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평양 만수대의사당을 방문한 김홍걸 무소속 의원(당시 민화협 상임의장)과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김홍걸 의원 블로그
전말은 이랬다. 2018년 7월 30일 인천국제공항공사는 ‘4단계 북측원격계류장 항공등화 시설공사’ 입찰을 공고했다. 항공등화는 야간 또는 계기 비행상태 항공기의 항행안전을 위한 등화로 항공기 이착륙을 돕는 보안시설을 총칭한다. 이 공사는 활주로에 설치된 램프를 시공하는 사업이다.
인국공은 2018년 10월 10일 입찰 사업자를 결정했다. 철도 인프라 시공 업체인 조일ECS였다. 업계에선 조일ECS가 인국공 발주 사업을 따낸 것을 두고 말이 많았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기업이 150억 규모의 대형 사업을 따낸 까닭이었다.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다른 기업들은 혜성같이 등장한 조일ECS로 인해 고배를 마셨다. 이 과정에서 조일ECS가 입찰 참가 자격에 미달했다는 의혹이 고개를 들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발주한 ‘4단계 북측원격계류장 항공등화 시설공사’ 입찰 공고문에 나온 항공등화 실적인정범위 설치 예시도
“①전력공사(관로 및 케이블설치), ②하부철제홀 및 ③상부철제홀 설치공사(단일철제홀 설치공사도 인정), ④철제홀 내 절연변압기 설치 및 철제홀 상부에 등기구 취부의 공정을 모두 수행한 것을 1개 등으로 인정하며 일부만 시공한 것은 실적으로 인정하지 않음.”
앞서의 업계 관계자는 “결국 인국공이 명시한 입찰 참가자격은 항공등화를 설치할 때 철제홀 공법을 활용하라는 것”이라고 이 내용을 요약했다. 그런데 조일ECS는 이 공법으로 공사를 진행한 경험이 없었다. 조일ECS는 2017년 몽골 울란바토르 신국제공항 항공등화설비 공사 이력을 실적으로 제출했다. 20대 국회 국토위 소속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조일ECS가 시공한 울란바토르 항공등화 설치 공사는 인국공이 언급한 철제홀 공법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조일ECS는 핸드홀 공법을 썼다”면서 “그럼에도 인국공이 조일ECS의 실적을 전면 인정해 준 것이 입찰 의혹이 제기된 배경”이라고 했다. 그는 “실적을 불인정할 경우 조일ECS는 협상 대상에도 들지 못하는 기업”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입찰과 관계없는 한 토목 업계 관계자는 철제홀 공법과 핸드홀 공법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핸드홀 공법은 유지 보수가 편하다. 활주로 속에 램프를 묻는 게 아니라 활주로 옆에 설치하니 유지 보수에 어려움이 없다. 철제홀은 활주로 속에 하부캔을 넣고 그 위에 활주로 포장을 얹은 뒤 거기서 다시 등을 찾아내 상부캔을 연결해야 한다. 공사 자체가 어렵고 높은 기술력을 요한다. 유지 보수가 어려운 만큼 처음부터 고장 안 나게 등을 심게 된다. 철제홀 공법으로 공사만 잘해놓으면 항공등화가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훨씬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다.”
세계 허브 공항을 추진하는 인천국제공항. 사진=박정훈 기자
이 관계자는 “인천국제공항의 경우엔 ‘세계 허브 공항’을 모토로 공항 곳곳에 이런 고급 신기술을 적용해 왔다”면서 “그에 따른 인천국제공항 발주 사업 참여 진입 장벽 또한 높았다”고 했다. 관계자는 “인국공이 조일ECS의 입찰 참여 자격 미달을 눈 감고 넘어가면서 인국공이 추진하는 사업의 격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일ECS가 활용하는 핸드홀 공법은 개발도상국 공항이 ‘뚝딱’ 공사를 진행할 때 활용하는 공법”이라면서 “인국공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2019년 국정감사에서 다뤄진 내용도 바로 이런 부분이었다. 2019년 10월 18일 박덕흠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현재 활주로 등화 공사를 맡은 업체가 불분명한 해외 실적으로 입찰을 수주했다”면서 “국내 건설 진입장벽을 무너뜨리는 편법이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고 입찰 특혜 의혹을 겨냥했다. 인국공이 2019년 국정감사 당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해외 실적만으로 인천국제공항 사업을 수주한 사례는 전무했다.
