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패킹은 주로 차가 다니는 길에서 좀 떨어져 있는 야영지에서 하다 보니 캠핑 장비를 배낭에 넣어 두 어깨로 지고 다녀야 한다. 자차로 출발했더라도 차에서 얼마만큼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느냐, 가는 길의 경사도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백패킹의 난이도가 달라진다.
백패킹(Backpacking)은 1박 이상의 야영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산과 들을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여행을 말한다. 강천섬 백패킹 모습. 사진=이송이 기자
#듬성듬성 미루나무 이국적 정취
숱한 야영지 중 백패커들의 성지라 불리는 여주 강천섬에 다녀왔다. 강천섬은 가을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은행나무길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섬을 가로지르는 은행나무길 사진을 한번 보고 나면 찾아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가을 풍경이 특히 좋은데 듬성듬성 서 있는 미루나무가 이국적인 정취를 풍긴다. 유럽 어느 초원 같은 느낌도 난다. 강천섬은 섬 아닌 섬이다. 남한강 물줄기 속에 살포시 들어가 있는데 한강에 들어앉은 여의도의 모습과 유사하다. 강천섬은 남한강 자전거길이 지나는 곳이라 자전거 종주를 하는 일행이나 자전거를 활용해 캠핑을 즐기는 일명 ‘자캠족’도 흔히 만날 수 있다.
서울에서도 가깝다. 경기도 여주시 남한강변에 위치해 있는데 양평과도 30분 거리로 멀지 않다. 차가 막히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강남이나 송파 쪽에서라면 1시간이면 닿는다. 강변 주차장에 차를 대고 도보이동만 가능한 다리를 통해 걸어 들어가면 바로 강천섬이다. 백패커 난이도로는 하. 주차한 뒤 평지를 15분 정도만 걸어 들어가면 된다. 그래서 배낭을 짊어진 ‘고독한 백패커’도 많지만 가족 단위나 중장년층의 백패커, 반려견을 동반한 백패커도 많다.
길이 잘 닦여있어서 바퀴가 달린 작은 수레에 캠핑용품을 가득 싣고 끌고 가는 풍경도 흔하다. 오토캠핑과 백패킹 사이 그 어디쯤의 캠핑이다. 주차장과 강천섬으로 들고 나는 길이 짧아 필요한 게 생기면 산책하듯 주차장까지 걸어 나가 차를 몰고 나갔다 오기도 수월한 편이다. 다리와 산책길에는 지금 억새가 한창이다. 길이 잘 다듬어져 있어 걷는 맛도 있다.
강천섬 산책길에는 지금 억새가 한창이다. 길이 잘 다듬어져 있어서 걷는 맛도 있다. 사진=이송이 기자
강천섬에 아무리 사람들이 많이 찾아들어도 텐트를 치고 나면 옆 텐트와의 거리는 최소 10~20m가 넘는다. 자연스러운 거리두기가 가능하다. 사람들의 선호 지역인 화장실 근처가 아니라면 반경 30m 내에 아무도 없는 잔디마당에서 텐트를 칠 수도 있다. 강천섬은 그만큼 넓다. 면적이 남이섬의 1.5배다. 강변쪽으로 텐트를 쳐도 좋고 섬 한가운데 너른 초지에 쳐도 좋다. 좋은 자리를 다툴 일도 없다. 텐트 치기 좋은 자리가 널리고 널렸다.
강천섬은 가을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은행나무길로 유명하다. 사진=이송이 기자
그렇다고 강천섬에서의 백패킹이 모두 편리한 것만은 아니다. 아킬레스건이 있다. 넓은 강천섬에 화장실이 달랑 1개밖에 없다. 강천섬은 꽤 넓어서 직선거리로도 끝에서 끝까지 걸으려면 20분은 족히 걸리는데 화장실이 1개밖에 없으니 화장실 앞에 마치 맛집처럼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정식 화장실 옆으로 간이 화장실도 설치되어 있지만 주말이면 화장실 줄이 늘 길다. 화장실 한번 가려면 5~10분 걷고 화장실 줄 기다리고 다시 텐트로 돌아오는 게 만만치 않다. 그래서 텐트 옆에 화장실용 긴 텐트를 설치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강천섬에 화장실이 1개뿐인 건 이곳이 공식적인 야영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주시에 문의해 보니 일반 공원일 뿐 허가 난 캠핑장이 아닌데 캠핑하기 좋은 곳이란 입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는 것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입장료도 없고 자리요금도 없다. 편의시설도 전혀 없다. 하지만 덕분에 자연환경이 그대로 남아있다. 불편이 따르지만 불편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방지할 수 있다.
자연을 찾아 길을 나선 백패커들은 오히려 이런 불편을 감수하면서 그 대가로 주어지는 한적한 시간을 즐긴다. 여주시는 강천섬을 캠핑장 용도로 따로 관리하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주차장에는 주차요원도 있고 주말 저녁이 되니 경찰차와 소방차가 순찰도 한다. 완전히 동 떨어진 오지는 아니다. 백패킹으로 1박을 하든 당일치기로 피크닉만 즐기든, 강천섬 나들이는 짧은 가을을 가슴에 확실히 담아둘 수 있는 힐링 포인트다.
