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스타 박용하는 왜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을까. 고 안재환과 고 최진영 등은 자살 당시 고인이 겪은 고뇌가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박용하는 온갖 추측만 무성할 뿐 뚜렷한 자살 동기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게 미스터리다. 예기치 않은 자살, 최측근 인사들은 물론 유가족조차 전혀 감지하지 못한 자살 소식은 국내 팬들은 물론 일본 팬들까지 패닉 상태로 몰아넣고 말았다. 도대체 왜 박용하는 인기 절정에서 자살을 결심하게 된 것일까.
지난 6월 30일 오후 3시 30분경 서울 강남경찰서는 배우 박용하 사망관련 브리핑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곽정기 형사과장은 “부친의 암 투병, 사업 활동, 연예 활동 등을 병행하는 데 따른 스트레스로 술을 마시고 충동적으로 자살을 결행하여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충동적인 자살이었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측근과 지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발표 내용이다. 그가 오랜 기간 불면증으로 수면제를 복용해왔다는 증언은 있었지만 우울증을 앓았다는 증언은 없었다. 분명 그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왕성한 연예계 활동을 벌이며 미래를 향해 달음질하고 있었다. 다만 부친의 암 투병, 사업 활동, 연예 활동 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왔고 이런 부분들이 고인을 충동적인 자살로 이끈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 세 가지 요인 모두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결정적인 사안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 탓에 그의 자살을 설명하는 명확한 원인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또한 고인의 측근들 역시 그가 이런 어려움들을 잘 헤쳐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고 얘기한다.
다만 ‘잘 헤쳐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는 것일 뿐 실제로 고인이 그런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망자는 말이 없는 법. 다만 고인이 최근 들어 상당히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고인의 한 지인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인이 거듭된 악재로 힘겨워 하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고인이 밝고 소탈한 성격으로 보이지만 실제론 상당히 예민한 편이었다고 회상한다.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것 역시 이런 예민한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고인의 지인이 말한 악재들은 경찰 수사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선 사업적인 부분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려 했지만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오랜 관계를 이어온 측근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했다. 거듭된 흥행 실패로 인해 연예계 활동에 대해서도 부담감이 컸던 데다 믿고 의지해온 부친의 암 투병까지 더해져 예민한 고인이 상당히 고통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가장 손쉽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경제적인 어려움이다. 항간에선 채권 채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느니, 사업 문제로 사채까지 끌어 썼다느니 하는 얘기도 나돌고 있지만 근거는 전혀 없다. 박용하는 지난 2008년 요나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사업을 시작했지만 아직 큰 빚을 질 정도로 사업체가 커진 상황은 아니다. 다만 일본에서 자신의 유명세를 활용한 ‘머천다이징 상품’을 만들었는데 제품에 문제가 생겨 수억 원 대의 피해를 입었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박용하의 수입 규모를 놓고 볼 때 치명적인 경제적 위기라고 볼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 박용하의 영결식이 2일 새벽 6시 서울성모병원 영결식장에서 진행됐다. 임준선 기자 |
또한 박용하는 IMF 당시 부친이 친척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며 7년 넘게 고생하다 2003년에야 빚을 모두 갚은 경험이 있다. 어지간한 경제적 위기는 충분히 극복해낼 수 있는 경험과 정신력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지만 오랜 채무 변제 과정의 후유증인지 한류스타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벌인 박용하의 인기를 감안할 때 그의 재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 박용하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고 있었던 집은 그의 소유가 아닌 부친 명의의 전세였다. 다만 전세금이 8억 원의 최고급 아파트이긴 하다. 또한 요나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이 청담동에 위치해 있긴 하지만 호화스러운 여느 연예기획사들과 달리 평범한 사무실이었다.
