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가 법정에 들어와 목례를 한 뒤 착석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88석 가운데 거리두기로 절반만 허용된 방청석은 만석이었다. “증인 들여보내세요.” 박정제 부장판사가 말했다. 그러자 법정 내 주요 피고인이나 증인이 드나드는 ‘비밀의 문’이 열렸다.
이날의 증인은 부산교도소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해 오후 12시쯤 수원지방검찰청에 도착해 점심을 남김없이 먹었다고 한다. 그는 시간에 맞춰 검찰청을 출발해 법원으로 이어지는 지하 통로를 걸어와 문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문 뒤에 있던 법무부 후송요원들이 먼저 들어와 길을 텄다. 순간 법정의 모든 눈은 한 곳으로 쏠렸다. 방청석 뒷줄에 앉아 있던 기자들은 순간을 놓칠세라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기울였다. 법정 안은 모두가 숨을 멈춘 듯 찰나의 정적이 흘렀다. 살인 14건, 강간 19건, 강간미수 15건 등 30여 년 전 화성 일대는 물론 대한민국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은 희대의 살인마가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11월 2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재심 공판에 이춘재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춘재는 빨간색으로 표시된 문으로 나와 윤성여 씨(파란색 표시 자리)를 지나 증인석에 섰다. 사진=박현광 기자
연녹색 수의를 입은 이춘재는 정적을 뚫고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그는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윤성여 씨를 지나 증인석에 섰다. 1963년생, 우리 나이로 58세의 이춘재는 희끗희끗 센 머리를 짧게 깎은 모습이었다. 흰 면 마스크에, 흰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증인 신분이라 포승줄에 결박된 상태는 아니었다.
증인석에 서서 양손을 가지런히 배꼽 앞에 모은 채 부장판사를 정면으로 바라보던 이춘재는 증인의 권리와 의무를 듣고선 “네”라고 짧게 답했다. 그리곤 곧바로 오른손을 들어 증인 선서를 했다. 이춘재는 가는 목소리를 높낮이 없이 뱉어냈다. 목소리에 떨림은 없었다. 거들먹거리지도 않았다. “증인, 오늘 왜 이 자리에 온 줄 아시죠?”, “네, 압니다.” 11월 2일 오후 1시 36분 수원지방법원 501호에서 열린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재심 9차 공판은 그렇게 시작됐다.
#남 일 얘기하듯 담담했던 이춘재
증인석에 앉은 이춘재는 시종 남 일 얘기하듯 담담하게 자신의 범죄를 진술했다. 검찰과 변호인의 질문이 겹치는 탓에 주로 질문은 윤성여 씨 변호인 박준영 변호사가 했다. 오후 1시 36분에 시작한 증인신문은 20분 휴식을 포함해 오후 5시 49분까지 4시간가량 이어졌다. 박준영 변호사는 ‘8차 사건’과 ‘초등생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이춘재 범행 전반의 과정과 그 동기를 캐물었다.
증인석에 앉은 이춘재는 시종 남 일 얘기하듯 담담하게 자신의 범죄를 진술했다. 사진=박현광 기자
이춘재는 판사석이 있는 정면으로 몸을 고정하고 손을 증인석 책상 아래에 둔 채, 고개만 15도 정도 피고인석이 있는 오른쪽으로 돌려 박준영 변호사의 질문을 듣고 답했다. 시선은 아래로 고정하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자신의 범죄에 대해 추가 설명하거나 자신이 발언권을 얻었을 땐 변호인석으로 몸과 고개를 바로 돌려 말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재판이 진행되고 딱 10분 뒤 마스크에 반쯤 가려졌던 이춘재의 얼굴이 딱 3초 동안 온전히 드러나는 순간이 있었다. 이춘재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며 박준영 변호사가 이춘재가 쓰고 있던 면 마스크를 일회용 마스크로 바꿔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 뒤였다. 박정제 부장판사가 이춘재에게 “괜찮나”라고 물었고 이춘재는 “상관없다”고 답했다. 법정 경위가 일회용 마스크를 이춘재에게 전달하자 이춘재는 흰 면 마스크를 벗었다. 긴 콧날, 깊게 패인 주름, 갸름한 얼굴형, 이춘재는 언론에 공개된 사진에서보다 더 마른 모습이었다.