자연을 찾아 길을 나선 백패커들은 오히려 불편을 감수하면서 그 대가로 주어지는 한적한 시간을 즐긴다. 사진=이송이 기자
#백패킹 짐 싸기, 의식주의 방랑 버전
짐 이야기를 빼놓고는 백패킹을 논할 수 없다. 야영지에서 먹고 자고 생활할 의식주의 모든 짐을 배낭 안에 짊어지고 가야 하는 백패킹의 채비는 무엇보다 가벼워야 한다. 한참을 걷다보면 1kg이 10kg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길 중간에선 후회해도 이미 늦다. 그렇다고 이것저것 함부로 뺄 수도 없다. 필수적인 짐이 빠져 버리면 아예 백패킹을 못할 정도로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패킹 짐을 쌀 때는 야영에 꼭 필요한 건지 아닌지부터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배낭에 넣을까 말까 고민되는 물건은 몇 번이고 넣었다 뺐다 하면서 등에 짊어져보면 감이 더 쉽게 온다. 그러면서 짐은 점점 더 단출해진다. ‘담아내는’ 짐이 아니라 ‘덜어내는’ 짐을 꾸려야 한다.
백패킹 시 ‘담아내는’ 짐이 아니라 ‘덜어내는’ 짐을 꾸려야 한다. 사진=이송이 기자
백패킹 짐을 챙길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먼저, 잘 때 필요한 물건들이다. 경량 텐트와 매트, 침낭이 최우선이다. 오토캠핑 때처럼 의자나 테이블을 백패킹용 경량 제품으로 챙기는 사람도 꽤 많지만 돗자리 하나로 충분한 경우가 많다. 다음은 밥 해먹을 도구다. 버너, 코펠 등을 최대한 가벼운 것으로 챙기고 여유가 되면 바람이 불 때 버너의 불을 살려줄 버너 바람막이도 유용하다. 수저와 컵도 최대한 가볍고 작은 것으로 챙긴다.
밥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은 간단하게 물만 끓여서 부으면 되는 전투식량을 챙기기도 하지만 야영지에서 먹는 고기와 술, 라면의 매력을 간과할 수도 없다. 시장을 반찬삼아 자연이 입맛을 거들어줄 한 끼를 제대로 먹기 위해 백패킹을 떠나는 사람도 많다보니 가벼운 병에 와인을 옮겨 오거나 막창이나 제철 해산물 같은 먹을거리까지 챙겨오는 사람도 있다. 그 외 추위를 견딜 경량점퍼와 세면도구를 더하면 짐 싸기는 끝난다.
시장을 반찬삼아 자연이 입맛을 거들어줄 한 끼를 제대로 먹기 위해 백패킹을 떠나는 사람도 많다. 사진=이송이 기자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라도 자기의 의식주를 등짐으로 짊어지고 걸어야 한다는 건 생각보다 고되다. 즐거움을 찾아가는 캠핑이지만 걷는 길에서 종종 고비도 만난다. 배낭의 무게로 스스로가 얼마나 나약한지, 비겁한지, 욕심꾸러기인지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낯선 야영지의 신선한 경험들과 사람들, 먹고 자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이 내가 등짐 져야 하는 배낭과 그 배낭을 메고 걸어야 하는 길 너머에 있다.
#인천 굴업도, 제주 비양도, 백패킹 성지는 뭔가 다르다
백패커들에게는 ‘3대 백패킹 성지’라 불리는 곳이 있다. 위에서 소개한 여주 강천섬과 함께 홍연희 제이슨 부부가 바람에 텐트를 날려버리고 맨 땅에서 야영을 했던 인천 굴업도와 바로 앞에서 바다를 즐기며 야영할 수 있는 제주 비양도 등이다.
인천 굴업도는 한국의 갈라파고스라 불릴 만큼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곳이다. 2번이나 배를 타고 4시간을 달려 들어가야 하는 섬이라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마니아들에겐 놓칠 수 없는 장소다. 특히 해외에 나가지 못해 좀이 쑤시는 사람이라면 섬으로 들어가는 머나먼 과정을 오히려 재미로 생각할 수도 있다. 굴업도에 도착해서도 풍경이 멋진 야영지까지는 야영지에 따라 도보로 최소 20분에서 1시간은 더 걸어야 한다. 민박집도 있기는 하다.
굴업도 역시 다른 백패킹 성지들과 마찬가지로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굴업도에 다녀온 백패커들은 흔히 “한국에서는 흔히 만날 수 없는 풍경”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불빛도 흔치 않아 밤이면 쏟아지는 별빛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다른 한 곳은 제주 우도의 비양도다. 제주에는 두 개의 비양도가 있어 헛갈릴 수 있는데 하나는 제주의 서쪽 협재해수욕장에서 바라다 보이는 비양도고 다른 하나는 제주의 동쪽섬 우도에서 다리로 연결된 아주 작은 섬 비양도다. ‘마이크로 아일랜드’라 불리는 비양도는 5~10분이면 섬 한 바퀴를 다 둘러볼 수 있다. 우도에 놀러 왔다가 잠시 보고 가는 비양도는 그저 그런 섬일 수도 있지만 1박을 한다면 전혀 다른 신세계를 느낄 수 있다. 달빛에 흔들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이고 밤새 파도소리를 들으며 단잠을 자고나면 다음날부터 백패킹 마니아가 될 확률이 높다.
'백패킹 성지’라 불리우는 여주 강천섬, 인천 굴업도, 제주 비양도 등은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제주 비양도 백패킹 모습. 사진=이송이 기자
비양도까지 가는 길은 두 가지다. 제주 본섬에 차를 두고 움직일 수도 있고, 우도까지 차를 몰아간다면 비양도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딱히 백패킹이 아니라 오토캠핑도 즐길 수 있다. 성수기라 비양도까지 차가 못 들어간다면 비양도와 접한 우도 쪽에 차를 세워두고 10분 정도만 다리를 건너 걸어가면 된다. 처음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성산포항에서 우도까지 배를 타고 배에서 내린 뒤 비양도까지 1시간 정도 걸어 들어간다. 평지라 짐만 그리 무겁지 않다면 걸을 만하다. 우도 안에 하나로마트가 있어 먹을거리는 미리 사지 말고 우도에서 구입할 수도 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