일부 매체에선 최근 고인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타고 다니던 차량을 판매하려 했다고 보도했는데 만약 급히 돈이 필요했다면 전세금 역시 융통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그가 전세로 사용하고 있는 아파트는 집 주인의 사정으로 인해 가압류돼 있는 상황이다. 인근 부동산 업자는 “등기부등본 상에 전세계약설정이 돼 있는데다 가압류된 시점이 전세계약 이후라 전세금은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다”면서 “다만 이런 경우 세입자가 전세 계약을 해지하고 이사하려 할 경우 어려움이 따르는데 이미 가압류가 된 아파트의 경우 전세금 보호가 쉽지 않아 다음 세입자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고 박용하는 지난 2008년 1인 기획사인 요나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이후 다양한 사업을 벌이려 준비해왔다. 우선 일본에선 ‘머천다이징 상품’ 판매와 프랜차이즈 사업 등을 구상했지만 아직 실행에 옮겨지진 못했다. 또한 국내에선 명동 지역에 한류 레스토랑을 준비해왔다. 자살 직전에 만난 인물 역시 함께 한류 레스토랑 사업을 진행하려 했던 안 아무개 씨다. 그렇지만 이 사업 역시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런 신규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투자금이 들어갔는지는 정확치 않지만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힐 만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구상한 대로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 데 대해 고인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인 연예인을 몇몇 발굴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요나엔터테인먼트의 핵심 사업은 단연 박용하의 연예계 활동이다. 그가 굳건히 스타의 자리를 지키며 연예계 활동만 잘 진행하더라도 회사 운영에 별다른 문제는 없을 수 있다는 것. 요나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뒤 출연한 영화 <작전>과 드라마 <남자이야기>가 연이어 흥행에 실패했지만 최근 드라마 <러브송>에 캐스팅돼 윤은혜와 호흡을 맞출 예정이었다. 흥행 여부가 부담스러운 상황이긴 했어도 연예계 활동은 꾸준히 지속되고 있었다.
일본에선 사망 직전까지 투어 콘서트를 진행할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렇지만 어려움도 뒤따랐다. 고인의 한 측근 연예계 인사는 “일본의 한 연예기획사로부터 100억 원대 계약금을 제시받기도 했던 고인은 일본 연예기획사가 아닌 자신이 설립한 요나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일본 활동을 이어갔다”면서 “일본 연예계에선 현지 유명 연예기획사가 아닌 경우 활동하는 데 제약이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고인을 가장 힘겹게 만든 부분은 바로 주변 사람들로 인한 마음고생이다. 우선 그 시작은 가장 믿고 의지했던 부친의 암 투병이다. 지난해 10월경부터 부친의 암 투병이 시작되면서 박용하가 상당히 힘들어 했다는 것. 송창식 정수라 등의 음반을 제작한 원로 음반제작자인 부친 박승인 씨는 박용하가 설립한 요나엔터테인먼트 대표이기도 한데 그만큼 박용하가 연예계 활동을 벌이고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버팀목이 돼 줬다고 한다. 따라서 박용하에게 부친의 암 투병은 가정 문제를 떠나 사업 문제이기도 하다.
더욱 결정적인 사안은 오랜 기간 함께 연예계 활동을 해온 Y 씨와의 갈등이다. 고인은 Y 씨와 전 소속사에서부터 호흡을 맞춰오다 함께 요나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그런데 올해 초 Y 씨가 회사 공금을 횡령하면서 회사를 떠나게 됐다. 대표를 맡고 있던 부친의 암 투병에 이어 함께 회사를 설립한 Y 씨의 배신에 고인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음은 물론이고 회사 운영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아졌다.
그리고 최근 고 박용하는 또 다시 오랜 지인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게 된다. 고인의 한 측근은 “박용하 씨는 한 번 누군가를 믿으면 모든 것을 다 줄 정도로 의리가 깊다”면서 “올해 초 Y 씨와의 불화에 이어 또 한 번 지인의 배신을 경험한 뒤 무척 힘들어 했다”고 얘기한다. 어떤 내용의 배신이었는지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돈과 관련된 사안이었다는 것.