이춘재는 자신이 저지른 범행에 대해 적극적으로 진술했다. 특히 자신의 ‘행위’에 대해선 꼼꼼하게 설명했다. 변호인이 잘못 알고 있는 상황을 정정하고 묻지도 않은 사안까지 상세히 전했다. 8차 사건 피해자인 박 아무개 양이 자고 있던 방을 들어가던 순간을 두고 “문 앞에 책상인진 몰라도 뭔가가 있었던 건 분명히 기억한다. 장애물을 밟고 넘어갈 때 (양말을 뒤집어쓴) 양손을 짚으면서 발을 쑥 높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범행을 끝내고) 나올 때 양손을 장애물에 딱 짚으면서 보니까 굉장히 광이 나는 재질이었다. 달빛을 받아서 빛나는 그런 판 같은 게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피해자 박 양의 방 문 앞엔 앉은뱅이책상이 있었다.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윤성여 씨가 진범이 아니라는 근거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 부분이었다.
이춘재의 문장력과 어휘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한번 말을 시작하면 막힘없이 진술을 이어갔다. 버벅거리지도 않았다. 윤성여 씨의 또 다른 변호인 김칠준 변호사는 이춘재에게 “변호사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맞게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분명히 말한다. 굉장히 높은 수준의 언변이다. 수감 생활 26년 동안 책을 많이 읽은 건가”라고 묻기도 했다.
이춘재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잠시 눈을 감기도 하고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기도 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에선 손가락을 펴들어 머리를 긁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4시간여 동안 그밖에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감정의 동요도 없는 듯 보였다. 이춘재는 과거 범행에 대해 진술하고 있는데 어떤 기분이냐고 묻는 말에 “어찌 보면 후련함도 있겠는데 크게는 제가 저지른 일을 말하는 기분도 아니고 어디서 들은 이야기나 남이 한 걸 이야기하는 것처럼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그는 어쩌다 희대의 살인마가 됐나
법정 안 모두가 궁금했던 건 그의 살인 동기와 목적이었다. 그는 어쩌다가 희대의 살인마가 됐나. 3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이춘재의 흔적 하나하나는 영화와 연극, 책 그리고 수많은 범죄 심리 전문가 등으로부터 분석되고 해석되고 재탄생돼 왔다. 모든 콘텐츠의 마지막 종착지는 항상 ‘왜’였다. 이춘재는 비뚤어진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는 변태성욕자였던 걸까. 정말 그는 자발적으로 감옥을 택해 음흉하게 숨어 지냈던 걸까.
8차 사건 범행 현장인 피해자의 집 전경. 이춘재는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 피해자 집을 찾았다. 이에 대해 이춘재는 “왜 그 집으로 갔는지 나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사진=일요신문DB
이춘재는 일반인의 상식으론 이해하기 힘든 말을 쏟아냈다. 그는 ‘행위’는 상세하게 설명했지만 ‘동기’는 설명하지 못했다. 이춘재는 왜 살인을 했는지 묻는 말에 “상황이 그렇게 돼서 어쩔 수 없었다”고 답했다.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묻는 말엔 “아무 생각도 안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언제 살인 충동을 느꼈는지 묻자 “그런 걸 느낀 적 없다”고 했다.
살인을 계획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말엔 “계획한 적 없고, 그냥 길을 가다가 마주쳤는데 상황이 만들어지면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성욕을 느껴서 살인을 저지른 것 아니냐는 말엔 “성욕을 느껴서 그런 건 아니다. 피해자를 성적 대상으로 생각해본 적 없다”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왜 피해자를 죽이기 전에 강간했는지를 묻는 말엔 “그냥 상황이 그렇게 돼서 자연스럽게 했다”고 했다.
초등생 살인사건을 두고 이춘재는 “목매 자살하려고 산에 갔다가 못하고 나오는 길에 김 양(피해자)을 봤다. 피해자가 놀라 도망가서 자연스럽게 안아 들고 숲으로 데려왔다. 범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니고, 피해자가 도망가서 상황이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이춘재는 김 양의 양손을 줄넘기로 묶은 뒤 한참을 있었다고 했다.
