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현재 이 같은 일은 축구계에서 드물지 않다. 한 시즌에도 여러 선수가 1000억 원대 이적료를 발생시키고 있다. 다만 그 효과에 대해선 물음표가 뒤따른다.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지불하게 만들고도 그 구단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적료 1억 3000만 유로의 공격수 우스망 뎀벨레(오른쪽)는 지난 레알 마드리드와 경기에서 후반 교체로 나섰지만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사진=연합뉴스
#많고도 적은 금액, 1000억 원
아무리 ‘이적료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축구계라지만 1000억 원은 엄청난 금액이다. 20년 전 지단이 기록한 이적료는 아직도 역대 이적료 순위 24위로 높은 위치다. 현재 세계 최고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케빈 데 브라위너(벨기에)가 독일 볼프스부르크에서 영국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할 당시 발생한 이적료가 7600만 유로(약 1007억 원)인데, 20년 전 지단보다 적다.
선수의 가치는 나이를 먹을수록 떨어지기 마련. 그럼에도 두 번의 이적에서 모두 이적료 1000억 원을 넘긴 사례도 있다. 그 주인공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와 네이마르(브라질)다. 지단의 신기록을 만들었던 레알은 200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호날두를 데려오며 9400만 유로(약 1245억 원)를 지불, 8년 만에 신기록을 세웠다. 호날두를 2018년 유벤투스로 판매할 때는 그보다 많은 1억 1700만 유로(약 1550억 원)를 받아냈다.
네이마르는 세계 최고 이적료 기록 보유자다. 2013년 브라질 무대(산투스)에서 유럽(바르셀로나)으로 진출하며 8820만 유로(약 1168억 원)의 이적료를 발생시킨 바 있는 그는 4년 만에 팀을 떠나며 2억 2200만 유로(약 2942억 원)라는 금액을 바르셀로나에 안겼다. 이는 소속 구단과 협의 없이 구매 의사를 드러낸 구단이 곧장 선수와 협상을 이어갈 수 있는 ‘바이아웃’ 금액이었다.
이 같은 대형 이적은 연쇄 이동 작용을 낳기도 한다. 지단을 팔았던 유벤투스는 같은 해 부폰(이탈리아), 파벨 네드베드(체코), 릴리앙 튀랑(프랑스)을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했다. 네이마르 판매로 막대한 수익을 거둔 바르셀로나는 직후 필리페 쿠티뉴(브라질, 1억 4500만 유로), 우스망 뎀벨레(프랑스, 1억 3000만 유로) 영입에 그 금액을 고스란히 투입했다.
세계 최고 이적료 기록은 2억 2200만 유로의 네이마르가 보유하고 있다. 사진=파리생제르망 페이스북
#비싼 이적료가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2001년 지단의 이적은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음에도 ‘성공한 이적’으로 평가받는다. 레알은 지단의 영입으로 스타선수를 수집하는 ‘갈락티코 정책’에 방점을 찍었다. 호나우두(브라질), 데이비드 베컴(잉글랜드) 등에게 연이어 유니폼을 입히며 막대한 상업적 수익을 창출했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트로피 수집에도 성공했다. 지단 외에도 호날두, 네이마르 등은 천문학적 이적료에 걸맞은 활약으로 소속팀에 숱한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하지만 최근 거액의 이적료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선수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10월 24일 열린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라이벌전 ‘엘 클라시코’가 이를 잘 보여주는 경기였다. 이날 경기는 ‘세계 최고의 축구경기’라는 평가에 걸맞게 수준 높은 내용을 선보였지만 일부 선수들은 질타를 피할 수 없었다.
1000억 원이 넘는 이적료로 팀을 옮긴 바르셀로나의 뎀벨레, 앙투안 그리즈만(프랑스), 레알의 에당 아자르(벨기에) 등은 이날 선발 명단에서 빠졌다. 뎀벨레와 그리즈만이 교체로 경기장을 밟은 것과 달리 아자르는 대기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지난 시즌 내내 지속된 부진과 부상이 이번 시즌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첼시에서 352경기 110골 92도움을 기록, 세계 최고 공격자원 중 하나로 도약한 아자르는 레알에서 23경기 1골 7도움만 기록했다.
뎀벨레와 그리즈만은 교체로 이날 경기에 나섰지만 팀이 1-3으로 패배한 상황에서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뎀벨레는 2017년 입단 이후 끊임없이 부상에 시달리며 그간 79경기에만 나섰다. 리그에서 30경기 이상 출전한 시즌이 없다. 2018 러시아월드컵 우승 주역 그리즈만은 지난 시즌을 앞두고 1억 2000만 유로(약 1591억 원)의 이적료로 이적했지만 1년이 넘도록 팀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 54경기 15골로 적지 않은 골을 기록했지만 1500억 원이 넘는 이적료를 감안하면 기대 이하다. 경기 내 영향력은 되레 줄어들고 있다.
