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강간 혐의로 피소된 사실을 스스로 밝힌 양준혁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사진=박은숙 기자
폭로(暴露). 알려지지 않았거나 감춰져 있던 사실을 드러낸다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단어다. 흔히 나쁜 일이나 음모 따위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이른다. 폭로의 생명은 ‘진실 여부’다. 진실에 기반을 둔 공익적 폭로는 정의를 실현할 수 있지만, 최소한의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폭로는 사회적 해악인 동시에 당사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힌다.
최근 찬열의 전 연인이라 주장하는 A 씨의 폭로 외에도 일부 유튜버들이 가수 탁재훈, 김희철과 유튜브 콘텐츠 ‘가짜 사나이’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이근 대위 등에 대한 폭로를 일삼고 있다. 얼마 전 유사강간 혐의로 피소된 사실을 스스로 밝힌 양준혁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역시 2019년 9월 한 여성이 양 위원의 자는 모습을 찍은 사진과 함께 “양준혁, 방송에서 보는 모습, 팬서비스 하는 모습, 어수룩해 보이는 이미지의 이면, 숨겨진 저 사람의 본성”이라고 폭로한 뒤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당시 양 위원은 이 여성을 명예훼손 및 협박죄로 고소했고, 이 여성이 이번에는 양 위원을 유사강간 혐의로 고소했다.
연예계를 둘러싼 폭로는 최근 몇 년 사이 급증했다. 그 배경에는 스마트폰과 SNS의 발달이 있다. 과거에는 대중에게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플랫폼, 즉 TV나 라디오 혹은 신문을 통해야 공론화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다양한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여기에 일부 유튜버들이 가세했다. 하나의 폭로가 나오면 다른 유튜버들도 달려들어 이를 먹이 삼는다. 그 과정에서 제대로 된 ‘검증’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다수가 기존에 거론됐던 이야기를 확대 재생산하며 의혹을 부추기는 수준이다.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한 인플루언서는 “유튜브 콘텐츠는 회전율이 굉장히 빠르다. 정확한 것보다 빠른 것이 생명”이라며 “그렇다보니 팩트를 입증하기보다는 당장 대중이 관심을 갖는 이야기를 되짚고 호기심을 부추기는 수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유튜버들은 왜 이런 활동을 할까. 결국은 조회수를 높이고 구독자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조회수와 구독자는 수입과 직결된다. 유튜브 채널 운영을 직업 삼아 먹고 사는 이들이 폭로를 일삼는 이유다. 이 인플루언서는 “이곳저곳에서 폭로가 터지는 것도 하나의 ‘분위기’라 할 수 있다”며 “몇몇 폭로가 대중적 관심을 받으며 구독자 확보에 도움이 되자 유사 사례가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이돌 그룹 엑소의 멤버 찬열과 3년 동안 교제했다고 주장하는 A씨의 폭로가 연예계를 뒤흔들었다. 사진=찬열 인스타그램
찬열을 둘러싼 폭로를 지켜보며 적잖은 이들이 “왜 소속사는 묵묵부답일까”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찬열의 소속사는 SM엔터테인먼트다. 소속 아티스트 보호를 위해 법적 대응도 마다않는 회사다. 하지만 찬열을 향한 폭로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 같은 대처에 대해 ‘적절한 대응’이라는 반응도 적잖다. 그 이유는, 사실 확인이 어려운 사생활 영역이기 때문이다. 폭로 글을 올린 인물이 익명 뒤에 숨은 상황 속에서 찬열의 공식적인 대응은 오히려 공방 분위기를 만들어 더 시끄러운 국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찬열을 타깃 삼은 폭로 글의 내용은 객관적으로 입증이 어려운 내밀한 사생활이다. 그렇다고 이를 법적으로 다룰 수 있는 범법 사유라 볼 수도 없다. 만약 두 사람이 교제했다는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제3자가 판단해 잘잘못을 따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잘잘못을 따지게 될 경우 그 과정에서 익명 뒤에 있는 폭로자는 드러나지 않는 반면, 이름이 알려진 연예인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된다”며 “결국 이런 종류의 폭로에 대해서는 대응하지 않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연예기획사와 연예인들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 매체들의 무책임은 재차 도마에 올랐다. SNS 등에서 떠도는 글은 ‘루머’에 그칠 수 있지만, 기사로 다뤄지는 순간 공론화된다. 문제는 언론 매체들조차 취재를 통해 진위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현상만 전하며 사태를 확산시키는 데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수없이 쏟아지는 기사를 통해 해당 사안을 알게 된 네티즌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검색을 하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가 상승하고, 언론 매체들이 ‘검색어 따라잡기’식 기사를 양산하며 다시금 루머가 퍼져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앞서의 연예관계자는 “해당 연예인이 법적 대응을 하더라도 익명 뒤에 숨은 폭로자를 잡기가 쉽지 않고, 법적 판단을 받기까지도 긴 시간이 소요된다”며 “그 사이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기 때문에 적극적인 법적 대응보다는 침묵으로 이 시기를 넘기려는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