함진규 전 미래통합당 의원도 “인국공이 A 사(조일ECS)에 대한 항공등화 실적 검토에서 처음엔 863개 가운데 319개 등에 대해서만 공사 실적을 인정해줬다가 A 사 보완 소명을 받은 뒤 863개 등 전부를 실적으로 인정해줬다”고 했다. 함 전 의원은 “입찰 공고에 따르면 철제홀이 있어야 등화공사 실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A 사는 철제홀이 포함되지 않은 공사를 모두 실적으로 인정받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함 의원은 입찰 공고에 포함된 ‘철제홀 공법 예시도’를 들어 올리며 입찰 특혜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입찰 특혜 의혹에 대한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서면 답변 자료 일부.
인국공 측은 “(철제홀 공법 예시도는) 그저 예시도일 뿐”이라며 입찰 특혜 의혹을 부인했다. 이후에도 인국공은 서면 답변 자료를 통해 “조일ECS가 울란바토르 신국제공항에 설치한 항공등화는 별도 전용 핸드홀 내 설치해 공항 운영시 유지보수 편리성을 최우선으로 감안된 설계”라고 했다. 유지보수 편리성이 감안된 설계여서 실적으로 인정했다는 취지의 답변이었다. 그러나 이런 인국공의 답변은 자신들이 공고한 입찰 참가 자격을 자체적으로 부인하는 모양새였다. 업계에선 “인국공이 저렇게까지 방어 논리를 펼치면서 조일ECS의 당위성을 어필할 필요가 있느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이처럼 지난해 국감에서 도마에 올랐던 조일ECS가 최근 정치권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회사 주변에서 동교동계 인사들 이름이 거론되는 이유에서다. 철도·건설 관련 전기 설비 시공 업체인 조일ECS 모회사는 세종텔레콤이다. 세종텔레콤은 2018년 7월 조일ECS 지분 100%를 250억 원에 사들였다.
2018년 7월 쑥섬혁명사적지에서 찍힌 사진. 김한정 의원, 김홍걸 의원, 김형진 세종텔레콤 회장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사진=김홍걸 의원 블로그
조일ECS 지분을 전량 매입하기 열흘 전인 2018년 7월 중순경 김형진 세종텔레콤 회장은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위원회) 후원회장 자격으로 평양에 갔다. 동행자는 동교동계 인사들이었다.
당시 민화협 상임의장이던 김홍걸 의원과 동교동계 김한정 의원이 김 회장과 함께 평양을 다녀왔다. 김홍걸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이며, 김한정 의원은 김대중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지냈다. 둘 모두 동교동계 핵심으로 꼽힌다. 김홍걸 의원 블로그엔 세 인사가 함께 북한 쑥섬혁명사적지를 걸어가고 있는 사진이 게재돼 있다.
당시 정치권 일각에선 ‘이들이 북한 내 인프라 사업에 대한 교감을 나눈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남북협력 사업 일환으로 북한 내부 공공인프라 확충 사업이 진행될 경우 반드시 필요한 사업 중 첫손에 꼽히는 것이 교통과 통신 그리고 전기”라면서 “세종텔레콤의 경우엔 조일ECS 매입을 통해 세 자루 칼을 모두 손에 쥔 격이 됐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인국공이 발주한 입찰을 따낼 경우 기업의 공신력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아진다”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다른 개발도상국 교통 인프라 관련 사업에 참여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북한 역시 비슷한 시장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세종텔레콤 입장에서는 합병시킨 조일ECS가 인천공항에서 실적을 쌓게 됐으니 추후 남북협력 사업 시 공항 관련 사업에도 원활히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 셈”이라고 덧붙였다.
세종텔레콤 측은 11월 4일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남북협력 사업을 염두에 두고 조일ECS를 인수한 것은 전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통신과 전기 부분이 시너지가 되는 부분이 많아 인수를 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세종텔레콤 측은 “(조일ECS의) 전기 쪽 사업은 철도에만 국한되는 사업이 아니다. 항공, 공항 등 전 산업에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인천국제공항 항공등화 사업 입찰 관련 내용에 대해 세종텔레콤 측은 “1년 이상 지난 얘기라 자세한 내용은 알아봐야 한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