박준영 변호사가 ‘죽일 필요까진 없었지 않았나, 김 양이 본인의 얼굴을 봐서 그런가’라고 묻자 이춘재는 “내 얼굴을 보고 말고는 상관없다. 그냥 상황이 그렇게 돼서 죽였다”고 말했다. 박준영 변호사가 그렇다면 초등학생을 상대로 강간을 할 필요는 없지 않았느냐고 묻자 이춘재는 “그냥 하나의 과정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된 거다. 멈추면 강간이 되는 거고, 진행이 되면 살인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방 안에서 자고 있던 박 양을 살해한 8차 사건 때 이춘재는 일을 마치고 병점 부근에서 친구들과 술 한잔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어떤 마음으로 범행 장소에 갔냐고 묻는 말에 이춘재는 “왜 그 집으로 갔는지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는 게 없다. 집으로 들어가야 정상인데, 왜 그 집으로 갔는지 나도 의문”이라고 했다. 이춘재는 피해자 박 양을 살해하고 강간한 뒤 새 속옷을 입히고 범행 장소에서 빠져나왔다. 그의 입장에선 바로 옆방엔 불이 켜져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속옷을 입힌 이유를 묻는 말에 이춘재는 “그냥 그게 맞는 거 같아서 그렇게 했다”고 답했다.
변호사와 검사, 판사 모두 이춘재의 답변이 이해되질 않는지 질문할 차례가 오자 살인 동기와 목적을 재차 거듭해서 물었다. 이춘재는 “내가 그걸 얘길 못하니까 어떻게 보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고 답했다.
#죄책감도, 거리낌도 없었다
이춘재는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고 살아왔다고 말했다. 사람을 죽이고 나선 어떤 느낌이냐고 묻는 말엔 이춘재는 “순간적으론 ‘이건 아니다’, ‘잘못됐다’는 생각을 한다. 근데 돌아서고 나면 그걸로 끝”이라며 “범행을 한 뒤에도 신경도 안 쓰고 자연스럽게 (범행 장소를) 지나가고, 꺼림칙하다든가 여길 피해서 가야 한다든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이춘재는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사죄했지만 그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4시간여에 걸친 증인신문이 끝나고 오후 5시 49분 이춘재는 법정을 퇴장했다. 사진=박현광 기자
이춘재는 최근 경찰조사에서 종이와 펜을 달라고 요청한 뒤 ‘살인 12+2건, 강간 19건, 강간미수 15건’이라고 직접 적었다. 30여 년 전 사건이지만 정확한 횟수를 기억하고 있었다. 박준영 변호사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정확히 기억한다며 머릿속에 사건 파일을 만들어 매번 꺼내 본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이춘재는 이에 “내가 밀어낸다고 해도 밀어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평상시에 아무 생각도 안 하다가, 순간 떠오르는 거다. (그 기억을) 끌어안고 계속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살인했던 생각이 나려고 하면 밀어냈다. 그 생각 하면 나도 괴롭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춘재는 일반인의 공감 능력을 따라잡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듯했다. 피해자 가족의 고통을 생각해 봤느냐는 물음에 이춘재는 “그거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안 해 봤다. 그 생각을 하면 힘들고 어렵다. 스스로 죽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생각에 짓눌려 살 순 없다. 현실에 맞게 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피해자의 가족은 어떤 삶을 살았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이춘재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대로 고통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일반인이 생각하는 대로’가 무엇인지 말해보라는 말에 이춘재는 15초가량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뗐다.
“사실 가해자로서 (과거 사건을) 밀어내면서 내 마음의 안정을 찾은 부분도 있지만 피해자 입장에선 나와 차이가 있을 거다. 분명히. 그 고통을 가슴에 끌어안고 하루하루 참아가면서 언젠가는 범인이 잡히겠지 생각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당사자가 아니면 느껴보지 못할 거다. 하지만 피해자 입장을 느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잘못된 건 바로잡고 내가 진실을 말함으로써 그동안 관련된 모든 피해자들의 명복이라든가 유가족 분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고, 유가족 분들이 마음의 평안을 찾아서 앞으로의 삶이 편안해졌으면 하는 단순한 마음이다. 나로 인해 죽은 피해자들의 영면을 빌며, 유가족과 사건 관련자 모두에게 사죄드린다. 내가 저지른 살인 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형생활을 한 윤 씨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
이춘재는 4시간여 증인신문 끝에 퇴장했다. 중간 쉬는 시간을 가질 때와 마지막 퇴장할 땐 윤성여 씨와 눈을 맞추면서 묵례를 건네기도 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