이날 바르셀로나의 영패를 면하게 한 이는 도움을 기록한 조르디 알바(스페인)와 골의 주인공 안수 파티(스페인)다. 이들은 모두 어린 시절부터 구단 내에서 성장하며 이적료를 한 푼도 발생시키지 않은 유스 출신 선수였기에 더욱 눈길을 끌었다.
레알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적료 6000만 유로(약 795억 원)의 레알의 공격수 루카 요비치는 90분 내내 벤치를 지키며 몸값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선제골을 기록한 페데리코 발베르데(우루과이)는 19세 시절 단 500만 유로(약 66억 원)에 우루과이에서 데려온 유망주다. 추가골을 넣은 세르히오 라모스(스페인)와 루카 모드리치(크로아티아)는 이적 당시 수백억 원을 지불했지만 각각 15년과 8년간 수차례 우승을 만들며 ‘돈값’을 하고도 남은 이들이다.
#또 다른 악연들
2017년 여름, 네이마르와 뎀벨레 등이 새로운 기록을 세우기까지 세계 최고 이적료 기록은 폴 포그바(프랑스)의 차지였다. 맨유에서 성장하다 유벤투스로 이적했던 포그바는 맨유가 1억 500만 유로(약 1391억 원)를 지출하게 만들며 돌아왔다. 하지만 화려한 복귀와 달리 맨유에서 활약은 물음표가 뒤따르고 있다. 유벤투스에서 세계 최고 미드필더로 활약했지만 이내 아쉬운 모습으로 질타를 받기도 한다. 들쭉날쭉한 모습에 ‘1400억 원짜리 선수가 맞느냐’는 의문이 이어졌다. 지난 시즌에는 부상으로 리그 경기 절반 이상을 나서지 못하기도 했다.
골을 넣어야 이길 수 있는 스포츠인 축구에서 높은 이적료가 발생되는 대부분 포지션은 공격 쪽에 몰려 있다. 하지만 2018년 여름에는 골키퍼 이적에 1000억 원이 넘는 이적료가 발생해 눈길을 끌었다. 그 주인공은 첼시의 케파 아리사발라가(스페인)다. 스페인 아슬레틱 빌바오에서 뛰던 그는 8000만 유로(약 1060억 원)에 첼시 유니폼을 입었다. 골키퍼로서 역대 최고 이적료를 기록했지만 첼시에서의 생활은 첫 시즌부터 순탄치 않았다.
2019년 2월 리그컵 결승 도중 감독의 교체 지시를 거부해 논란을 만들었다. 승부차기를 앞두고 부상이 있는 그를 교체하려 했지만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인 것이다. 결국 이어진 승부차기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 이후로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경기력으로 비판을 받았다. 결국 ‘1060억 원 골키퍼’는 2018-2019시즌 최악의 영입에 선정됐다.
▲세계축구 이적료 순위 1. 네이마르, 바르셀로나→파리생제르망 2억 2200만 유로 2. 필리페 쿠티뉴, 리버풀→바르셀로나 1억 4500만 유로 3. 킬리앙 음바페, AS모나코→파리생제르망 1억 3500만 유로 4. 우스망 뎀벨레,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바르셀로나 1억 3000만 유로 5. 주앙 펠릭스, SL벤피카→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억 2729만 유로 6. 앙투안 그리즈만, AT 마드리드→바르셀로나 1억 2000만 유로 7.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레알 마드리드→유벤투스 1억 1700만 유로 8. 에당 아자르, 첼시→레알 마드리드 1억 1500만 유로 9. 폴 포그바, 유벤투스→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억 500만 유로 10. 가레스 베일, 토트넘 홋스퍼→레알 마드리드 1억 100만 유로 11.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레알 마드리드 9400만 유로 12. 곤잘로 이과인, 나폴리→유벤투스 9000만 유로 13. 네이마르, 산투스→바르셀로나 8820만 유로 14. 해리 매과이어, 레스터 시티→맨체스터 유나이티드 8700만 유로 15. 프랭키 데 용, 아약스→바르셀로나 8600만 유로 16. 마타이스 데 리흐트, 아약스→유벤투스 8550만 유로 17. 로멜루 루카쿠, 에버튼→맨체스터 유나이티드 8470만 유로 18. 버질 반 다이크, 사우스햄튼→리버풀 8465만 유로 19. 루이스 수아레즈, 리버풀→바르셀로나 8172만 유로 20. 카이 하베르츠, 바이어 레버쿠젠→첼시 8000만 유로 21. 뤼카 에르난데스, AT 마드리드→바이에른 뮌헨 8000만 유로 21. 니콜라스 페페, 릴 OSC→아스널 8000만 유로 21. 케파 아리사발라가, 아슬레틱 빌바오→첼시 8000만 유로 24. 지네딘 지단, 유벤투스→레알 마드리드 7750만 유로 25. 케빈 데 브라위너, 볼프스부르크→맨체스터 시티 7600만 유로 |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