부친의 암 투병, 함께 사업을 진행해온 오랜 지인의 배신, 그리고 이들 없이 홀로 진행한 다양한 사업의 난항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고 박용하를 힘들게 만들었고 결국 그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떠난 사람은 말이 없고 그를 떠나 보낸 가족은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에 목 놓아 울 뿐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아무 것도 네 잘못이 아닌데…”
경찰 수사 브리핑을 통해 고 박용하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행보가 공개되면서 관심은 지인 안 아무개 씨에게 집중됐다. 고인은 6월 29일 밤 9시경 청담동에서 평소 사업구상을 위해 자주 만나던 안 씨와 만난 뒤 자정 무렵 헤어져 귀가했고 그날 새벽 서너 시경에 자살했다.
일본 투어 콘서트 도중에 고인이 예정에 없는 입국을 한 까닭 역시 안 씨와의 사업 미팅 때문일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연예관계자들 사이에는 그가 레스토랑 등의 외식사업을 진행하는 사업가로 알려져 있다. 경찰 역시 고인이 안 씨와 함께 명동에 한류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것에 대해 상의했다고 밝혔다.
안 씨가 고인과 헤어진 직후인 새벽 1시 즈음 고인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내용도 공개됐는데 여기서 안 씨는 “용하야, 힘든 것 같아 보여. 때가 있고 시기가 있는데 함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자”고 말했다. 경찰은 다른 지인들에 대해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성별과 나이는 공개했다. 그렇지만 유독 안 씨에 대해서는 ‘안’이라는 성 이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
<일요신문>은 7월 1일 새벽, 빈소 인근에서 안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짧은 헤어스타일의 30대 남성인 안 씨는 술에 다소 취해 보였는데 고인의 죽음으로 상당히 힘겨워했다. 혼잣말로 “어제 나와 만났을 때만 해도 괜찮아 보이더니 왜 이런 일을 벌인 거니?” “아무 것도 네 잘못이 아닌데 왜 억울하게 네가 죽어야 하니?” 등의 말을 내뱉으며 힘겨워 했다. 그렇지만 인터뷰 요청에는 응하지 않고 다시 빈소 안으로 들어갔다.
▲ 박용하의 발인일인 2일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많은 일본 팬들. 박은숙 기자 |
주요 방송 ‘욘하짱’ 빈소 생중계
한류스타로서 일본 연예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자랑하던 박용하의 죽음에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니혼TV, 아사히TV, 후지TV 등의 일본 방송은 고인의 집 앞, 빈소 등에서 생중계 방송까지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7월 2일 발인 현장에도 일본 팬 200여 명이 찾아와 눈물로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풍경도 다소 이채로웠다. 장례 둘째 날부터 일본 팬들의 조문을 허용하면서 3층 빈소로 올라가는 계단에 줄을 늘어선 일본 팬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장례 둘째 날인 7월 1일부터 일본 팬들이 보낸 조화가 연이어 빈소에 도착했는데 발인 무렵에는 일본어가 적힌 조화만 80여 개나 됐다.
발인 현장 분위기 역시 일본 팬들이 주도했다. 대성통곡을 하며 운구차량을 붙잡고 울부짖는 일본 팬들의 모습이 국내 팬들의 그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빈소에서 만난 일본 취재진은 일본 내에서 박용하의 자살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는 얘길 들려줬다. 고인의 죽음을 힘겨워하다 자살하는 극성팬들이 나타날 위험성이 크다는 것.
한편 한류스타의 빈소인 탓인지 동료 한류스타들의 조문도 줄을 이었다. 배용준 이병헌 송승헌 원빈 등 소위 4대 천왕이 모두 조문한 데 이어 최지우도 빈소를 방문했다. 일본에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던 류시원은 장지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뺑소니 사건에 연루된 권상우만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