3위를 달리던 시점에 1년도 못 채우고 물러나 야구계가 시끄러웠다. NC 다이노스는 초대 김경문 감독에 이어 2대 이동욱 감독이 현재 팀을 이끌고 있고, KT는 이강철 감독에 앞서 조범현, 김진욱 감독이 몸담았다.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구단의 감독들도 KBO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떠났다. 쌍방울 레이더스는 김인식, 신용균, 한동화, 김성근, 김준환까지 5명의 감독이 지휘했다. 마지막 사령탑인 김준환 감독은 1999년 11월 1일 감독으로 계약했지만, 2000년 3월 31일 구단이 해체돼 한 경기도 치르지 못한 채 물러나야 했다.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로 이어진 20세기 인천 야구의 역사는 박현식, 김진영, 허구연, 강태정, 김성근, 박영길, 정동진, 김재박, 김시진 감독이 이어나갔다. 김재박 감독은 1996~2006년 11년 동안 현대 사령탑을 지켰다.
#감독의 재계약, 생각보다 어렵다
감독 수는 이렇게 많지만, 계약 기간이 끝난 뒤 같은 팀에서 재계약에 성공한 감독의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역사에 비해 감독 수가 적은 두산에서도 김성근, 김인식, 김경문, 김태형 감독만 가능했던 일이다. 김태형 감독은 두 번째 재계약을 앞둔 지난 시즌에 극적인 역전으로 통합 우승을 달성하는 성과를 내면서 3년 총액 28억 원(계약금 7억 원, 연봉 7억 원)의 초대박을 쳤다. 역대 감독 최고 몸값 기록이다. KIA에선 1980~1990년대를 지배한 김응용 감독 외에 김성한, 선동열, 김기태 감독이 두 번 이상 구단의 선택을 받았다. 선 감독은 2014시즌을 마치고 KIA와 재계약했지만, 팬들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가족까지 스트레스를 받자 계약서 사인 일주일 만에 자진 사퇴하는 초유의 사례를 남기기도 했다.
‘왕조’를 구축했던 삼성 감독들 중엔 역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김응용, 선동열, 류중일 감독이 연임 이력을 남겼다. 선 감독은 2009시즌을 앞두고 무려 5년의 장기 계약을 하면서 총액 27억 원(계약금 8억 원, 연봉 5년간 19억 원)을 받기로 했지만, 2010시즌 한국시리즈에서 패한 뒤 계약기간 3년을 남기고 용퇴했다. 류 감독은 통합 3연패를 일군 뒤 2014년부터 3년간 총액 21억 원에 재계약했다. 2014년 역시 통합 우승을 했고, 2015년에도 정규시즌 우승과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2016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삼성은 재계약을 포기했다.
롯데 출신 감독들 중엔 강병철, 김용희, 김명성, 조원우 감독이 임기를 연장했다. 조 감독은 2016년부터 2년간 팀을 이끈 뒤 올해까지 3년 더 지휘봉을 잡기로 했지만, 재계약 첫 시즌인 2018시즌을 마치고 성적 부진으로 물러났다. SK에서는 유일하게 2000년대 후반 전성기를 이끈 김성근 감독만 재계약했다. 김 감독은 2007년 SK 제3대 감독으로 부임한 뒤 2009년 3년 총액 20억 원(계약금 5억 원, 연봉 5억 원)에 사인했다.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힐만 감독은 구단이 재계약을 제안했지만, 부친의 건강 문제를 이유로 고사했다.
한화는 김영덕 감독과 김인식 감독만 한 차례씩 재계약했다. 대신 감독을 조기 경질하지 않는 ‘의리’의 문화로도 유명하다. 1~2년 만에 팀을 그만둔 단기 감독이 1명도 없었다. 김응용 감독도 재임 3년간 팀이 줄곧 최하위권에 머물렀지만, 계약 기간을 다 채우고 떠났다. 반면 감독이 자주 바뀐 LG는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한 감독이 수두룩하다. 1990년대 ‘신바람 야구’를 일군 이광환 감독과 천보성 감독만 재계약 사령탑으로 남아 있다. 다만 올 시즌 후 계약이 만료되는 류중일 감독과는 구단 역대 세 번째 감독 재계약이 유력해 보인다.
NC는 초대 김경문 감독과 두 차례 재계약을 통해 ‘계약 기간이 남은 사령탑과 미리 계약을 갱신하는’ 유행을 선도했다. 현재 지휘봉을 잡고 있는 이동욱 감독도 지난해 2년 계약을 하고 사령탑에 앉았다가 첫 해 5강에 복귀하자 다시 올해부터 2년간 몸값을 올려 재계약했다. 올해 NC가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 또 한 번 ‘계약 갱신’을 할 수도 있다.
KT는 그동안 유일하게 감독 재계약 역사가 없는 구단이었다. 초대 조범현 감독과 2대 김진욱 감독이 모두 계약 기간을 채운 뒤 연임 없이 물러났다. 이강철 감독이 마침내 포스트시즌 진출의 한을 풀면서 최초의 KT ‘재계약 감독’으로 기록됐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